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순간, 진짜여야 했다"…김혜수, '밀수'에 쏟은 모든 것 (시사회)
[Dispatch=정태윤기자] 처음엔 우리가 아는 얼굴이었다. 하이톤 목소리, 섹슈얼한 옷차림, 한마디로 팜므파탈. 영화 '타짜'의 정마담과 '도둑들'의 팹시를 떠올리게 했다.
그러나 러닝타임이 흐를수록, 다양한 모습을 드러냈다. 자신을 믿어주지 않은 친구를 향한 원망, 그럼에도 굳건한 우정. 여기에 위기의 상황에서 전세를 역전시키는 카리스마까지….
그래서, 김혜수는 김혜수였다.
"김혜수 선배가 영화 찍는 내내 '진짜여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류승완 감독)
그 '진짜' 덕분에, 어려움도 극복했다. 물 공포를 이겨냈다. 촬영 중 이마가 찢어지는 부상을 겪어도, 고통스럽지 않았다.
"촬영 때 쓴 일기를 펼쳐봤어요. '힘들다'는 말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다 '너무 좋다'였어요. 그만큼 현장을 좋아했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 결과물이 '밀수'입니다." (이하 김혜수)
김혜수가 18일 영화 '밀수'(감독 류승완) 언론배급시사회에 참석했다. 류승완 감독을 비롯해 염정화, 조인성, 박정민, 김종수 고민시 등이 참석했다.
'밀수'는 해양범죄활극이다. 바다에 던져진 생필품을 건지며 생계를 이어가던 사람들의 이야기. 이들 앞에 일생일대의 큰 판이 벌어지게 된다.
김혜수는 '조춘자' 역을 맡았다. 춘자는 14살에 식모살이를 시작한다. 돈이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해왔다. 수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와 밀수에 승부수를 던진다.
김혜수와 염정아(엄진숙 역)가 투톱으로 이름으로 올렸다. 김혜수는 "여성의 서사가 중심인 영화를 받고 반가웠다. 게다가 무겁지 않은 상업 영화라서 감사했다"고 출연 계기를 떠올렸다.
단, 여성 서사에만 매몰되려 하지 않았다. "여성 중심 영화에 책임감을 느끼려 하지는 않았다"며 "영화가 주는 재미에 충실하고 현장에 최선을 다했다"고 강조했다.
약 3년 만의 영화다. 진심일 수밖에 없었다. 류승완 감독은 김혜수에 대해 "촬영 전에는 연출부처럼 일하더라"며 열정에 박수를 보냈다.
류승완 감독은 "김혜수 선배가 밤 12시에 갑자기 자료를 보내기도 했다"며 "영화에 등장하는 수많은 디테일에 큰 도움을 주셨다"고 설명했다.
춘자는 해녀다. 물속 깊이 잠수해 밀수품을 찾는다. 바다에서 물건을 들어올린다. 심지어 수중 액션 신도 있다. 어설프게 준비하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김혜수를 포함한 해녀 역 배우들의 고민이 컸다. 촬영 3개월 전부터 수중 신을 준비해야 했다. 김혜수는 평소 물 공포증을 겪고 있는 배우. 그럼에도 대역은 쓰지 않았다.
김혜수는 악조건을 극복한 일등 공신으로 동료들을 꼽았다.
"신기하게 해녀 역을 맡은 배우들과 함께 연습하니, 극복하게 되더라고요. 특히 염정아 배우와는 특별한 게 있었어요. 물밑에서 스탠바이할 때, 서로를 온전히 신뢰하고 의지하는 느낌.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어요."
그는 클라이맥스 수중 액션 장면에서 이마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김혜수는 "이마가 찢어진 것보다, 현장에 못 간다는 게 속상할 정도로 현장을 사랑했다"고 전했다.
"오늘 촬영 때 썼던 일기를 펼쳐보고 왔어요. '힘들다'는 이야기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래서 좋고, 저래서 눈물 나게 좋다'는 글뿐이었어요."
배우에게 현장은 어려운 존재다. 수많은 스탭에게 둘러싸여 매 순간 한계를 확인하게 된다. 37년 차 베테랑 김혜수에도 마찬가지. 그러나, '밀수' 현장은 달랐다고 말한다.
"촬영 현장이 늘 즐거울 순 없어요. 힘들고 속상한 일들의 연속이죠. 그런데 일하면서 오직 즐겁다는 경험을 했다는 게 처음입니다. 앞으로 이런 순간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반짝이는 선물을 받은 것 같습니다."
특히 함께 주연을 맡은 염정아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김혜수는 "염정아는 저와 반대 기질을 가진 배우다. 힘을 빼면서 많은 걸 전달한다" 설명했다.
이어 "염정아는 조춘자를 입체적으로 채워줬다"며 "제가 아직 배우로서 극복하지 못한 단점을 채워줬다. 잊지 못할 파트너"라고 극찬했다.
염정아 역시 김혜수에 대해 "촬영할 때부터 정말 많은 사랑을 베풀어줬다. 함께하는 모든 순간이 다 좋았다. 또 작품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김혜수는 이날 후배 배우들을 향한 칭찬을 멈추지 않았다. "박정민과 고민시의 연기는 현장에서도 너무 좋았다"며 "너무 잘해서 계속 모니터하고 싶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최고참 선배로서 현장을 이끌고, 후배들을 뒷받침했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김혜수는 영화 내내 빛났다. 원톱 영화라고 해도 무관할 정도였다.
생계를 위해서라면 간도 쓸개도 빼줄 것 같은 가벼움. 그러나, 자신을 믿지 못하는 진숙 앞에 진짜 얼굴을 드러냈다. 낮은 목소리로 진숙을 부르는 목소리에는 분노, 절망, 원망, 사랑 등 수십 개의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잘할 수밖에 없었다. 진심으로 임했으니까.
류승완 감독은 "김혜수 선배가 촬영 내내 '우리가 하는 것이 진짜여야 한다'고 말했다. '영화란 무엇인가' 다시 생각하게 됐다. 그만큼 진심으로 정성을 다해 만드는 게 영화인 것 같다"고 털어놨다.
마지막으로 김혜수는 "제 영화를 극장에서 관람하는 게 정말 오랜 만이다"며 "새로 개봉하는 모든 영화에 관심 가져달라. '밀수'도 많은 응원부탁드린다"고 마무리했다.
한편 '밀수'는 오는 26일 극장에서 개봉한다.
<사진=정영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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