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비 뒤덮고 손에 물집 터져도… “실종자 찾겠다는 마음뿐” [전국 ‘물폭탄’]
소방대원·군병력·경찰 인력 등
삽으로 진흙 파내느라 손 ‘퉁퉁’
“실종 가족들 얼마나 침통할지…”
의용소방대도 생업 제치고 동참
전국서 달려온 봉사자들도 맞손
“힘들 분들께 밥이라도” 식사 제공
“구조 대원에 커피” 착한 가게도
“포크레인이 진흙을 파내면 확인해. 빨리빨리!”
18일 오전 10시쯤 경북 예천군 효자면 백석리. 지난 15일 새벽에 쏟아진 집중호우로 백석리 마을은 그야말로 쑥대밭이 됐다. 도로는 여기저기 끊겨 차량 이동은 어려웠다. 장대비가 쉼 없이 내리는 궂은 날씨 속 비탈진 산길을 따라 3㎞ 걸어 오르자 노란색 폴리스 라인이 쳐져 있었다. 그 너머 매몰된 마을이 나타났다.
이 마을은 산 중턱에서부터 휩쓸고 내려온 토사가 마을 전체를 덮쳤다. 자동차는 진흙에 파묻혀 뒤집혔고, 컨테이너 농막은 300m가량 떠내려 와 골조가 훤히 드러나 있었다. 무릎 장화를 신었지만 진흙에 발이 푹푹 빠져 한 발을 내딛기도 힘들 정도였다.
“다들 꼭 찾겠다는 마음뿐입니다.” 수색 현장을 진두지휘하는 송인수 경북소방본부 예방안전과장은 쉼 없이 몸을 움직이며 이렇게 말했다. 이 마을은 집중호우로 산사태가 발생하며 5명의 인명 피해가 났다. 4명은 숨졌고, 1명은 실종 상태다.
송 과장은 나흘째 이곳에서 실종자 수색을 하고 있다. 포크레인이 땅을 파헤치면 소방대원과 군 병력, 경찰관 등은 삽과 탐침봉을 들고 일일이 주변을 살피는 식이다. 송 과장은 “하늘도 무심하지 비가 계속 내려 수색이 쉽지 않다”면서 “오늘은 실종자를 찾아야 할 텐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그는 비와 땀이 뒤섞여 턱 끝에 고인 물을 빨간 우비 소매로 벅벅 닦아댔다.
구조대원들은 탐침봉과 삽을 들고 여기저기 파댔다. 계속된 삽질에 손바닥이 퉁퉁 부어 물집이 잡혔으나 이들은 끝까지 삽을 놓지 않았다. 울산에서 동원됐다는 경찰관 이모(40대)씨는 “우리 가족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실종자를 찾고 있다”면서 “조금이라도 빨리 실종자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뿐”이라고 말했다.
‘핸들러’, ‘모리스’…. 수색 현장에는 사람만 동원된 게 아니다. 구조견도 동원됐다. 이날 발견된 실종자는 두 명이다. 이 중 한 명은 강원경찰청 소속 구조견 ‘볼트’가 찾아냈다. 경북소방본부에 따르면 이날 낮 12시3분쯤 예천군 감천면 진평리에서 70대 여성 실종자가 발견됐다. 시신은 마을회관에서 50m 떨어진 지점에서 볼트가 찾아냈다.
이재민을 향한 따뜻한 도움의 손길도 잇따르고 있다. 경북 지역 여성단체협의회와 부녀회, 새마을회, 청년회 등 20여개 민간 단체 소속 자원봉사자 200여명이 봉사활동에 나섰다. 이들은 집중호우 피해 가구를 찾아 젖은 가구를 밖으로 꺼내고 토사 제거를 도왔다. 적십자 회원과 개인 봉사자 등은 식사 봉사를 했다.
구조 당국에 커피를 무료로 제공한다는 착한 카페까지 등장했다. 예천군 예천읍의 카페에는 ‘군인·소방·경찰·공무원 분들께 아메리카노 무상 제공합니다. 부담 없이 들러 주세요’라는 글이 출입문에 붙었다. 카페 운영자인 김소현(32)씨는 “해드릴 게 이것뿐이라 미안하다”면서 “현장에서 구슬땀 흘리는 모든 분이 와서 편하게 음료를 받아 가고 잠시라도 편히 쉬다 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예천군 사회복지과에는 현재 하루 200통이 넘는 자원봉사 문의 전화가 걸려 오고 있다고 한다.
현재 호우로 인한 인명 피해는 예천군에서 실종된 2명이 추가로 시신으로 발견돼 사망 21명, 실종 6명, 부상 17명이다.
충북 청주시 오송읍 이재민 임시 주거 시설이 마련된 오송복지회관 앞에서도 이웃을 향한 온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회관에서 파란 우비를 입고 장대비를 맞으며 차량 안내를 하던 김홍범(64) 정중2리 이장은 손에 쥔 야광봉을 흔들며 “더 어려운 사람도 있는데,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김 이장은 이날 오전 8시부터 온종일 오송읍 다른 이장들과 함께 읍사무소로 기부된 식수, 간식, 빗자루 등 물품 배달 봉사를 했다.
허정옥(54) 대한적십자사봉사회 청주흥덕지구협의회 고문은 이날 오전 5시30분부터 밥차 안에서 뜨거운 김을 맞으며 300인분의 식사를 준비한 탓에 머리에 땀띠가 났지만 “수재민 피해에 비하면 우리 힘든 건 아무것도 아니다”라며 “힘든 분들 밥이라도 해드리려고 나왔다”고 말했다.
예천=배소영 기자, 청주=조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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