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룡 장관의 선택, 승부수? 자충수? [홍영식의 정치판]

2023. 7. 18.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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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고속道 백지화 …“민주당 선동에 장관직 건 극약 처방” vs “장관이 마음대로 할 수 있나”

홍영식의 정치판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오른쪽)이 지난 7월 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서울~양평 고속도로에 대한 가짜뉴스 관련 국민의힘 국토교통위원회 실무 당정협의회에서 관계자와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나도 웬만큼 공부를 한 편이었고 서울대 인기 학과에 입학했는 데도 고교 시절 (원)희룡이를 따라잡기엔 ‘족탈불급’이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과 고교(제주 제일고) 시절 절친이 한 말이다. 원 장관은 ‘공부의 신’으로 통한다. 잘 알려져 있듯이 그는 1982년도 대입 학력고사에서 제주 고교생으로는 처음으로 전국 수석을 차지해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다.

원 장관은 대학 시절 학생운동을 했다. 그는 인천에 있는 한 공장에 위장 취업했다. 숟가락·냄비 등을 만드는 공장이었다. 그러다 1980년대 후반 마음을 바꿨다. 사회주의 몰락을 지켜본 뒤 이념 과잉으로 가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고 느꼈다. 그래서 도전한 게 사법고시다. 2년 정도 공부해 1992년 수석 합격했다. 서울지검, 수원지검 여주지청, 부산지검에서 약 4년간의 짧은 검사 생활을 거쳐 1999년 변호사로 나섰다. 정치권이 그를 가만 놔둘 리 없었다. 당시 여당이던 새정치국민회의와 야당이던 한나라당 모두 세대교체 바람이 불면서 젊은피 영입 경쟁에 나섰다. 

여당에선 원 장관과 친분이 있던 김민석 의원이 제주 지역구 공천을 약속하며 입당 작업에 나섰고 야당에선 한나라당 소속이던 김부겸 전 총리가 입당을 권유했다. 원 장관은 결국 한나라당행을 택했다. 그는 이 선택에 대해 기자에게 이렇게 말한 바 있다. “1997년 외환 위기 때 각자 열심히 살아가는 것만으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국정 운영에 직접 참여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내면의 소리를 들었다. 2000년 총선을 앞두고 여야 모두에서 구애를 받았다. 고민을 많이 했다. 보수가 변해야 나라가 더 크게 변할 수 있다고 보고 내 인생을 걸어보자며 몸을 던졌다.” 당시 원 지사는 한나라당과 그 후신 정당에서 3선 국회의원을 지내면서 사무총장과 최고위원, 재선 제주지사를 지냈다.

그는 한나라당 시절 소위 개혁 소장파로 명성을 날렸다. 2000년대 초반 ‘남(남경필)·원(원희룡)·정(정병국)’은 소장 개혁파의 대명사처럼 불렸다. 이들은 2002년 한나라당이 대선에서 패배한 뒤 적극 나섰다. 대선 자금 수사 후폭풍이 거세게 몰아닥칠 때 ‘차떼기 정당’의 오명을 쓴 한나라당은 위기에 몰렸다. 남원정을 주축으로 한 소장 개혁파들과 이회창 전 총재 측근 그룹들은 정면으로 부닥쳤다. 결국 남원정의 세대교체 요구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됐고 2004년 총선을 앞두고 이 전 총재 측근들이 대거 물러나면서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 이때까지만 해도 원 장관이 직접 전면에 나서기보다는 뒤에서 지원하는 역할에 치중했다. 

‘저평가 우량주’, ‘범생이 이미지’ 벗을수 있을까

원 장관에겐 오랫동안 ‘저평가 우량주’ 꼬리표가 따라붙었다. 학력고사 전국 수석으로 일찌감치 전국적 인물로 떴고 경력도 화려해 대선 주자 반열에 오른 지 오래됐는데 ‘정치인 원희룡’으로선 좀체 뜨지 않았기 때문이다. 웬만해선 전면에 나서기를 꺼렸던 그의 스타일과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다. 아무리 상대가 거칠게 공격해도 언성을 높이지 않는 ‘범생이’ 이미지는 정치인에게 반드시 강점으로만 통하지 않았다. 

그런 그가 달라진 것은 지난 대선을 앞두고 경선에 나섰을 때다. 경선 출마를 준비하던 그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이전과 달리 단호했다. 그는 “(대선 과정에서) 치열하게 싸우면서 내 색깔을 분명하게 낼 것”이라고 했다. 빈말이 아니었다. 국민의힘 대선 경선 과정에서 그는 단호한 어조와 상대를 가리지 않는 종횡무진 공세로 ‘범생이’ 이미지에서 탈피했다.

