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기] 英 낫싱 스마트폰 ‘폰투’ 써보니… 색다르지만 플래그십으론 부족한 느낌
보기에 매력 있지만 성능은 중저가 수준
아이폰 닮은 전면 디자인도 한계… 방수도 썩
비싸지 않은 가격에 새로운 걸 원한다면 추천
“Come to the bright side.”
밝은 곳, 또는 선(善)으로 오라. 공상과학(SF) 영화 주인공이 악당의 꼬임에 넘어간 친구에게 할 법한 말이지만, 영국 스타트업 낫싱의 최신 스마트폰 홍보 문구다. 지난해 ‘아이폰은 지루하다’며 시장에 잔잔한 물결을 일으켰던 낫싱이 또 한 번 애플을 정조준한 것이다. 낫싱은 전 세계 누적 판매량 80만대를 기록한 ‘폰원(Phone 1)’의 인기에 고무돼 지난 12일 첫 플래그십(최상위 모델) 제품 ‘폰투(Phone 2)’를 들고 돌아왔다. 혁신은 있었을까. 지난 17일부터 1박 2일간 낫싱의 폰투를 써봤다.
◇ ‘디자인 차별화’ 앞세웠는데… ‘아이폰 느낌’ 강해
낫싱은 전작 폰원에서부터 디자인에 방점을 찍어왔다. 여느 스마트폰과 차별점을 두겠다며 내부 부품이 훤히 보이는 후면 디자인을 채택한 것도 이 때문이다. ‘남다른’ 디자인에 대한 낫싱의 열정은 제품 패키지(박스)에서부터 드러난다. 크기만 작다면 언뜻 초콜릿 포장처럼 보이는 정사각형 모양의 패키지는 바 형태의 스마트폰처럼 직사각형 모양을 한 타사 패키지와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더구나 납작하다. 충전기, 유심 핀 등 부품을 제품 밑이 아닌 옆에 펼쳐 배치한 결과다.
낫싱은 2020년 설립 때부터 환경 보호를 목적으로 ‘모든 포장을 종이로 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빨간 화살표를 따라 패키지를 찢도록 디자인해 비닐 포장을 없애고, 제품도 종이로 감싼다. 폰투 역시 마찬가지였다. 제품을 둘러싼 종이 위에 ‘Earth first(지구가 먼저다)’라는 설명을 적어 마케팅 효과도 노렸다. 다만 제품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유심 핀의 손잡이 부분을 플라스틱으로 마감한 점은 아이러니했다. 미래 지향적인 디자인으로 사용자의 눈은 즐겁지만, 폐기 시 분리수거를 더 어렵게 만든 건 아닐까.
의외인 점은 또 있었다. 패키지에서 꺼낸 폰투를 사용 중인 아이폰13 프로 맥스 옆에 두니 전면 디자인만으로 둘을 분간하기 어려웠다. 크기도 비슷했다. 폰투의 가로, 세로 길이는 각각 76.35mm, 162.13mm다. 아이폰13 프로 맥스의 가로, 세로 길이는 각각 가로 78.1mm, 세로 160.8mm다. 측면 소재 또한 폰투는 무광에 부들부들한 촉감이었고, 아이폰13 프로 맥스는 유광에 매끄러운 촉감이었지만 얼핏 보기에 닮았다. 단, 폰투가 아이폰13 프로 맥스보다는 더 가벼웠다. 폰투와 아이폰13 프로 맥스의 무게는 각각 200.68g, 238g이다. 낫싱은 아이폰이 ‘더 이상 창의적이지 않다’고 도발한 바 있다.
외려 눈에 들어온 건 전작과의 차이였다. 기존 상단 좌측에 있던 펀치홀은 가운데로 옮겨졌고, 화면은 6.7인치로 0.15인치 커졌다. 후면도 전작과 달리 곡선 유리로 마감했다.
◇ 회심의 후면 ‘글리프 인터페이스’, 실효성은 “글쎄”
물론 낫싱의 무기는 후면의 ‘투명’ 디자인이다. 낫싱이 자체 개발한 ‘글리프 인터페이스’를 위해 설계한 디자인이다. 글리프 인터페이스는 벨소리나 알림음에 맞춰 발광다이오드(LED) 전구를 깜빡이는 기술로, 장시간 스마트폰 이용에 피로를 호소하는 사용자가 많다는 점에서 착안해 개발했다는 게 낫싱 측 설명이다. 사용자가 화면을 보지 않고도 불빛만으로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돕는다는 취지다. 낫싱은 이를 처음 도입한 폰원으로 올해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를 수상하기도 했다.
