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 이미 한번 막힌 논리로 '엘리엇 불복'…승소 가능성 있나

류인선 기자 2023. 7. 18.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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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389억원 배상 명령에 불복해 취소 신청
"ISDS 대상 아니라 취소 필요해"…논리 구성
중재판정 심사 과정에서 제시한 주장과 유사
[서울=뉴시스] 배훈식 기자 =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엘리엇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 판정 후속조치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2023.07.18. dahora83@newsisc.com

[서울=뉴시스] 류인선 기자 = 정부가 외국계 사모펀드 엘리엇과의 ISDS(ISDS·Investor-State Dispute Settlement) 판정에 불복해 취소 신청을 제기했다. 법무부가 언론에 공개한 취소 사유들은 대체로 판정부가 이미 받아들이지 않은 주장들인 것으로 파악됐다.

18일 법조계에 따르면 법무부는 엘리엇과의 ISDS 결론에 불복해 취소 신청을 제기했다. 중재판정부는 지난달 20일 우리 정부가 5358만6931달러(환율 1288원 기준 약 690억원), 이자, 법률 비용 2890만3188(약 372억) 등 1억781만달러(약 1389억원)을 배상하라고 명령했다.

이에 대해 법무부는 이날 "'소수주주는 자신의 의결권 행사를 이유로 다른 소수주주에게 어떠한 책임도 부담하지 않는다'는 것이 상법상의 대원칙이자 상식"이라고 주장했다.

엘리엇은 국민연금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찬성(2015년 7월)한 것이 '정부의 부당한 조치'라고 주장하며 7억7000만달러(약 9900억원) 배상을 청구했는데, 국민연금의 합병 찬성은 주주권 행사로 '정부의 조치'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따라서 국민연금의 투표와 엘리엇 사이 법률적 '관련성'이 없으며, 국민연금의 행위가 정부에게 '귀속'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서울=뉴시스] 엘리엇 *재판매 및 DB 금지

정부는 2019년 9월27일자로 제출한 반박서면에서도 "상장회사 소수주주의 상행위이며 이는 기껏해야 주주 간 분쟁을 야기할 문제이지 협정상의 청구원인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최종 제출한 심리 후 반박서면에서도 "한국은 기존 서면에서 한국이 한 어떠한 행위도 협정상 '조치'의 정의를 충족하지 않는다는 점을 입증했다"고 기존 입장을 유지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조치가 성립하기 위해 갖춰야 할 조건으로 '정부가 채택하거나 유지한 조치'를 제시하기도 했다. 정부는 반박서면에서 같은 주장을 한 적이 있다. 서면에는 "조치라는 용어의 의미를 제한하기 위한 것"이라며 'FTA의 다른 용례에서도 구체적 규칙의 제정 권한과 관련된 의미'라고 주장했다.

한 장관은 FTA 상대방인 미국 정부가 낸 의견서 속 "당국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행사하는 비정부기관의 조치는 그 기관이 위임받은 정부적 권한의 범위를 벗어난 행위는 포함하지 않는다"는 내용도 근거로 제시했다.

하지만 이날 배포된 판정문 요약자료를 종합하면, 판정부는 국민연금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찬성 표결 행위는 협정상 ‘정부의 조치’로 볼 수 있다는 취지로 판단했다. 미국의 의견서도 판정부가 이미 심사한 것으로 파악됐다.

판정부는 국민연금의 투표와 엘리엇의 손해 사이 관련성도 인정했다. 우리 정부의 주장은 배척됐다.

법무부는 이날 "다른 소수주주인 엘리엇의 투자에 대한 조치를 취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며 관련성이 없다는 주장을 유지했다. 정부는 반박서면에서도 "국민연금의 투표는 엘리엇의 투자에 대해 법적으로 유의미한 관련성을 가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법무부는 '귀속' 여부도 다시 다투겠다고 했다. 한 장관은 판정부가 사용한 '사실상의 국가기관'이라는 용어는 수용할 수 없다고 했다. 한 장관은 이날 "사실상이라는 말을 막 쓰기 시작하면 (개념이 너무 넓어진다)"며 "한미 FTA도 규정을 명확하게 해뒀다"고 비판했다.

정부는 판정 과정에서 국내 행정법 전문가의 의견서를 인용해 국민연금은 법률상 국가기관이 아닌 독립된 법인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판정부는 국민연금의 공공성, 국민연금 기금 조성 방식, 운영 방식 등을 감안하면 국제법상의 국가기관에 해당한다고 본 것으로 풀이된다.

법무부는 일성신약 등 삼성물산 주주들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 등에서 법원이 '국민연금이 결과적으로 독립된 의결권 행사를 한 것으로 보인다'고 내린 판단도 논거로 제시했다. 그런데 이 역시 기존 서면에서 주장한 내용으로, 인용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귀속 문제는 이란의 다야니 일가와 우리 정부의 ISDS 사건에서도 쟁점이 됐다. 엘리엇 사건에서는 국민연금이 국가기관인지 다퉈졌다면, 다야니 사건에서는 캠코(KAMCO·한국자산관리공사)가 국가기관인지가 다퉈졌다.

영국 법원은 다야니 사건에서 "행위의 귀속을 추구하는 주체가 국가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이 명백하지 않은 경우, 그러한 분쟁은 중재인의 관할권에 속한다"고 판단한 적이 있다.

다만 다야니 사건의 판단 기준은 대한민국과 이란이 맺은 한-이란 투자협정(BIT)이다. 엘리엇 사건은 한-미 FTA가 준거법이 되기 때문에 단순 비교는 어렵고, 다야니 판례는 참고용 선례라는 분석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ryu@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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