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증여세 공제 확대, 제도의 합리화인가 ‘부모찬스’ 이용한 부의 대물림인가

이창준 기자 2023. 7. 18. 15:56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16일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모습. 연합뉴스

증여재산 공제 확대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정부가 저출생 해결 방안 중 하나로 자녀 결혼자금에 대한 증여세 공제 한도를 늘리겠다고 공언하면서다. 일각에서는 제도의 현실성을 거론하며 증여세 뿐 아니라 수십년간 공제 한도에 변화가 없었던 상속세 역시 일부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상속세와 증여세 공제 한도를 늘리면 결국 ‘부모찬스’를 이용해 부의 대물림이 심해지는 등 고자산가 대상 ‘부자 감세’에 불과할 것이라는 비판 목소리도 작지 않다.

증여세법 개정 ‘눈치게임’ 중인 정부?

증여재산 공제에 대한 논의는 지난 4일 정부가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면서 본격화됐다. 기획재정부는 자녀 등이 혼인할 때 결혼자금에 한해 증여세 공제 한도를 늘리겠다고 밝혔다. 현행 상속세 및 증여세법상 자녀와 손주 등 직계 비속에 대한 증여세 공제 한도는 5000만원인데, 결혼자금에 한해 이를 늘려주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고심 중이지만 1억~2억원 사이에서 한도가 확대될 것으로 보는 전망이 우세하다.

증여재산 공제 제도는 가족이나 친족 간에 재산을 증여할 때 일정액을 증여세 과세표준에서 빼주는 제도다. 특수 관계인 가족·친족 간 증여를 일반 증여와 같은 성격으로 보고 동일하게 과세하기 어렵다는 취지로 도입됐다. 특히 자녀 등에 대한 증여재산 공제 한도는 부모가 자식이 결혼할 때 해주는 집 한채 전세값에 대해서는 과세하지 말자는 데 초점을 두고 설정됐다.

문제는 최근 10년간 치솟은 집값을 생각하면 이 한도가 현실과는 다소 동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양가에서 5000만원씩 지원을 받는다고 해도 1억원에 불과해 신혼집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최근 집값이 무섭게 오르면서 괴리는 더 커졌다. 이 한도는 2013년 세법개정안에서 상향조정된 것인데 10년째 변함이 없다.

이 때문에 정부는 당초 지난해 세제개편안을 발표할 때 한도 상향을 추진할 목적으로 구체적인 안까지 마련해놨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법인세 인하와 금융투자소득세 적용 유예, 종합부동산세 인하 등 감세 논란이 커지자 정부는 ‘전략상’ 올해로 발표를 미뤘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부자감세’라는 야당의 반발이 더 거세질 수 있는 점을 고려했다”고 말했다.

정부가 신혼부부 증여세 공제 확대를 세제 합리화라고 설명하는 대신 저출생 대책으로 내세운 것도 부자감세라는 비판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방증으로 해석된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궁극적으로는 증여세 공제를 확대하기 위해 우선 결혼자금을 내세운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신혼부부에 대해 증여세 공제를 확대한 뒤 미혼자녀와의 형평성 등을 거론하며 향후 추가적으로 증여세 공제 확대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유호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재정세제위원장(강남대 세무학과 교수)는 “명분이 확실한 결혼자금 대상으로 우선 한도를 늘리고 상대적 차별 등을 들며 대상을 넓히는 식으로 방향을 틀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주무부처인 기재부는 공제 한도를 포함해 아직 어떤 구체적인 사안도 정해진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개정 내용은 이달 말 발표될 세법개정안에서 공개될 예정이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해 7월 2022 세제개편안 상세브리핑에서 발언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제공
제도 합리화일까, 부의 대물림일까

세법 자체의 합리성이나 현실 반영 측면을 고려하면 증여세 공제 한도를 조정하 것이 불가피하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다. 최근에는 같은 맥락에서 상속세의 공제 한도까지 일부 손봐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가령 최소 5억원에서 최대 30억원의 배우자에 대한 상속 재산 공제 한도는 1996년 세법 개정 이후 27년째 같은 수준이 유지되고 있다. 인적사항과 무관하게 최소 5억원의 상속 공제를 보장하는 일괄 공제 한도도 1998년 이후 개정 없이 적용되고 있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지난 13일 발간한 보고서에서 “상속세 공제 제도를 개편한 1997년 이후 인적공제 한도가 크게 상향되지 않았지만 2022년 기준 소비자물가지수 증가율은 1997년 대비 89% 상승하는 등 그동안 물가가 크게 오른 점 등을 감안해 상속세 인적공제 한도와 증여 재산 공제액을 상향 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학계에서도 응능부담 원칙(납세자의 부담능력에 맞게 과세를 해야 한다는 조세원칙)에 맞게 일괄공제 제도를 폐지하고 기타 인적 공제액을 현실화해야 한다는 논의가 2010년대 초반부터 전개돼 왔다. 특히 일각에서는 유산취득세 도입이 당분간 어려워진 만큼 상속세 개편 논의과 별개로 상속세 공제한도를 높여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상속세나 증여세가 소수 고자산가만 납부하는, 대상이 제한적인 세금이라는 점을 들어 공제 한도를 높여주는 것이 결국 부의 대물림이라는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또 상속증여세가 줄어든 만큼 세수부담이 커져 결과적으로 재정지출이 줄어들거나 다른 세목에서 증세가 이뤄질 수 있다는 우려도 하고 있다.

유 위원장은 “자식이 결혼할 때 1억5000만원, 2억원을 선뜻 내 줄 수 있는 세대가 한국에 몇 세대나 되겠느냐”며 “상속세 납부 대상도 연간 사망자의 6% 수준밖에 안되는데, 이들을 위해 남은 94%에게 세부담을 넘긴다는 것은 오히려 응능부담·공평과세 원칙을 해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창준 기자 jchang@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