"이번 여름 무사하길···저는 '반지하' 거주자입니다" [이슈, 풀어주리]
출근길에서도, 퇴근길에서도. 온·오프라인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다양한 이슈를 풀어드립니다. 사실 전달을 넘어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인 의미도 함께 담아냅니다. 세상의 모든 이슈, 김주리 기자가 ‘풀어주리!' <편집자주>
밤새 내린 비에 물이 허리까지 잠겼다. 세 식구가 살고 있는 보증금 500·월세 20만원의 반지하 방은 매년 장마철 폭우가 내릴 때마다 A씨 가족의 삶을 위협했다. 시장에서 산 6살 딸의 꽃무늬 양말이 들어찬 빗물 위를 떠다녔다. 십수년 전 이야기가 아닌, 지난 2022년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서 벌어진 일이다.
지난해 8월 8일은 서울 관악·동작구 반지하 거주민들에게 악몽같은 날이었다. 당시 동작구 신대방동에 설치된 자동기상관측장비(AWS)에 기록된 일 강수량은 381.5㎜. 관악구 신림동의 반지하 주택에서 모녀 등 일가족 3명이, 동작구 상도동에서 1명이 사망했다.
올해도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지난 13일 서울 동작구에는 시간당 최대 39㎜의 폭우가 쏟아졌다. 어김없이 반지하에서 장마를 맞아야 하는 사람들은 창문 옆 모래주머니를 쌓고, 물막이판을 대거나 세간살이를 허리 위쪽까지 올려두며 피해가 적기만을 바랐다.
한국의 기형적인 주거 환경인 반지하 문화는 영화 ‘기생충’을 통해서도 세계에 알려진 바 있다. 실제 지난해 신림동 일가족 참사 당시 CNN 등 주요 외신은 당시 사건을 “영화 ‘기생충’의 한 장면 같다”며 “홍수가 한국에서의 사회적 차이를 드러낸다”고 보도했다. 로이터 또한 “(이번 참사는) 아시아 4위 경제 국가에서의 사회적 격차 증가에 관한 이야기이자 2020년 오스카상을 받은 한국 영화 ‘기생충’에서 묘사된 반지하 침수와 불편한 유사성을 보유했다”라며 “(수해는) 호화로운 강남같은 부촌 지역에서 ‘불편’을 초래하고 금전적 손실을 야기했지만, 신림 같은 곳에서는 절박한 이들이 삶을 이어가려 매달려 온 몇 없는 ‘희망’을 파괴했다”고 지적했다.
반지하 가구의 수해를 막을 근본적인 대책은 위험에 노출돼 있는 반지하를 벗어나는 것이다. 하지만 경제적 이유로 반지하를 선택한 사람들이 짧은 기간 내 지상층으로 ‘탈출’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전국 32만 7000여 개에 달하는 반지하 가구는 96%가 수도권에 몰려 있다. 통계청의 2020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에 따르면, 반지하 거주 가구의 3분의 1이 ‘출근’을 위해 반지하에 살고 있다고 답했다.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온 인구가 소득 수준에 맞는 집을 찾다 보니 반지하를 전전하게 된 셈이다.
반지하 주택은 ‘서울공화국’의 실상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경제 발전과 도시화가 본격화되며 대도시의 주거난이 시작됐고, 건축법 제정 당시 불법이었던 지하층 거주가 1976년부터 합법화됨에 따라 본격적인 반지하 양산이 시작됐다. 1960년대 이전 건축된 서울 주택에 지하층이 설치된 곳은 7%에 불과했지만 1990년대엔 95%로 늘었다. 반지하 주택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데 정부가 협조를 해 준 격이다.
정부가 반지하 문제에 손을 놓고 있었던 건 아니다. 건축 관련 법령 개정 등을 통해 반지하 주택 건축을 제한하고, 서울시는 지난해 폭우 이후 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반지하 주택을 매입해 리모델링하도록 했다. 반지하 밀집지는 공공재개발이나 신속통합기획 등 정비사업 대상지로 우선 선정하기도 했다. 지난 10일에는 반지하 가구가 지상층으로 이주할 경우 반지하 특정바우처와 보증금 무이자 대출의 중복 지급도 가능케 했다고 밝혔다.
다만 실효성에 대한 의문은 끊이지 않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해 수해 이후 이주 지원 등을 포함한 반지하 주거 개선 대책을 내놨지만, 혜택을 받은 건 극소수다. 지난 12일 서울시 발표에 따르면, 반지하 가구 중 지난달까지 공공임대주택으로 이주한 가구는 1280가구, 지상층으로 이주 시 월 20만원을 지원하는 바우처를 받은 가구는 970가구다. 서울시 전체 반지하 가구의 1% 정도다.
경기도 역시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도는 침수 피해가 우려되는 지역을 ‘소규모 주택정비 관리지역’으로 지정하기 위해 도내 시·군에 수요조사를 진행지만 한 곳도 참여하지 않았다. 작년 8월 도는 반지하 주택을 임차·매입한 뒤 주민 공동시설로 활용한다는 계획도 세웠지만 실제 이행이 되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반지하 주택 거주자의 임대료 지원 정책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고 입을 모은다.
한 전문가는 “반지하 매입 정책은 꼭 필요하다”면서도 “반지하 주택 주민을 이주시키기 위해 임대료를 지원하는 정책은 다른 세입자가 또 다시 반지하로 들어올 수 있어 근본적 해결방안이 아니”라고 말했다.
또 “공공에서 매입할 경우 새로운 새입자를 받지않고 공유창고 등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설명했다.
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30억 거절 이효리 11년만에 상업광고…부르는 게 값?
- 송혜교 집 공사하다 철근 떨어져 이웃 주민 차 파손에 결국
- '시럽급여' 없앤다고?…'회사 '실업급여 갑질'이 더 심각해요'
- 영국 해안서 고래 50여마리 '떼죽음'…사회적 유대 때문?
- ''먹튀' 소식만 접했는데'…군인 몰래 40만원 결제한 중년 남성 '훈훈'
- 국가재난상황인데…싸이 '날씨도 완벽' 부적절 후기 논란
- 오송 지하차도 현장서 '방긋'…노란 옷 입은 저 사람 누구지?
- 현역 女의사 중 싸움 가장 잘한다더니…3년만에 프로복싱 韓 챔피언 등극
- 얼빠진 충북도·청주시·흥덕구…'오송 지하차도의 비극'은 인재
- 춘천 산골 마을 일곱째 막둥이 출산…마을 50번째 주민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