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균 칼럼] `안전 대한민국`에 직을 걸라

2023. 7. 18.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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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균 국장대우 겸 금융부동산부장

1994년 10월 21일. 잊고 싶지만 잊혀지지 않는 날이다.

출입처인 서울시청에 막 들어서던 오전 7시28분. 성수대교 붕괴소식이 들려왔다. '설마'했지만 곧 망연자실했다. 버스 등교길에 나선 무학여고 학생을 포함 32명이 영문도 모른채 희생됐다. 한 해 전(1993년 1월7일)의 청주 우암상가아파트 붕괴 사고를 잘 마무리한 공으로 수도 서울의 행정수장이 된 이원종 당시 서울시장은 경질됐다. 대구시장에서 긴급 차출된 후임 우명규 후임 시장은 성수대교 건설 당시의 감독 책임론에 휘말리며 11일만에 옷을 벗었다.

아픔은 또다시 찾아왔다. 8개월이 막 지난 1995년 6월29일. 민선 1기 지방선거 취재를 막 끝내고 회사로 복귀하려던 5시52분. TV화면에 붕괴된 삼풍백화점의 처참한 몰골이 나타났다. 502명이 숨지고, 6명이 실종됐다. 한국전쟁 이후 가장 큰 인적 피해를 낸 참사다.

우명규 시장의 바통을 이어받은 최병렬 신임 서울시장은 취임 이후 서울의 주요 교량을 전면 재시공하다시피 보강했다. '최틀러'라는 별명에 걸맞게 강력한 집행력을 발휘했다. 그런 최 시장 역시 하루 뒤인 6월30일 0시, 장맛비 속 삼풍 사고 현장에서 조순 민선1기 서울시장에게 자리를 넘겼다. 그 삼풍 자리에 들어선 아파트가 바로 윤석열 대통령의 사저가 있는 아크로비스타다.

두 참사의 원인은 안전불감증이다. '탐욕'은 부실설계, 부실시공, 부실감리로 이어졌고, '설마'는 부실한 사후 관리를 거쳐 붕괴라는 결과물을 낳았다. 거의 30년 전 일이다. 그동안 우리의 안전 관련 법과 제도, 시스템은 선진국 수준으로 정비됐다. 시민의식도 몰라보게 달라졌다.

하지만 참사는 해마다 어김없이 되풀이되고 있다. K컬처가 세계인을 사로잡고, 삼성의 휴대폰, 현대의 자동차가 전 세계를 누비는 2023년 오늘에도 안전불감증은 여전히 대한민국의 국격을 갉아먹는 주홍글씨로 남아있다.

지난 15일 충북 청주시 오송면 궁평2 지하차도 참사도 안전불감증이 빚은 전형적인 인재다. '탐욕'과 '설마'에, 교통통제 요청을 무시한 '무사안일'이 더해졌다. 이번 참사는 부산 초량 제1지하차도 사고의 판박이다. 2020년 7월23일 폭우로 지하차도가 순식간에 침수되면서 차량에 갖힌 3명이 목숨을 잃었다. 고장난 출입통제시스템을 방치한 것이 사고의 주 원인이다. 정부는 서둘러 대책을 발표했다. 3년이 지난 궁평2 지하차도에는 여전히 출입통제시스템을 설치하지 않았다. 그나마 관련 기관들은 긴급 교통통제 요청도 무시했다. 책임을 놓고 '네탓 공방'만 하고 있다. 정치적·이념적 계산에 따라 국토교통부로부터 관할권을 넘겨 받은 환경부는 역량 부족을 여실히 드러냈다.

윤석열 대통령은 원인 파악과 사고 수습, 엄정대응, 그리고 재발방지책을 주문했다. 정치권도 모처럼 한목소리를 냈다. 이번 역시 익숙한 장면이 그려진다. 국회는 '안전제일'을 외치며 추경 편성에 나설 것이고, 정부는 복구 예산 조기집행에 총력을 기울일 것이다. 수사기관은 관련자들을 줄줄이 엮어 재판정에 세울 것이다. 그리고 이슈가 이슈를 덮고 시간이란 보약까지 더해지면, 안전 예산은 포퓰리즘 예산에 깎이고, 관련자들은 무혐의나 벌금·집행유예로 풀려나는 그 장면이다.

정책에 있어 책임은 '한 행위'에만 부과되지 않는다. '제때 혹은 제대로 하지 않은 행위'에도 책임이 지워진다. 특히 안전 이슈는 '하지 않은 책임'이 더 큰 참사를 몰고 온다는 것이 경험칙으로 증명됐다.

판박이 참사는 법과 정책을 만들고, 예산을 책정·집행하고, 사후관리하는 전 과정 걸쳐 생기는 구멍과 누수에 따른 것이다.

출입통제시스템은 예산 집행이 제대 이뤄지지 않으면서 오송 참사로 이어졌다. 서울시는 침수 위험 아파트에 차수설치비를 지원하기로 했지만 올 4월에야 자치구 예산이 교부됐다. 서울 시내 반지하 침수 방지시설도 설치비율이 30%에 불과한 상황이다. 윤 대통령은 18일 국무회의에서 "재난관리체계와 대응방식을 근본적으로 확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후변화 등에 대비한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자는 취지다. 하지만 '이제 안전한 세상이 열리겠구나'라고 안심할 국민이 있을까.

'안전하고 행복한 나라'. 이번 참사를 아픈 가슴으로 지켜본 국민의 바람이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서울-양평고속도로 노선변경 논란과 관련해 직(職)을 걸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도 직을 걸라고 했다.

직은 그럴 때 거는 것이 아니다. 국민을 위해 거는 것이다. 대통령부터 국회의원, 장·차관, 지자체장, 그리고 일선 공무원까지 '안전 대한민국'이라는 목표에 직을 걸어야 한다. 국민이 자신을 왜 뽑았고, 혈세로 자신의 월급을 왜 주는지 마음에 새기고, 팔뚝에 문신으로라도 새겨야 한다.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다.

김화균 국장대우 겸 금융부동산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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