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시트콤 같던 '가슴이 뛴다'가 던진 의외로 진중한 질문들
[엔터미디어=정덕현] 과연 선우혈(옥택연)의 가슴을 뛰게 만들 인연은 누구일까. KBS 월화드라마 <가슴이 뛴다>는 가슴 뛰는 사랑이 하고 싶어 100년간 산사나무 관에서 버텼지만, 단 하루를 남기고 관 뚜껑이 열리는 바람에 반인 반뱀파이어가 된 선우혈이라는 인물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상황 설정 자체만으로도 이 드라마의 장르가 뱀파이어물이라기보다는 코미디라는 걸 분명히 보여준다.
특히 깨어난 선우혈이 마주한 현재 한국의 변화는 뱀파이어들이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하는 자본화된 세상이라는 점에서 세태를 꼬집는 블랙코미디적인 은유를 담고 있다. 100년 전 선우혈의 든든한 동생들이었던 이상해(윤병희)나 박동섭(고규필)이 이제는 피를 사서 먹어야 하는 현실 앞에 연애 따위는 상상도 못한 채 타로마스터와 분식집을 전전하고 있는 상황이 꼬집는 건 다름 아닌 현재의 청춘들이 마주한 현실이다.
이런 청춘들의 현실은 선우혈을 깨워낸 주인해(원지안)라는 인물을 통해서도 그려진다. 이름은 '주인해'지만 주인인 건 하나도 없어 빚에 쪼들려 살던 그는 전세금마저 사기를 당해 길바닥에 나앉게 된 상황에서 아빠로부터 낡은 저택을 상속받는다. 알고 보니 그 집안은 선우혈을 대신해 그 저택을 대대로 지켜온 집사 집안이었던 것. 그런데 우연히 주인해의 입술에 난 상처에서 보이는 피에 눈이 뒤집혀 입맞춤을 한 선우혈은 순간 전생에 자신의 가슴을 뛰게 만들었던 인연 윤해선(윤소희)을 떠올린다.
어딘가 주인해가 윤해선의 환생이라는 생각을 갖게 하지만, 1천년 넘게 산 고양남(김인권)은 선우혈에게 그가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바로 그 주인해의 피를 마셔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거기에는 또 블랙코미디적인 현실을 꼬집는 조건이 달린다. 주인해의 현재 피는 독기로 가득차 있어 마셨다간 독이 된다며, 그래서 그가 사랑에 빠지게 만들어 피를 따뜻하게 만든 후 마셔야 한다는 것이다. 현실에 쪼들려 연애세포가 말라버린 이른바 N포세대를 이 '피 설정'은 에둘러 담아낸다.
이처럼 <가슴이 뛴다>는 끊임없이 장광설에 가까운 일상 시트콤적 상황이 전개되고 있어, 무게감이 잘 느껴지지 않는 드라마지만, 그 안에는 현재의 세태를 은유하는 의미심장한 설정들이 적지 않다. 또 하나의 소재로 들어간 '집' 이야기도 그렇다. 주인해의 집안은 선우혈의 부탁대로 이 동네에 재개발 바람이 불 때도 이에 반대하며 오래된 저택을 지켜낸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은 재개발 붐을 타지 못하게 만든 이 저택을 눈엣가시처럼 여긴다. 고기숙(백현주) 같은 대박정육점 사장은 어떻게든 주인해와 선우혈이 동네를 떠나게 하려고 혈안이다.
주인해는 생계 때문에 유일한 재산이 된 이 집을 리모델링해 게스트하우스로 만들자는 신도식(박강현)의 제안에 마음이 흔들린다. '새로고침'이라는 부동산 개발 전문가인 신도식은 사실 대학후배인 주인해에게 마음이 있는 것이고 그래서 이 집을 고쳐 그 어려움을 해결해주고 싶어 한다. 그런데 이 집에 역시 관심을 가진 부동산 투자자인 나해원(윤소희)이 나타난다. 윤해선과 똑같은 얼굴을 한 나해원을 보고 선우혈은 그가 바로 전생의 인연이라 믿지만, 어딘가 그는 외모가 같을 뿐 동일인물 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다.
전생의 인연과 이생의 인연. 그리고 오래 된 저택과 그 저택을 현재에 맞게 고치려는 게스트하우스. 선우혈은 그 사이에서 선택해야 하는 입장에 놓인다. 전생의 인연을 잊지 못하는 선우혈은 과연 외모가 같다는 이유로 나해원에게 마음이 가게 될까 아니면 외모는 다르지만 전생의 해선 같은 마음이 느껴지는 주인해에게 마음이 가게 될까. 이미 어느 정도 답은 나와 있는 이야기지만, 선우혈의 가슴을 뛰게 하는 건 아무래도 이생의 인연인 주인해가 되지 않을까. 그는 어쩌면 전생에 윤해선이었을 수도 있고.
과거의 인연을 잊지 못해 혹여나 찾아올 그를 위해 저택을 과거 그대로 지키려던 선우혈은 나해원을 만난 후 그 마음을 바꾼다. 이 집을 게스트하우스로 리모델링하자는 주인해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즉 전생과 이생 그리고 오래된 저택과 게스트하우스 사이에서 선우혈이 보여주는 선택을 통해 드라마가 하려는 이야기는 과거가 아닌 현재를 살라는 것이 아닐까 싶다. 전생의 인연이 누구였든, 지금 마주한 인연을 더 소중하게 여기라는 것이고, 오래된 저택 역시 현재에 맞게 고쳐가며 살아가라는 것.
이른바 N포세대로 불리기도 하는 현재의 청춘들이 마주한 현실은 다름 아닌 그들의 잘못이 아니라 과거 기성세대들이 만들어낸 결과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 현실 앞에서 좌절하고 과거를 그리워하기만 할 게 아니라, 지금 현재의 삶을 직시하고 그 안에서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찾아가라고 <가슴이 뛴다>는 말하고 있다. 더 이상 가슴 뛰는 일이 없을 것처럼 갑갑한 현실을 버텨내고 있는 청춘들에게 그런 위로를 던지고 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KBS]
Copyright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지락실2’의 이 기세는 ‘1박2일’ 전성기 때 느꼈던 바로 그 바이브다 - 엔터미디어
- 기안84의 날것이 빠니보틀의 명성과 덱스의 인기를 만났을 때(‘태계일주2’) - 엔터미디어
- 19번째 인생을 사는 신혜선에게도 어떤 아쉬움이 있다는 건(‘이생잘’) - 엔터미디어
- 끔찍한 천민자본주의에 일침 날린 김은희 작가의 다음 수는?(‘악귀’) - 엔터미디어
- 이성민이 구축한 늙은 형사, 이러니 ‘형사록2’에 빠져들 수밖에 - 엔터미디어
- 화장품 방판원 박규영을 정상으로, 또 나락으로 이끈 이것(‘셀러브리티’) - 엔터미디어
- 이미 연예대상 그 이상을 향하고 있는 대체불가 기안84의 하드캐리 - 엔터미디어
- 더는 설레지 않는다는 손지창·오연수에게 우리는 왜 빠져드나(‘동상이몽2’) - 엔터미디어
- 김은희 작가는 과연 이 수준 높은 떡밥을 어떻게 회수할까(‘악귀’) - 엔터미디어
- 이쯤 되면 MBC 예능 구세주 맞죠? 거침없는 기안84의 진격(‘태계일주2’) - 엔터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