대장동 의혹과 관련한 그의 공세는 속편이었다. ‘대장동 게이트 5가지 의혹점’을 제기한 그의 유튜브 영상이 히트를 치면서 그의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복잡한 ‘대장동 게이트’ 의혹들을 쟁점별로 빠르고 알기 쉽게 단호한 어투로 설명하면서 그는 ‘대장동 1타 강사’라는 또 다른 별칭을 얻으면서 국민적 스타가 된 것이다. ‘건폭’ 대처 과정에서도 단호한 모습을 보였다. 

이번엔 그가 국토교통부 장관으로서 서울·양평 고속도로 사업을 전격적으로 백지화를 선언해 큰 파장을 낳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 일가에 대한 특혜 의혹을 제기하자 백지화로 응수한 것이다. 그는 지난 7월 6일 당정 협의회를 마친 뒤 “김 여사가 (땅을) 처분하지 않는 한 민주당의 날파리 선동이 끊이지 않을 것”이라며 “민주당의 선동에 국력을 낭비할 수 없다. 아무리 팩트를 얘기해도 김 여사를 악마로 만들기 위한 가짜 뉴스 프레임을 말릴 방법이 없다”며 백지화 이유를 설명했다. 이번 의혹은 지난 5월 서울~양평 고속도로의 대안 노선이 제시되면서 불거졌다. 대안 노선의 종점인 양평군 강상면에 김 여사 일가의 땅이 많이 있다는 것을 민주당은 문제 삼았다. 국토부는 대안 노선이 확정된 것이 아니라고 했지만 민주당은 “단군 이후 최악의 이권 카르텔”이라며 공세를 펴고 있다. 

원 장관이 백지화를 선언한 배경을 두고 정치권에선 논란이 분분하다. 국민의힘 한 의원의 분석이다. “장관직까지 건 것을 보면 원 장관이 작심한 것 같다. 두 가지를 노린 것 같다. 하나는 여론을 끌어올려 민주당의 주장이 선동임을 부각시키려는 극약 처방이다. 대안이 김 여사 일가의 땅과 관계가 없다고 아무리 설명한들 민주당으로선 호재를 끝까지 물고 늘어지면서 정치 공방으로 몰아갈 것이란 점을 원 장관이 잘 알고 이런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정치적 측면에선 이런 극단적 선택으로 강단 있는 정치인 이미지를 심어 주려는 것 같다. 단호한 모습으로 과거 유약한 이미지를 극복하고 보다 선명한 모습으로 국민에게 다가서려는 의도도 있어 보인다.”

“오죽하면…’ 동정론도 있지만 과잉 대응 지적도

하지만 그의 의도 여부를 떠나 소기의 성과를 거둘지는 미지수다. 백지화에 대한 비판 여론도 상당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민주당의 공세가 지나치다고 하더라도 도로 건설 자체를 백지화한 대응은 과잉이라는 것이다. ‘오죽했으면 원 장관이 백지화했겠나’라는 동정론도 있지만 장관 한 명이 주요 정책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느냐는 여론도 만만치 않다. 국민의힘 내에서도 양평군민들의 표심을 건드릴 수 있는 문제여서 내심 곤혹스러운 분위기도 있다. 국민의힘은 “야당이 사과하면 다시 추진하겠다”는 등 사업 추진 가능성을 계속 시사하고 있다.  

원 장관도 민주당의 사과를 사업 전제 조건으로 달고 있지만 좀 더 강경하다. 원 장관은 CBS라디오에 출연해 백지화가 대통령실과 교감 아래 이뤄진 게 아니라 독자적인 결정이라고 하면서 “(민주당이) 모든 해명과 깔끔한 해소, 책임지는 사과가 있다면 우리가 그때도 고집을 부릴 필요는 없겠다”고 말했다. 7월 10일엔 “거짓 선동에 의한 정치 공세에 민주당이 혈안이 돼 있는 한 사업을 재추진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며 “정치 공세는 확실히 차단한다는 차원에서 비상한 각오로 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국토부도 사업 재추진에 대해 “현재는 정상적으로 추진하기 불가능한 상태”라며 “여건이 조성된다면 그때 가서 검토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역시 민주당의 사과를 조건으로 내걸고 있다.

하지만 민주당도 강경하다. “권력형 비리 의혹의 전형”이라며 대통령 탄핵까지 거론하고 국정 조사를 추진하고 있어 접점을 찾을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 양평군민의 표심을 고려하면 그냥 백지화를 그대로 밀고 가기에도 난감하다. 백지화 선언이 원 장관에게 승부수가 될지, 자충수가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홍영식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및 한경비즈니스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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