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식 "이승만 前 대통령,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국부"

김태훈 2023. 7. 18.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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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대통령은 명실상부한 국부(國父·나라의 아버지)다."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이 이 전 대통령 서거 58주기 추모식을 하루 앞두고 고인을 대한민국의 '국부'로 규정해 눈길을 끈다.

올해 3월 이 전 대통령 탄생 148주년 기념식에서 박민식 장관은 바로 이 점을 강조하며 "건국 대통령 이승만이 선택했던 그 길(한·미동맹)이 올바른 길이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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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거 58주기 추모식 하루 앞두고 입장 밝혀
"독립·호국 아우르는 대한민국 현대사 큰 별"
재평가 움직임 활발… 기념관 건립도 가속화

“이승만 대통령은 명실상부한 국부(國父·나라의 아버지)다.”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이 이 전 대통령 서거 58주기 추모식을 하루 앞두고 고인을 대한민국의 ‘국부’로 규정해 눈길을 끈다. 마침 올해는 이 전 대통령이 주도한 한·미 상호방위조약 체결 및 그를 통한 한·미동맹 70주년이 되는 해라 추모식의 의미가 여느 해와는 확연히 다르다.

1953년 한·미 상호방위조약이 조인되는 모습. 앞줄 왼쪽은 변영태 외무부 장관, 오른쪽은 존 포스터 덜레스 미국 국무부 장관. 두 사람 사이 뒤에 서 있는 인물이 이승만 대통령이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18일 보훈부에 따르면 박 장관은 19일 추모식에 앞서 이날 “이승만 대통령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대한민국 정부의 초대 대통령으로서 독립운동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모두 이끈 명실상부한 국부”라고 밝혔다. 이어 “공산 세력의 침입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수호한 독립과 호국을 아우르는 대한민국 현대사의 큰 별”이라고 덧붙였다.

이 대통령은 1875년 황해도 평산에서 태어났다. 제국주의 일본이 조선의 국권 강탈을 호시탐탐 노리던 1896년 대중 계몽을 목표로 학생운동 단체 협성회를 조직했다. 또 협성회보와 매일신문 주필로서 조선의 근대화와 자주독립 필요성을 널리 알리기 위한 언론 활동에 매진했다. 이후 미국으로 유학해 1910년 명문 프린스턴대에서 국제법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1919년 3·1운동을 계기로 중국 상하이에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 하와이 호놀룰루에 조직된 대한인동지회 총재로도 활동했다.

일제강점기 내내 이 전 대통령은 미주 지역 항일운동의 선구자였다. 필라델피아에서 한인 대표자 대회를 소집해 한국의 독립 의지를 전 세계 언론에 호소했다. 또 미 수도 워싱턴에 구미위원부를 설치하고 스위스 제네바 국제연맹 회의에 참석하는 등 왕성한 외교 활동을 전개했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광복 후 1948년 한국 정부가 수립될 당시 초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1960년까지 12년 가까이 대통령으로 재직하며 정치, 경제, 교육, 군사 등 모든 분야에서 오늘날 한국의 토대를 닦았다. 1965년 90세를 일기로 서거한 뒤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됐다.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은 18일 이승만 전 대통령 서거 58주기 추모식을 하루 앞두고 고인을 ‘대한민국의 명실상부한 국부’로 규정했다. 사진은 박 장관이 올해 3월26일 이 전 대통령 탄신 148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연설하는 모습. 뉴스1
이 전 대통령의 업적 여러 가운데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은 역시 한·미동맹 성사다. 1950년 발발한 6·25전쟁이 장기화하자 미국은 자국 군인들의 인명피해를 가급적 줄이기 위해 적당한 선에서 전쟁을 멈추는 휴전을 선호하고 나섰다. 북진통일을 주장하는 이 전 대통령의 완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휴전협상이 이뤄진 끝에 1953년 7월27일 미군이 주축이 된 유엔군과 북한군 그리고 중공군 간에 정전협정이 체결됐다. 이 전 대통령은 휴전 후 한국 안보를 보장할 장치 마련을 미국에 강력히 요구했다. 그 결과 1953년 10월1일 한·미 간에 상호방위조약이 조인됐다.

한반도 유사시 미국이 군사적으로 한국을 원조한다는 내용을 핵심으로 하는 이 조약으로 한·미동맹이 성립했다. 세계 최강의 미군이 주둔하는 한국은 이후 70년간 북한의 전면적인 침략 위협에서 벗어나 경제개발에만 매달린 결과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올해 3월 이 전 대통령 탄생 148주년 기념식에서 박민식 장관은 바로 이 점을 강조하며 “건국 대통령 이승만이 선택했던 그 길(한·미동맹)이 올바른 길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이제야말로 바로 서야 한다”고도 했다.

박 장관의 말처럼 최근 들어 이 전 대통령 재평가 움직임에 속도가 붙고 있다. 지난 6월29일 김황식 전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이승만대통령기념관건립추진위원회가 출범했다. 기념관이 들어설 곳으로는 서울 강동구가 꼽힌다. 원로 영화배우 신영균 한주홀딩스코리아 명예회장은 앞서 강동구에 있는 사유지 1만3223㎡(약 4000평)를 이 전 대통령 기념관 건립 부지로 기증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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