낫싱은 폰투를 선보이며 글리프 인터페이스에 지금 전화를 걸고 있는 사람이 누군지, 배달시킨 음식은 어디까지 왔는지, 예약한 택시는 언제쯤 오는지 등을 알 수 있도록 하는 기능을 추가했다. 이를 위해 LED 전구를 배열한 ‘줄’ 개수도 늘렸다. 후면 가운데에 있던 1개 줄은 6개로 쪼갰고, 카메라 조명을 따라 둘러진 줄 1개도 2개로 나눴다. 낫싱은 또 폰투 후면에 센서를 장착해 주변 조도에 맞춰 자동으로 밝기 조절이 되도록 했다.
재미있는 아이디어지만 ‘모두를 위한 디자인’인지는 의문이 들었다.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회사원의 경우 문자나 전화가 올 때마다 불빛이 반짝이면 집중력이 흩어질 수밖에 없다. 낫싱이 국내 기자들을 대상으로 폰투를 공개할 당시 글리프 인터페이스에 대한 설명을 DJ에게 맡긴 것도 이 때문으로 보인다. 업종별 호불호가 갈리는 디자인은 성공한 디자인으로 보기 어렵다. 기자도 글리프 인터페이스를 끄고 생활했다.
글리프 인터페이스는 야간 촬영이란 생각지도 못한 지점에서 도움이 됐다. 카메라 옆에 기본으로 탑재된 조명이 피사체의 한 지점을 강하게 비추는 데 반해 글리프 인터페이스용 LED 전구는 상대적으로 피사체를 골고루, 부드럽게 비췄다.
◇ 소프트웨어·성능 개선 긍정적이지만… 플래그십으론 ‘부족’
낫싱은 이번 폰투 출시로 ‘하드웨어 혁신’ 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 혁신’을 가속화했다고 자평했다. 특히 새 운영체제(OS) ‘낫싱OS 2.0′에서 선보인 ‘모노크롬 레이아웃’ 기능에 자부심을 보였다. 애플리케이션(앱) 아이콘을 단색으로 바꿔 사용자의 주의 분산을 최소화하는 기능이다. 사용자가 홈 화면을 원하는대로 디자인할 수 있도록 레이아웃과 위젯 위치를 조정하는 기능도 추가했다. 안드로이드13을 기반으로 하는 다른 OS에서도 구현할 수 있는 기능들이지만, 낫싱 특유의 디자인을 반영한 점은 인상적이었다.
낫싱은 폰투에 퀄컴 스냅드래곤8+ 1세대 칩셋을 탑재해 성능 개선도 꾀했다. 갤럭시 Z플립4·폴드4 등 현재 시중에 판매되는 타사 플래그십 스마트폰과 비교하면 아쉬움은 남지만 일상적인 용도로 쓰는 데에 큰 지장은 없었다. 전면 카메라 화소도 기존 1600만화소에서 3200만화소로 대폭 늘렸다. 후면 카메라의 경우 전작의 초광각 센서는 유지하되, 메인 광각 센서를 소니 IMX890으로 업그레이드했다. 프로세서 교체로 동영상 녹화도 4K30FPS에서 4K60FPS까지 지원 가능해졌다. 채도는 다소 쨍해 호불호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전반적인 성능은 끌어올렸지만 기본적인 방수·방진은 미흡히다. 폰투의 방수·방진 등급은 IP54로, 일상생활에서 살짝 튀기는 물기로터 제품을 보호할 수 있는 수준에 불과하다. 타사 플래그십 제품의 등급은 대부분 생활 방수가 가능한 IP67~IP68이다. 둔탁한 햅틱도 중저가 스마트폰을 연상시킨다.
폰투의 국내 출고가는 12GB/256GB 모델 기준 89만9000원, 12GB/512GB 모델 기준 109만9000원이다. 전작 대비 동일 용량 기준으로 약 20만원 정도 오른 가격이지만 타사 플래그십 제품 대비 저렴한 편이다. 독특한 후면 디자인을 제외하면 ‘플래그십’이라는 이름표를 붙이기 애매할 만큼의 성능을 가격으로 보완한 셈이다. 비슷한 가격의 중저가 제품을 구매하거나 돈을 더 주고 타사 플래그십 제품을 구매하는 게 보다 합리적인 선택지로 보인다. 그러나 색다른 걸 원한다면 폰투 구매를 고민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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