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햇발] 공수처에 찾아온 기회, ‘검찰 카르텔’ 수사

이춘재 2023. 7. 1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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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발]

2019년 6월 여환섭 청주지검장이 서울 동부지검에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과 건설업자 윤중천 씨에 대한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검찰은 2013년과 2014년 두 차례에 걸친 수사에서 특수 강간 등 혐의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받은 김 전 차관과 윤씨를 함께 구속기소 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이춘재ㅣ논설위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드디어 ‘밥값’을 할 기회가 왔다. ‘김학의 긴급출금 사건’ 1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차규근 전 법무부 출입국관리본부장이 과거 김 전 차관을 수사했던 검사들을 공수처에 고발했다. 박근혜 정권 때 김 전 차관을 대놓고 봐준 검사들을 처벌하라는 고발이다. 제 식구라는 이유로 범죄자를 감싸는 것이야말로 윤석열 대통령이 증오하는 ‘이권 카르텔’이다. ‘검찰 카르텔’ 해체는 공수처의 존재 이유이기도 한데, 마침 대통령도 “이권 카르텔을 박살 내라”고 주문하니 이보다 더 좋은 기회가 있을까.

수사할 내용은 간단하다. 검찰은 2019년 검찰과거사위원회의 권고로 김 전 차관을 재수사해 건설업자 윤중천에게 뇌물을 받은 혐의로 기소했다(성폭력 혐의는 공소시효를 핑계로 뺐다). 검찰은 윤중천과 관련된 김 전 차관의 뇌물 액수가 1억3천만원 이상인 사실을 밝혀냈다. ①성접대 피해 여성이 윤중천에게 갚아야 할 빚 1억원 면제(제3자 뇌물수수) ②윤중천에게 3100만원어치 그림, 옷, 현금 등 수수 ③2006~2007년 ‘액수를 산정할 수 없는’ 13차례 성접대 등이다. 뇌물 액수가 3천만원 이상이면 ‘특정범죄가중처벌법’(특가법)에 해당하기 때문에 검찰은 김 전 차관에게 특가법을 적용했다. 그런데 2013년과 2014년 1·2차 수사 때는 검찰이 이런 혐의들에 눈감고 김 전 차관을 무혐의 처분했다. 법원에선 공소시효 만료 등의 이유로 김 전 차관의 무죄가 확정됐지만, 1·2차 수사 검사들은 ‘특수직무유기죄’로 처벌할 수 있다. 특수직무유기죄는 ‘범죄 수사의 직무에 종사하는 공무원’이 특가법이 적용되는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인지’하고도 ‘그 직무를 유기한 경우’에 처벌한다(특가법 제15조). 앞서 김 전 차관을 특가법으로 수사하지 않은 검사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검사들은 김 전 차관이 결국 무죄가 나지 않았느냐고 항변할지 모르지만, 함께 기소된 윤중천이 유죄(알선수재)가 확정됐기 때문에 빠져나가기 힘들다. 알선수재도 뇌물과 마찬가지로 특수직무유기죄 적용 대상이다.

2019년 6월 문무일 당시 검찰총장은 “김학의 사건 자체도 부끄럽지만, 과거 검찰의 두차례 수사에서 왜 이걸 밝혀내지 못했는지가 더 부끄럽다. (당시 수사팀이) 검사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이라고 말해 검사들의 ‘직무유기’를 인정했다. 그러나 당시 검찰과거사위가 이에 대한 수사를 권고한 것에 대해선 “법률상 문책 시효가 지났다. 밝힐 수 있는 것을 못 밝히고 이제 와서 시효가 지났다고 말할 수밖에 없어 부끄럽다”는 말로 빠져나갔다. 1차 수사 종료 시점(2013년 11월11일)을 기준으로 검사 징계시효(3년)와 일반 직무유기 공소시효(5년)가 모두 지났음을 겨냥한 말이다. 하지만 특수직무유기죄의 공소시효는 10년이다. 문 전 총장이 이를 몰랐는지, 아니면 거짓말을 한 건지도 이번에 밝혀져야 한다.

김학의 사건은 ‘한국판 미란다 사건’이란 말에 속기 쉬운 고약한 사건이다. 이 사건의 본질은 ‘검찰 카르텔’이다. 한밤에 출국하려는 그를 ‘피의자’도 아닌데 긴급출금한 것은 불법이라는 게 검찰 주장이지만, 검찰은 이 사건보다 더한 긴급출금도 남발해왔다. 대표적인 게 노건평씨 사례다. 2015년 ‘성완종 리스트’ 사건에 연루됐던 노씨는 참고인인데다 공소시효도 끝났고 해외 도피를 시도한 적도 없는데 긴급출금됐다. 이뿐만 아니다. 경찰이 요청한 긴급출금을 피의자 여부를 따지지 않고 승인한 것도 부지기수다. 2012년 긴급출금 제도가 도입된 이래 그렇게 운용해온 것이다. 그런데도 검찰은 마치 김학의 사건에서 새로운 범죄라도 발견한 듯 호들갑을 떨며 긴급출금에 관여한 이들을 기소했다. 그 이유는 기소된 이들을 보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광철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함께 청와대에서 검찰개혁을 주도했다. 조 전 장관이 검찰 수사로 낙마한 뒤에도 그는 2021년 7월 청와대를 떠나기 전까지 고군분투했다. ‘윤석열 사단’이 그를 ‘반드시 손봐야 할 인물’ 리스트에 올릴 정도였다. 공범으로 기소된 이규원 검사는 검찰과거사진상조사단에 파견돼 윤중천 면담보고서에 윤 대통령의 이름을 넣었다는 이유로 조직의 배신자로 찍혔다. 그는 허위공문서작성 혐의로 별도로 기소돼 있다. 이들에 대한 검찰 수사는 검찰개혁에 대한 보복이자, ‘검찰 카르텔’을 지키려는 몸부림이었다.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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