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지난 걸까 지연된 걸까

전슬기 2023. 7. 18.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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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프리즘]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아파트 풍경. 연합뉴스

[한겨레 프리즘] 전슬기 | 금융팀장

“고비는 넘긴 것 아닐까요.”

얼마 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발 금융위기 가능성을 묻는 말에 한 정부 관계자가 조심스럽게 답한 말이다. 실제 최근 금융권 안팎에서는 위기 뇌관으로 지목돼온 문제들이 다행히 잘 버텨주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표적인 것이 부동산 피에프와 자영업자 부채다. 산발적 위험은 터지고 있으나 큰 불길로는 번지지 않고 있다. 우리는 위기를 잘 넘기고 있는 걸까, 아니면 위기는 그저 지연되고 있을 뿐일까.

최근 몇년 동안 부동산 피에프와 자영업자 부채는 위기의 진원지로 꼽혀왔다. 수치가 확인해준다. 부동산 피에프 익스포저(대출+유동화증권 채무보증)는 지난해 9월 말 기준 163조4천억원으로, 2017년 말(80조6천억원)보다 두배 넘게 늘었다. 부동산 경기 호황을 타고 최근 9년간(2013~2022년) 비은행권의 부동산 피에프 대출과 유동화증권 채무보증은 각각 522.4%, 310.9% 급증했다.

자영업자 쪽 사정도 비슷하다. 올해 1분기 말 기준 자영업자 대출 잔액은 1033조7천억원으로 코로나19 발생 직전인 2019년 4분기 말(684조9천억원) 대비 50.9% 늘었다. 빚 규모가 클수록 금리 인상과 경기 악화, 부동산 등 자산시장 위축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부동산 피에프와 자영업자 부채가 위기의 뇌관으로 거론됐던 이유다.

다만, 위기는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금융권 많은 이들이 살얼음판을 걷고 있지만 보이는 지표는 괜찮은 편이다. 부동산 피에프 대출 전체 연체율은 지난해 말 기준 1.19%로 과거 부동산 피에프 문제가 터졌던 2011~2013년 평균 연체율(10.2%)을 크게 밑돌고 있다. 최근 부실 우려가 커진 새마을금고도 부동산 피에프와 유사한 관리형 토지신탁 대출 연체율이 1.12%인 것으로 알려졌다. 자영업자 대출 연체율은 올해 1분기 말 기준 1.0%로, 2019년 4분기 말(0.76%)보다는 높지만 아직 1%대다.

이는 정부의 정책 지원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가령 부동산 피에프의 경우, 지난해 하반기 브리지론 만기가 큰 위험으로 부상했다. 브리지론은 부동산개발 시행사들이 토지 매입 등 초기 사업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6개월~1년 단위로 받는 단기 대출을 뜻한다. 보통 제2금융권에서 고금리로 돈을 빌리는데, 착공에 들어가면 본피에프 대출을 다시 받아 상환한다. 그런데 2020~2021년 주택 경기 호황으로 크게 늘어난 브리지론들 만기가 2022년 하반기에 집중됐다. 부동산 시장이 식으면서 브리지론에서 본피에프 대출로 전환이 지연되는 경우가 늘면서 부도(기한이익 상실) 위험도 커졌다. 이에 정부가 정책 지원에 나서 브리지론들의 만기가 여럿 연장된 바 있다. 정부는 또 지난 4월 말부터 부동산 피에프 대주단 협약을 가동해 만기 연장, 이자 유예, 신규 자금 지원 등 사업 정상화를 꾀하고 있다.

자영업자 대출도 만기 연장 및 원리금 상환 유예 지원이 2020년 4월부터 시행 중이다. 오는 9월 말 원리금 상환 유예 지원이 종료되지만, 관련 대출 규모가 6조6천억원(올해 3월 말 기준)으로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방역 조처 완화로 여력이 생긴 일부 자영업자들이 빚을 갚기 시작했거나, 빚을 아예 갚기 힘든 자영업자들은 새출발기금 채무 조정으로 건너간 것으로 추측된다. 78조7천억원 규모로 추정되는 만기 연장 관련 대출은 2025년 9월까지 지원이 유지된다.

누구는 현재 상황을 ‘위기를 발로 차서 다음으로 떠넘겼을 뿐’이라고 표현한다. 정부 정책 지원 등으로 위기를 누르고 있을 뿐, 언제든 터질 수 있다는 얘기다. 반대로 아슬아슬한 상황 속에서 정부 지원으로 시간을 벌면서 고비 국면을 의외로 잘 넘기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위기 뇌관들의 중간 점검이 필요한 때다. 최근 다시 들썩이는 부동산 관련 가계대출도 같이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

sg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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