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해 곡물 협정 중단 현실로…장기화 땐 세계 식량 위기 우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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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가 흑해곡물협정에 참여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하며 그동안 봉합돼 있던 세계 식량 문제에 먹구름이 드리웠다. 즉각적인 영향은 제한적이지만 사태가 장기화하면 큰 식량 위기를 부를 가능성도 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18일 “러시아가 세계 식량 안보의 생명줄이었던 흑해 이니셔티브(곡물협정)의 실행을 중단하기로 결정한 것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며 “기아에 직면한 수억명의 소비자들과 세계적인 생활비 위기에 직면한 소비자들이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우려했다. 러시아는 앞선 17일 흑해곡물협정 기간 만료를 하루 앞두고 협정을 연장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러시아는 지난해 7월22일 유엔과 튀르키예의 중재로 곡물협정을 맺어 우크라이나산 곡물 흑해 수출길을 열었다. 지난해 2월 말 러시아가 전쟁을 일으킨 뒤 흑해 항구들을 봉쇄해 곡물 수출 대국인 우크라이나의 수출길이 막히면서 발생한 세계 식량 위기를 완화하기 위한 조처였다. 이 협정에 따라 지난해 8월 이후 약 3200만t의 곡물 등 식량이 세계로 수출됐다. 협정은 그동안 세차례 연장됐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러시아 대통령궁 대변인은 18일 흑해곡물협정 중단 이후 상황에 대해 “전장과 가까운 지역에서 적절한 보장이 없이는 위험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협정으로 인해 유엔 식량농업기구(FAO) 식량가격지수는 전쟁이 터진 직후인 지난해 3월 역대 최고치인 159.7에서 지난달 122.3으로 약 23% 하락했다. 식량가격지수는 곡물, 육류, 유제품, 식물성 기름, 설탕류의 2014~2016년 수출 가격 평균치를 100으로 삼아 산출하는 지수다.
흑해 수출로가 다시 막히면 우크라이나는 육로 혹은 다뉴브강을 이용해 수출을 늘릴 수 있다. 하지만 운송량이 줄어들고 비용도 높아진다. 다국적 금융사인 라보은행의 농산물 시장 전문가인 카를로스 메라는 이런 통로로 수출을 하면 농부들의 이익이 줄어 “내년 수확을 위한 씨를 덜 뿌리게 되고 (세계 식량) 공급에 압력을 가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가 전했다.
당장 세계 곡물 가격이 계속 급등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시기적으로 현재 북반구는 밀 등 곡물 수확기이다. 또한 세계 제1의 밀 수출국이며 세계에서 가장 저렴한 밀을 수출하는 러시아에 수출 가능한 물량이 1250만t 쌓여 있다. 또한 러시아 쪽 검사관 수 부족으로 최근 검사 속도가 느려진 탓에 흑해 항로를 통한 우크라이나 선박 곡물 수출 물량은 이미 많이 줄었다. 지난해 10월 420만t이었으나 지난 5월엔 130만t에 그쳤다.
하지만 사태가 장기화되면 아프리카·중동의 빈국을 중심으로 식량 위기가 닥칠 수 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침공 전인 2021년 기준 세계 밀 수출 5위(9.5%), 옥수수 3위(11.2%)를 차지한 곡물 수출 대국이었다. 특히 몰도바·레바논·튀니지·파키스탄 등 개발도상국들이 우크라이나산 밀을 많이 수입했다. 흑해곡물협정을 통해 수출한 우크라이나산 곡물도 절반 이상은 개발도상국으로 향했다.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은 흑해곡물협정 이후 우크라이나산 농산물 72만5천t을 에티오피아·아프가니스탄·예멘 등 기아에 허덕이는 나라에 전달했다. 국제구조위원회(IRC)는 17일 성명을 내어 “동아프리카 곡물의 약 80%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서 수입된다. 동아프리카 전역에서 5천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위기 수준의 기아에 직면하고 있다”며 “(러시아의) 흑해곡물협정 이탈은 전세계 가장 취약한 이들이 가장 가혹한 결과에 직면하게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코리르 싱오에이 케냐 외교부 차관은 트위터에 “러시아의 흑해곡물협정 탈퇴는 세계 식량 안보에 대해 등 뒤에서 찌르는 꼴이며 이미 가뭄으로 충격을 받은 ‘아프리카의 뿔’ 지역 국가들에 불균등한 충격을 미친다”고 격렬히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
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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