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와도 걱정, 안 와도 걱정”…화순 동복댐은 ‘물과 전쟁 중’
10년 새 ‘처음’ 20% 깨지더니…석달 만에 만수위 100% 기록
하루 1987만톤 방류, 하류지역 주민들은 침수 악몽에 ‘뜬눈’
(시사저널=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7월 17일 오전 11시 전남 화순군 이서면 동복댐. 비가 오락가락하는 가운데 이곳 댐의 한 귀퉁이 보에선 거대한 물줄기가 '우르르' 지축을 흔드는 굉음소리와 함께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쏟아져 내렸다. 계속된 장맛비로 광주 시민의 식수원인 동복댐이 2년 만에 만수위를 기록하며 월류(越流)하면서다.
동복댐의 처지가 날씨만큼이나 변화무쌍하다. 지난해부터 지속된 극심한 가뭄으로 인한 광주시민들의 '단수' 걱정은 채 석달 만에 댐 '범람' 걱정으로 바뀌었다. 강우량에 따라 댐 수위가 요동치고 있는 탓이다. 앞서 지난 4월 5일에는 10년 새 처음으로 저수율 '20%'가 깨지기도 했다. 비가 안 와도 걱정, 비가와도 걱정인 상황이다. 지금 동복댐은 '물과의 전쟁' 중이다.
"농사철에는 물 한방울 안 흘려주더니…"
동복댐으로부터 3㎞ 가량 떨어진 동복면 복녕리 마을 쉼터. 이 마을은 동복댐으로부터 가장 가까운 곳이다. 쉼터에 모여있던 주민들은 "집 근처 동복천이 범람할까봐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며 "비가 와도 걱정, 안 와도 걱정"이라고 하소연했다.
마을 주민들은 3년 전 악몽을 떠올리며 몸서리쳤다. 2020년 8월 초 동복 연월2리(복녕리) 주민들은 순식간에 불어난 물에 진입로와 농경지가 잠기면서 고립됐었다. 그때 입은 수해 피해 보상금을 아직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3대째 토박이로 마을이장을 지낸 최광수(73)씨는 "올 봄 농사철 가뭄에는 광주에 식수공급을 위해 물 한방울도 안 흘러 보내다가 폭우로 다급하니까 마구 방류해 놀부 심보에 다름없다"며 "마을에서 힘있는 인물을 배출하지 못한 탓인지 하류 주민들은 이렇다할 혜택도 받지 못한 채 물폭탄만 머리에 이고 살아가고 있다"고 토로했다.
'물그릇 작은' 동복호…가뒀다 내보냈다 오락가락
연일 광주·전남지역에 폭우가 쏟아지면서 동복댐 저수율이 만수위(수심 168.20m)를 넘겼다. 16일 자정 기준 동복댐 저수율은 만수위(100%)로 지난 2021년 이후 2년 만이다. 16일 한 때 수위가 168.88m까지 올라갔던 저수율은 월류와 방류로 인해 조금 줄어들었다.
동복댐 유효저수량은 9197만톤으로, 4억5700톤에 달하는 전남 승주 주암댐에 비해 물그릇이 턱없이 작다. 동복댐은 하류 지역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댐이 넘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홍수기(6월~9월) 최고 수위는 100%가 아닌 86.0%로 관리하고 있다. 저수율이 93%를 넘기면 자연적으로 물이 흘러넘치는 월류가 발생하게 된다.
동복댐은 장마가 시작된 후 저수율이 상승하자 지난달 29일부터 하천유지용수 밸브를 통해서 초당 16톤을 방류했는데, 지난 12일 자정부터 만수위를 넘겨 월류가 시작되면서 최고 초당 260톤까지 올라갔다가 17일 현재는 초당 230톤(하루 1987만톤)을 월류 내지 방류 중이다. 댐의 관리주체는 광주시 상수도사업본부 용연사업소이다.
'비 안 오면' 광주시민들, 물배급 그림자 얼씬
불과 3개월 전과는 천지차이다. 동복댐 저수율은 지난 4월 5일 18.28%로 최저점을 기록했다. 동복호의 저수율이 20%대 이하를 기록한 것은 10년 새 처음이었다. 이후 20%대에 머물렀고, 광주시민들의 물 절약으로 5월부터 겨우 30%대를 유지해왔다. 광주시는 동복댐 저수율 하락 속도가 너무 가팔라 하루 취수량을 예년 30만 톤에서 24만 톤으로 줄인데 이어 16만 톤까지 줄였다.
비가 너무 오지 않아 문제였다. 몇차례 비가 내리긴 했지만 찔끔비로는 저수율 하락 속도를 뚜렷하게 늦추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흘러든 빗물보다 광주의 정수장으로 빠져 나간 물이 더 많은 '미스매치'가 주요인이다. 광주지역 하루 물 사용량은 50만 톤이다. 광주 동구·북구는 동복댐에서 1일 물 22만 톤을, 서구·남구·광산구는 주암댐에서 1일 물 28만 톤을 각각 공급받았다.
매일 저수율이 0.2%씩 감소하자 올 2월이면 저수율이 한 자릿수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되기도 했다. 상수원 고갈에 '물 배급' 그림자가 아른거렸다. 동복호 저수율의 제한급수 마지노선은 7% 미만이다. 현행 '광주광역시 식용수 사고현장 조치 행동 매뉴얼'은 동복댐 저수율이 7% 아래로 내려가면 격일제 제한급수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광주에서 마지막으로 제한 급수가 시행된 것은 1992년이다. 광주시 한 관계자는 "동복댐의 경우 유효저수량이 적은데 비유하자면 물그릇이 적어 가뭄 피해가 빨리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비 많이 오면' 댐 하류 주민들, 침수 걱정
이제는 '물폭탄'이 문제다. 광주와 전남에 본격 장마가 시작된 지난달 26일 30.84%에서 일주일 만에 48%p가 상승하는 등 저수율이 급격히 오름세를 보였다. 지난 9일엔 2021년 7월 6일 99%이후 2년 만에 90%를 돌파하기도 했다.
방류량이 늘어나자 하류 주민들의 불안도 커지고 있다. 하천이 범람할 겨우 동복면과 사평면 8개 마을이 침수 위험지역으로 꼽히고 있다. 광주시 상수도본부는 상대적으로 하천 폭이 좁고 교량 높이가 낮은 복녕리 마을 앞 연월교 교각 아래 30~60㎝ 수위를 주민 대피 판단 기준으로 삼고 있다.
최하열 시 상수도사업본부 동복관리장은 "현재 연월교 수위가 1m이상 여유가 있어 주민 대피단계는 아니다"며 "기상 상황과 하천 수위를 모니터링하며 동복댐 주변 마을 주민에게 안전 문자와 방송을 보내는 등 비상 대응하고 있다"고 밝혔다. 화순 동복면사무소 한 관계자도 "안정적으로 하천관리가 이뤄지고 있어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하지만 하류 주민들의 '걱정'은 가시지 않고 있다. 3년 전 악몽이 되살아나면서다. 2020년 8월 이틀간 470㎜에 달하는 집중호우로 동복천 물이 불어난 데다 동복댐의 수위가 높아지자 광주시상수도사업본부가 방류하면서 동복천 주변 복녕리 마을 등은 하천이 범람해 농경지와 주택이 침수됐다. 동복면 천변리, 한천리 등 마을 주민 150여 명은 화순동복초 실내체육관에 대피하고 사평면 일부 주민들도 안전지대로 대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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