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한우농가 30여개 잠기고 수박 1만여개 초토화…폭우에 한숨 쉬는 충남 농가들
한우단지 전체 침수돼 ‘망연자실’
400㎜ 폭우 내린 부여 농가도
“수박·멜론 1만2000여개 고사”
“자식처럼 키운 소들은 죽고, 축사는 물바다가 됐어요.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지…”
지난 18일 오전 10시 충남 청양군 목면에 위치한 한우단지. 지난 닷새 간 전국에서 가장 많은 비(580㎜)가 내리면서 저지대에 위치한 이 단지 내 축사 30여곳은 모조리 물에 잠겼다. 인근 논밭과 과수농가까지 그야말로 쑥대밭이 됐다. 침수 피해를 복구하기 위해 마을 주민들은 물론 소방대원, 군 관계자, 축협 직원까지 총동원됐다.
이날도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축사 주인들은 굴삭기로 진흙과 빗물을 퍼 나르는 데 여념이 없었다. 사흘간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소들을 하루라도 편히 쉬게 하기 위해서다. 축사주인 50대 이모씨는 “기르던 소들 중 절반이 죽거나 사라져 막막하다”면서도 “남은 소들이라도 잘 돌보기 위해 빠르게 복구 작업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축사 주인들은 단지 바깥을 헤매고 있었다. 축사 바깥으로 도망간 소들을 찾기 위해서다. 축사가 물에 잠기자 일부 소들은 근처 야산과 차도로 헤엄쳐 나왔다. 탈출에 성공한 소들은 소방대원이나 축협 관계자들의 손에 이끌려 돌아왔지만, 대부분은 사체로 발견됐다. 농가에 설치된 밧줄이나 비닐에 걸려 익사한 것이다.
축사주인 60대 김모씨는 “암소는 400만원 이상, 송아지는 300만원 이상 정도 값이 나가는데, 폐사할 경우 판매는커녕 개체당 20만원의 처리비를 들여야 한다”며 “조만간 출하할 소들이 죽어 이번 명절 장사는 다 끝난 셈”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가축 피해가 없는 농장주들도 근심은 적지 않았다. 축사 복구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이성재 청양 축협 전무는 “소들이 앉아있는 톱밥을 새로 가는 비용이 수천만원, 빗물에 떠내려간 볏짚도 한 단에 7만원 가까이한다”며 “축사 한 곳당 재산 피해가 수천만~1억원에 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청양군에 따르면 이번 폭우로 한우 100여마리가 폐사했다. 폐사로 인한 재산 피해는 4억원에 달한다. 여기에 농장의 사료나 각종 기자재 등도 침수돼 추가 재산 피해가 예상되는 상황이다.
같은 시간 충남 부여군에 위치한 농가들도 폭우 피해를 본 건 마찬가지였다. 부여군 부여읍 자왕리의 한 수박 농가는 출하 일주일을 앞두고 완전히 초토화된 상태였다. 백마강 백제보와 불과 470여m 떨어진 이곳은 보가 넘칠 정도로 비가 쏟아지면서, 수확을 앞둔 열매들이 모조리 물에 잠겼다.
백제보에서 연결돼 농지를 가로지르는 배수로에선 황토색 흙탕물이 물거품을 만들며 배수구 사이사이로 뿜어져 나왔으며, 660㎡(약 200평) 하우스 안에는 두 줄로 심어진 수박 600개가 고사해 있었다. 성인 남성 머리만 한 수박들은 여전히 색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줄기는 이미 고사해 갈색으로 변한 상태였다. 진흙에 처박힌 수박은 아래서부터 누렇게 뜨기 시작했고, 물에 불은 수박 껍질은 주인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속절없이 문들어지고 있었다.
30년이 넘게 이 하우스를 운영해 온 이길한(53)씨는 “하우스 20동, 수박과 멜론 1만2000여개가 초토화돼 올해 농사는 다 망쳤다”며 “이번 농사가 잘 될 줄 알고 받았던 수박 출하 계약금도 전부 돌려줬다”고 말했다. 이씨는 이어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니고 인근 농가들이 장마철에 피해 보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예전부터 선거철만 되면 해결해준다 하는데 지금까지 이 모양”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부여군 쌍북리에서 벼농사를 짓는 농가들도 논 주변 제방이 터지면서 침수 피해를 봤다. 40년 가까이 벼농사를 지은 조남준(75)씨는 “물을 모아두는 제방이 터지면서 농가들이 폐허가 됐다”며 “4만평 중 3만2000평 가까이 물에 잠긴 상태”라고 상황을 전했다.
조씨는 “이곳(부여) 농가들은 1987년 이후로 36년 만에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며 “지자체에서 피해 규모나 경위를 정확하게 파악해 올해 수입이 날아가 임차료도 버거운 농민들을 도와줬으면 한다”고 바람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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