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원명칼럼] 왜 K아파트에선 물이 줄줄 새나
K 어쩌고 백날을 떠들어도
'기본 없는 나라'를 못 면한다
갓 입주를 시작한 신축 아파트에서 전세살이 할 때다. 입주 후 첫 장마를 지나는데 건넌방 천장 벽지에 물 얼룩이 지는가 싶더니 이윽고 물이 뚝뚝 떨어졌다. 황당했다. 고급은 아니라도 명색이 브랜드 아파트이고 새집 냄새가 빠지기 전이었다.
기술자들이 천장의 3분의 1쯤 해당하는 면적에 비닐을 댔다. 그런 세대가 너무 많아 바쁘다고 했다. 종일 비닐에 고인 빗물을 퇴근 후에 그릇으로 받아내는 생활이 1~2주 이어졌다. 이 소극에서 제일 황당했던 것은, 외부로 소문이 안 났다는 사실이다. 집주인은 집값 떨어질까, 임차인은 전세 안 빠질까 쉬쉬했을 것이다. 신축 아파트에서 하자가 발생하는 비율이 알려지는 것보다 몇 배, 몇십 배 더 될 수 있겠다는 심증이 들었다.
올해 여름에도 신축 아파트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입주 열흘 된 인천 서구 한 아파트는 집중호우에 지하주차장과 공동현관, 엘리베이터가 물에 잠겼다. 입주 4개월 서울 강남 개포동의 고급 아파트도 3주 사이에 두 차례 주차장이 물에 잠겼다. 지하주차장이 무너져내린 검단신도시 아파트를 조사했더니 기둥 32개 중 19개에 철근이 빠져 있었다. 부실 신축 아파트가 언론에 보도되려면 침수되든가 건물이 내려앉는 정도는 돼야 한다. 이에 비하면 내가 경험한 부실은 '애교'에 불과하다.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한국적 현상'으로 부실 아파트를 첫손에 꼽는 일본인을 만난 적이 있다. 지난해 광주 화정동에서 아파트 붕괴 사고가 발생한 이후였는데 일본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 한국에선 참 자주 일어난다고 했다. 나는 한국인이지만 역시 이 한국적 현상을 이해할 수 없다.
세계 곳곳에 한국 건설사들이 올린 마천루들이 즐비하다. 교량 등 SOC 시설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 시설들이 날림공사로 국위에 먹칠한 사례를 듣지 못했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원자력발전소를 지을 수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K방산은 자주포를 넘어 항공기, 이지스함에서까지 명성을 떨치고 있다. 삼성전자가 만드는 메모리반도체는 압도적으로 불량률이 낮다. 그 대단한 나라의 국민은 기둥에 철근이 빠져 있고 콘크리트는 함량 미달이고 여름마다 주차장이 침수되든가 작게는 방 천장에서 물이 떨어지는 집에서 산다.
BTS 이후 우리는 거의 모든 근사한 것에 K자를 붙여 으스대는 버릇이 생겼다. K팝, K반도체, K방산의 공통점은 세계적 기준을 목표 삼아 실제 그에 근접하거나 뛰어넘는 성취를 보였다는 사실에 있다. 그럴 때 한국인은 뛰어나다. 목표만 제대로 설정되면 그에 맞춰 눈부신 집중력을 발휘하곤 한다. 중요한 것은 기준이다. 기준이 제대로 서지 않은 영역에서 한국인은 어이없도록 산만하고 무책임하고 부도덕하다.
한국 아파트의 가치는 입지가 거의 전부다. 학군이 좋고 지하철 가까운 곳이면 누가, 어떻게 지어도 팔리게 돼 있다. 물 좀 샌다 한들 소문도 안 난다. '무너지지 않으면 오케이'가 기준이 되는 건설 현장에선 철근을 빼돌리고 콘크리트에 물 타는 일이 다반사로 벌어진다. 그러다 좀 심하게 해먹었을 때 털썩 주저앉는다. 그게 K아파트다.
전혀 다른 영역이지만 K정치도 비슷하다. 여기서 기준은 내가 상대보다 잘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나보다 '못해 보이게 만드는' 것이다. 거기서 우리가 아는 K정치의 모든 폐단이 양산된다. 기준이 잘못됐기 때문에 그 폐단은 결코 개선되지 않는다.
일본이 그렇게 대단한 나라는 아니다. 우리는 많이 따라왔고 일부 영역에선 일본을 앞서기도 했다. 그런데 저들의 시각에선 우리가 여전히 '기본 없는 나라'로 비치는 모양이다. 적어도 저들은 사는 집에 물이 차게 하지는 않는다. 집에 대한 최소의 기준, 이를 뒷받침하는 기업윤리와 직업윤리가 있고 없고의 차이다. K자랑도 좋지만 먼저 우리 아파트에 새는 물부터 손봐야 한다.
[노원명 오피니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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