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탕물에 잠긴 하우스 보며 농부는 멀리서 눈물만…익산 호남평야, 나흘째 ‘물바다’

김창효 기자 2023. 7. 18.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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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성·용안·용동면 시설하우스
7100동 중 6400동 물에 잠겨
농기계 1만1000여대도 침수
“어떻게 복구할지···죽을 맛”
지난 13일부터 쏟아진 폭우로 전북 익산시 용동면과 망성, 용안면 일대 비닐하우스 단지와 논이 바다처럼 변했다. 김창효 선임기자

전북 익산 망성면 하포마을 앞 들판에 은빛으로 일렁였던 비닐하우스 1000여 동은 온데간데 없이 모두 물에 잠겨 있었다. 폭우로 흙탕물이 들이닥친 들판에서 비닐하우스는 지붕만 보였다.

18일 오전 폭우가 잠시 소강상태를 보인 사이 농민들이 간혹 찾아왔지만, 허리춤까지 고인 물이 빠지지 않아 농경지에는 접근조차 할 수 없었다. 통제선이 쳐진 길가에 트럭을 세운 장모씨(63)는 멍하니 흙탕물에 잠긴 비닐하우스를 바라봤다.

장씨는 “비라도 그쳐야 뭐라도 해볼 수 있겠는데 하늘이 너무 무심하다”고 울먹였다. 하늘에는 곧 비를 쏟을 듯한 먹구름이 여전히 흘러갔다.

폭우로 침수 피해를 본 한 주민이 물에 잠긴 집과 비닐하우스를 바라보고 있다. 김창효 선임기자

전국 최대 곡창인 호남평야는 지난 15일부터 내린 최고 500㎜가 넘는 폭우로 소하천들이 범람하면서 나흘째 물에 잠겼다. 익산지역은 전북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익산 망성면과 용안면, 용동면은 수박과 애호박, 토마토, 상추 등을 재배하는 시설하우스가 밀집한 지역이다.

3개 면에만 시설하우스 7100동이 있는데 이번 폭우로 6400동이 물에 잠겼다. 10동 중 9동이 침수피해를 본 것이다. 이곳의 상추 재배 면적은 101㏊로 전북 재배면적의 9.5%, 전국의 3.3%를 차지하고 있다. 수박도 115㏊를 재배해 전북의 6.8%, 전국 1.2%를 점유하고 있다.

비닐하우스 주변에는 수확을 앞두고 있던 성인 머리 크기만 한 수박들이 물에 떠밀려 널브러져 있었다. 이모씨(63)는 “내일모레 시장에 나갈 수박과 상추, 토마토까지 다 출하 계약이 돼있는데 이렇게 물에 잠겨버렸다”면서 “어떻게 복구해야 할지 엄두도 나지 않는다. 죽을 맛”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전북 익산시 용안면의 한 비닐하우스에서 침수된 수박이 길가에 나뒹굴고 있다. 김창효 선임기자

벼와 논콩 등을 심어둔 농경지를 덮친 물도 수일째 빠지지 않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피해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평야 지대인 탓에 침수된 농경지의 물은 더디게 빠지고 있다. 이날 현재 전북도가 집계한 농작물 침수 면적은 벼 1만628㏊, 논콩 4675㏊ 등으로 축구장 2만여개 규모다.

수십 년 농사를 지어온 임모씨(65)는 “물이 가득 차는 것보다 빠지지 않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수온이 높아지면 작물 등은 상품 가치가 없다”면서 “자식처럼 키웠는데 올 한해 농사를 다 망쳐 어디에 하소연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을 잇지 못했다.

피해복구를 위해서는 농기계가 필수지만 이마저도 어렵다. 익산에서만 복구에 필요한 트랙터와 관리기, 양수기 등 농기계 1만1000여대가 물에 잠겨 못쓰게 됐다.

농기계 피해액만 200억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익산시 관계자는 “농경지와 도로 침수, 배수로 정비 등 민간과 공공 부문의 피해 추계액만 520억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주민들은 이날 현장을 찾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살기가 막막하다. 물이 허리까지 차 몸만 피해 나왔다. 양말, 속옷 하나 챙겨오지 못했다. 특별재난지역 선포를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김창효 선임기자 ch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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