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탁환 칼럼] 강둑에서 재난을 생각하다
김탁환 | 소설가
장대비가 쏟아진다. 농부들이 강둑에 올라서선 엄청나게 불어난 강물을 살핀다. 2020년 여름 장마에 강이 범람하여 구례와 남원과 이곳 곡성이 수해를 입은 탓이다. 그해 농부들은 깨달았다. 내 논과 내 벼만 안전하면 그만인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강둑이 터져 전답과 마을을 덮치면 그 누구도 무사하지 않다는 것을! 정부는 물난리를 겪은 농부들 앞에서 다시는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대책을 세우겠다고 했다. 그 약속은 지켜졌을까.
좋아하는 작가들의 두번째 책만 골라 읽던 시절이 있었다. 데뷔작은 출간을 확신하지 못한 상태에서 쓰는 경우가 많다. 두번째 책은 이미 한번 출간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제 내가 어떤 작가인가를 제대로 보여주겠다는 부담감까지 더해진다. 데뷔작이 탁월한 경우도 종종 있지만, 그 작가가 예술가로서 자신의 삶을 어떻게 꾸려가려 하는지는 두번째 책에 더 많이 더 자세하게 담겼다. 변명과 핑계가 허용되지 않는 세계란 걸 알아버린 자의 표정이랄까.
지난 7월8일, <황해문화> 창간 30주년 심포지엄이 ‘정의로운 전환을 위하여: 다중재난 시대의 새로운 길 찾기’라는 주제로 열렸다. ‘다중재난 시대’라는 진단이 가슴을 비수처럼 깊이 찔러 숨이 막혔다. 다중재난은 여러 분야에서 여러 재난이 예측하기 어려울 만큼 번갈아 자주 일어나는 것이다. 예전에는 한 나라에 국한되던 재난이 이제 국경과 대륙을 넘어 전지구적인 난제로 확대되었다. 자연이 일으킨 재난과 인간이 만든 재난이 꼬리를 문 뱀처럼 다양한 방식으로 뒤섞이는 중이다. 특히 기후위기는 다중재난의 범위와 피해의 심각성을 배가시켰다. 사회적 취약 계층일수록 다중재난에 더 많이 노출되고 더 치명적인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에는 서울 관악구 도림천 인근이 침수되더니, 올해는 충청북도 청주 오송과 경상북도 예천 등이 심각한 수해를 입었다. 집중호우 지역은 바뀌더라도, 반지하 주택이나 지하차도 등 지하시설물들이 물에 잠기고, 야산이 무너져 피해자가 속출하는 것은 같다. 기록적인 강우량과 이 지역에선 처음 있는 불상사라는 보도가 나오지만, 2020년부터 여름 수해 현황을 검토하면, 이 계절마다 유사한 재난이 반복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난해 여름 수해를 입은 지역의 고통이 얼마나 컸고, 중앙정부 차원에서 어떤 대책들이 마련되었으며, 그 여름에서 이 여름까지 전국에서 수해 위험 요소들을 제거하려는 노력을 어떻게 해왔는지부터 확인할 필요가 있다. 특정 마을이나 산천에서 어쩌다 생긴 비극으로 간주하지 않고, 전국 어디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재난임을 전제하고 그 대책을 체계화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올해 발생한 수해의 원인을 ‘천재’나 ‘지변’으로 떠넘길 수 없는 이유다.
강둑에 서서 이웃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3년 전엔 강 건너 남원 쪽 강둑이 터졌다고. 그곳이 버텼다면 우리가 서 있는 이 강둑이 터져 곡성 읍내까지 위태로웠을 것이라고. 그렇지만 어느 강둑이 터졌는가 하는 것은 행운과 불운을 따질 문제가 아니다. 어느 여객선을 타든, 어느 거리를 걷든, 어느 강둑 아래에서 마을을 꾸리고 농사를 짓든, 다치거나 죽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
다중재난 시대에는 재난에 대처하는 방법과 과정도 달라져야 한다.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지구인 전체가 3년 동안 고통을 참으며 노력하지 않았는가. 예전엔 장마가 아무리 길고 작달비가 쏟아져도 제 논의 물꼬와 벼만 살피면 되었지만, 이제는 섬진강과 연관된 더 많은 조직이 손발을 맞춰 긴급 상황에 대비하고 대처해야 한다. 홍수통제소와 지방자치단체장들과 각종 댐 책임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강의 범람을 막아야 한다. 2020년 수해 현장에서 들었던 가장 끔찍한 말은, 그토록 많은 강물이 한꺼번에 쏟아졌으니, 섬진강에서 어느 강둑이 터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위험이 이 나라를 지탱하는 다른 줄기에도 묻혀 있는 것은 아닌지,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하여 국민의 목숨을 위협하는 것은 아닌지 두려웠다.
비가 차츰 줄어든다. 강둑에 서서 이웃들과 눈을 맞춘다. 다중재난 시대를 이겨내자며 서로 어깨를 두드려준다. 비스와바 심보르스카는 ‘첫눈에 반한 사랑’이란 시를 이렇게 마쳤다. ‘모든 시작은/ 결국에는 다만 계속의 연장일 뿐/ 사건들의 책은/ 언제나 중간에서부터 펼쳐지는 것을’
사랑이든 재난이든, 불가항력을 느끼더라도, 처음이라 단정하지 말고, 두번째의 책임을 되새겼으면 한다. 다음 억수장마에도 강둑에 모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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