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예산 재조정에 연구원들 성토…정부 "효율 배분하란 뜻"
출연연노조들 "카르텔로 폄하, 국제협력 졸속"
과기정통부 "나눠먹기식 배분 있다면 정리 필요"
[서울=뉴시스]윤현성 기자 = "R&D(연구개발) 예산을 기획·평가할 때 많은 전문가들이 참여해 공정하게 진행했는데 이를 두고 '카르텔'이라는 워딩을 앞세우면 국민들의 시선이 안 좋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김재성 전국과학기술연구전문노조 위원장
"R&D 예산 삭감을 만회하려면 국제공동연구 과제를 제출하라고 했는데, 이 요구를 각 기관에는 약 이틀 전에 통보했습니다. 이런 졸속 계획은 당연히 통과될 수가 없습니다" -이창재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 부위원장
최근 정부가 이른바 R&D 카르텔 혁파를 목표로 R&D 예산 전면 재검토에 나서자, 과학기술계에서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주최한 'R&D 예산 백지화 긴급 간담회'에서는 정부의 R&D 예산 재검토를 두고 '졸속'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특히 과학기술계는 이번 예산 재검토의 핵심 목표인 '카르텔 혁파'와 '글로벌 공동연구 확대' 등이 문제가 많다고 꼬집었다.
"'카르텔' 용어로 연구활동 자체 폄하…졸속 국제협력도 문제 많을 것"
정부 "예산 깎는 게 아니라 제대로 배분하라는 것…우수 연구원이 예산 더 가져가게"
그는 "R&D 예산을 두고 과학기술계가 굉장히 비리를 저지른 듯한 카르텔, 나눠먹기 등의 워딩을 앞세우고 있는데, 이렇게 되면 국민들의 시선이 안 좋아질 수밖에 없다"며 "예산 삭감을 요구하면서 또 성과는 내라고 하고, 이런 식으로 악순환이 이어지며 과학기술계의 패배감이 굉장히 심해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제동국 한국전자통신연구원 노조위원장도 "과학기술계에서 카르텔이라는 용어를 듣는 것 자체가 처음"이라며 "늘 시키는 대로 따랐던 연구계가 무슨 힘이 있다는 건지 모르겠다. 현장의 연구자들은 예산 몇억 원 깎이는 게 문제가 아니라 이렇게 폄하하고 자존심을 꺾는 데에서 분노하고 있다"고 보탰다.
문성모 출연연과학기술인협의회 총연합회장은 "연구비 같은 건 최소 1년 이상의 기간은 줘야 환경을 반영해서 조절할 수 있는데, 이렇게 갑작스럽게 재검토하는 건 현장에 큰 무리가 된다"며 "국제협력의 경우에도 체계적으로 준비하지 않으면 얻을 수 있는 게 없다. 우리와 수준이 맞고 상호신뢰가 구축된 곳을 찾아야 하는데 이렇게 갑자기 진행하면 제대로 된 협력이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문 회장은 제대로 된 준비 없이 국제협력을 추진할 경우 예산이나 지식재산권 등이 되려 해외에 유출될 수 있다는 우려도 표했다.
이창재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 부위원장 또한 "예산 삭감을 만회하려면 국제공동연구 과제를 제출하라고 했는데, 이 요구를 각 기관에는 약 이틀 전, 개별 연구자들에게는 1시간 전에 통보했다"며 "대부분 출연연에서 기존에 있던 협력 과제를 엮어 졸속으로 1시간 내에 제출했다. 기존에 완벽하게 계획을 짜서 내도 기획재정부에서 통과가 안되는데 이렇게 만든 건 당연히 안 받아주고 예산이 더 깎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과학기술계 현장의 토로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주무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R&D 예산 재분배가 연구 효율을 높이기 위한 방안이 될 것이라는 입장이다.
지난달 28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나눠먹기식 R&D'를 언급하며 예산안 재검토를 주문한 이후 과기정통부는 R&D 지원 방식 개편 및 지원 혁신 방안을 마련했다. 31조원 규모의 R&D 예산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대규모 R&D 절차 및 제도를 개선하는 것이 골자다.
이와 관련해 이종호 과기정통부 장관은 지난 10일 과기정통부 청사 이전 현판식 이후 기자들과 만나 "(예산 재검토는) R&D 예산을 제대로 배분하기 위한 과정이다. 효율을 떨어뜨리는 부분을 엄중하게 볼 것"이라며 "나눠먹기식 배분이 있다면 정리할 필요가 있는데, 이번이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대통령께서 공정 경쟁을 강조해오셨는데,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잘 하는 분이 예산을 가져가는 구조가 될 것"이라며 "해외에 연구를 굉장히 잘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곳에 우리가 커넥션(연결)을 만들어 공동연구를 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정부 출연연 예산 삭감과 관련해서도 아직 확정된 바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최근 차관 인사에서 임명된 조성경 과기정통부 제1차관 또한 "예산 문제는 제대로 배분하라는 것이지 깎으라는 게 아니다"라며 "과학기술이 국가 경쟁력을 결정하는 만큼 방향성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당초 과기정통부는 과학기술기본법에 따라 국가R&D사업 예산 배분·조정안을 지난달 30일까지 기재부에 제출해야 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R&D 예산 재검토를 지시하면서 과기정통부는 기재부가 국회로 전체 예산을 넘겨야 하는 8월 말까지 예산안을 재조정할 계획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hsyhs@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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