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이런 식이면 모든 연기금 결정이 ISD 대상"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는
정부 결정으로 보기 힘들어
메이슨과 2억달러 분쟁 등
ISD 소송 5건 판정 앞두고
부정적 영향 차단하려 제기
미국계 사모펀드 엘리엇에 우리 정부가 약 1300억원을 배상하라는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판정에 대해 법무부는 두 가지 차원에서 취소소송을 제기할 필요성을 밝혔다.
먼저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가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을 제기할 수 있는 '정부적 조치'에 해당하는지를 따지는 법리적 측면이다. 다음으로는 현재 정부가 진행 중인 5건의 ISD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 그리고 추후 공적기금의 의결권 행사에 비슷한 문제 제기가 들어올 가능성을 차단하고자 하는 정무적 측면이다.
법무부에 따르면 투자자가 '국가'에 대해 소송을 거는 ISD의 제도적 특성상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가 정부적 조치에 해당해야 PCA의 사건 관할이 가능하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규정에 따르면 정부적 조치는 △국가기관이 행한 조치거나 △비국가기관이어도 해당 행위가 정부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행위인 경우에만 인정된다. 이에 근거하면 국민연금은 한국법상 국가기관이 아닌 비정부기관이고, 또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국민연금이 위임받은 정부적 권한에도 해당하지 않는다는 게 법무부의 입장이다.
PCA는 이번 판정에서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 등이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에 부당하게 개입했다며 국민연금을 '사실상의 정부기관'으로, 의결권 행사를 '사실상의 정부적 조치'로 해석한 바 있다. 그럼에도 한미 FTA 규정에는 그러한 부당 개입을 '사실상의 정부적 조치'로 해석해 PCA의 관할권을 인정할 근거는 없다는 게 정부 측 해석인 것이다.
의결권 행사란 행위 자체가 상법 대원칙상 '사실상의 정부적 조치'로 해석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왔다. 법무부 관계자는 "주식을 취득하고 주주로서 권한을 행사하는 행위는 국민연금이 기금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행한 재산적 권한의 일부라 설령 국가적 개입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정부적 행위가 아니라고 본다. 향후 취소소송에서도 이 부분을 강조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도 18일 브리핑에서 "'소수 주주는 자신의 의결권 행사를 이유로 다른 소수 주주에게 어떤 책임도 부담하지 않는다'는 것이 전 세계적으로 공인된 상법상의 대원칙이자 상식"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대원칙을 무시하고 '사실상의 정부적 조치'란 유권해석을 앞세운 것은 옳지 못한 법리 적용이란 의미다.
법무부는 나아가 설령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에 불법적 지시가 있었다 하더라도 국민연금 내 의결 과정은 결과적으로 독립적으로 이뤄졌다고 본 국내 법원 판결을 내세웠다. 앞서 지난달 16일 서울고등법원은 일성신약이 국민연금을 상대로 제기한 4100만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기각했다. 또 삼성물산 소액 주주들이 제기한 합병 무효 소송 심리를 맡은 서울중앙지법도 2017년 10월 같은 이유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린 바 있다.
한 장관은 이와 관련해 "만약 이런 상업적 지분권 행사마저 ISD의 대상이 되면 우리나라뿐 아니라 다른 모든 국가의 국부펀드나 연기금 펀드의 지분권 행사도 ISD로 걸리게 된다"며 "공공기관 등이 소수 주주로서 주주총회에 참여해 의결권을 행사한 사안에서 국가의 책임을 묻는 ISD 사건은 전 세계적으로 사례를 찾기가 어렵다"고 덧붙였다.
한 장관은 취소소송에 따라 지연이자 등 추가 비용이 발생할 우려에 대해선 "취소소송 (승소) 확률이 그렇게 높진 않지만 충분히 해볼 만하다고 생각한다"며 "우리가 (판정을) 수용할 경우 어떤 종류로든 간에 정부의 지분권을 행사할 때 이게 선례가 될 것이기에 수긍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를 상대로 한 ISD는 엘리엇 사건을 포함해 현재 5건이 진행 중이다. 이번 취소소송의 향배가 이들 사건에도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미국계 헤지펀드 메이슨캐피털매니지먼트는 엘리엇과 같은 이유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손해를 봤다며 2억달러(약 2521억원)의 손해배상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 사모펀드 론스타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ISD는 지난해 8월 한국 정부가 론스타에 2억1650만달러(약 2728억원)를 배상하라는 판정이 났다.
[안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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