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신동빈 롯데 회장, 사장단 회의에서 "자이언츠처럼"…왜?
위기의식 속 혁신…"과거 성공 잊으라"
[서울=뉴시스] 심동준 박미선 기자 =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18일 하반기 사장단회의(VCM)에서 그룹 주요 경영진들 앞에 서 '롯데자이언츠'를 언급했다.
야구 사랑에 관한 얘기가 아니다. 실력 있는 신인을 중용하는 조직 운용의 묘를, 구단 운영 사례를 토대로 설명한 것이다.
롯데자이언츠 사례는 그룹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경영자 역할을 강조하면서 나왔다. 신 회장이 "조직문화 혁신과 공정한 인사를 하라"고 말하면서다.
이날 신 회장은 롯데자이언츠에서 입단 1~2년차 신인일지라도 실력 위주로 인선해 초반 상승세를 이끌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필요한 인재를 능력 위주의 공정한 인사로 발탁해 사업을 잘 진행시켜 달라"고 경영진들에게 주문했다.
이날 롯데 VCM은 무거운 위기의식 아래 진행됐다. 회의 전 입장하는 주요 계열사 대표 등 표정에서도 이런 분위기가 묻어났다.
신 회장은 오전 8시40분께 롯데월드타워 17층 집무실에 출근했다. VCM에 참석하는 그룹 경영진은 오후 1시께부터 모습을 보였다.
가장 먼저 드러난 건 김혜주 롯데멤버스 대표였다. 박윤기 롯데칠성 대표, 김재겸 롯데홈쇼핑 대표 등도 뒤를 이어 입장했다.
강성현 롯데쇼핑 마트사업부(롯데마트) 대표는 VCM에서 논의될 전략에 관한 질의에 "경기가 어렵다보니 실질적 내실을 기하잔 얘기가 아닐까 싶다"고 했다.
김주남 롯데면세점 대표와 이창엽 롯데웰푸드 대표 등은 입장 과정에서 해외 사업 전략 등에 관한 질의를 받았으나 답하지 않고 회의장으로 향했다.
정준호 롯데쇼핑 백화점사업 부문 대표 또한 VCM에서 논의될 내용 등에 관한 질의에 별다른 답변 없이 회의장으로 이동했다.
다른 사업군 대표 등도 말을 아끼는 모습을 보이면서 발길을 재촉했다.
신 회장 장남인 신유열 롯데케미칼 상무(일본 롯데파이낸셜 대표 겸직)도 회의엔 참석했으나 취재진 앞에 모습을 드러내진 않았다.
이날 VCM엔 신 회장을 비롯해 이동우 롯데지주 대표, 각 사업군 총괄대표와 계열사 대표, 롯데지주 실장 등 80여 명이 참석했다.
최근 이완신 전 롯데호텔군 HQ 총괄대표 사임으로 수장이 공석이 된 호텔롯데에선 본부장급 4명이 VCM에 참석했다.
회의에선 강한 혁신 주문이 있었다. 과거 기억에서 벗어나 현재에 맞는 혁신을 추구하라는 '언러닝 이노베이션(Unlearning Innovation)'이 신 회장 키워드였다.
신 회장은 "환경 변화를 무시하고 과거의 성공 경험을 고집하지 말라"며 "유연한 생각으로 현재 환경에 부합하는 차별적 성공 방식을 만들라"고 요구했다.
보다 강한 메시지도 있었다. 신 회장은 "새로운 걸 시도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며 "지금은 미래를 준비하고 재도약을 위한 성장 모멘텀을 만들어야 하는 중요한 시기"라고 했다.
지속 성장 또한 화두였다. 국내·기존 사업과 더불어 해외·신사업을 고민하는 한편 현금 흐름과 자본 비용 등 재무적 리스크도 챙기라는 주문이 이뤄졌다.
롯데는 최근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경영 환경'을 마주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돌파구로는 해외 사업과 인공지능(AI) 등 신기술이 언급됐다.
신 회장은 "불확실한 미래에서 확실한 건 고령화와 인구 감소로 국내 경제의 저성장 기조가 지속되리란 것"이라며 "해외 사업은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말했다.
또 "AI는 과거 PC·인터넷·모바일처럼 세상에 큰 변화를 일으킬 것"이라며 "단순히 기술을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새 기회를 찾고 과감한 실행으로 이어지게 하라"고 했다.
신 회장은 세 가지 내용의 경영방침도 제시했다. 미래형 사업 포트폴리오 전환, 비전·전략에 부합하는 투자, 선제적 리스크 관리가 그것이다.
특히 미래형 사업 포트폴리오 전환은 롯데의 신성장 분야인 ▲헬스앤웰니스 ▲모빌리티 ▲지속가능성 ▲뉴라이프 플랫폼 4개 테마와 맞물려 있는 걸로 보인다.
회의에선 이들 분야 육성 현황과 계획이 공유됐는데, 롯데바이오로직스의 인천 송도 메가 플랜트·항체 의약품 생산 관련 내용 등이 언급됐다.
롯데헬스케어에서 준비하고 있는 헬스케어 플랫폼 '캐즐'과 롯데정보통신을 중심으로 하는 자율주행셔틀·전기차 충전 인프라 구축 등도 다뤄졌다.
또 사업군별로 식품군은 기존 사업 가치사슬 고도화를 통한 수익성 개선과 글로벌 사업 확장, 푸드테크를 통한 미래 성장을 고려하겠다고 했다.
유통군은 '고객의 첫 번째 쇼핑 목적지'란 비전 달성을 위해 라이프스타일·그로서리·데이터 커머스 등 포트폴리오 고도화를 추진하겠다고 했다.
화학군은 기존 사업 경쟁력을 강화하면서 전지소재 사업과 수소암모니아 등 신사업을 육성하기 위한 전략을 그룹에 공유했다.
특히 신 회장은 '고성장·고수익·ESG' 사업 포트폴리오를 주문했다. 기존 경쟁력을 강화하면서 창출되는 이익으로 신성장 동력을 준비하라고 했다.
또 시설 외 연구개발(R&D)·무형자산·기술·인재 등 필요한 투자를 적절히 판단하라면서 "투입 자원과 발생 수익을 동시에 고려하라"고 했다.
이에 더해 "변화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각종 리스크를 시스템 구축을 통해 선제적으로 관리해 달라"고 경영진에게 당부했다.
외부 연사로는 한국투자증권과 마이크로소프트(MS) 인사가 초청됐다. 이들은 '세계 경제 패러다임 변화와 전망'과 '생성형 AI 의미와 비즈니스 활용'을 주제로 강연했다.
이날 VCM은 오후 2시께 시작해 오후 6시께 끝난 것으로 파악된다. 이후 참석자들은 만찬을 이어가면서 후속 논의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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