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애들이 아이돌 덕질 하는 법 [브랜더쿠]

2023. 7. 18.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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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더쿠’는 한 가지 분야에 몰입해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가는 ‘덕후’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자신이 가장 깊게 빠진 영역에서 나만의 브랜드를 만들어 내고, 커뮤니티를 형성해 자신과 비슷한 덕후들을 모으고, 돈 이상의 가치를 찾아 헤매는 이들의 이야기에 많은 관심 부탁합니다.
덕질의 세계에는 “휴덕은 있어도 탈덕은 없다”는 명언이 있다. 덕질을 쉴 수는 있어도 그만 둘 수는 없다는 뜻이다. 에디터는 10년 전 모 아이돌 그룹 덕질을 마지막으로 이제는 정말 ‘머글(아이돌 팬이 아닌 사람)’이 됐다고 믿었다. 하지만 지난해 불현듯 찾아온 ‘덕통사고(교통사고 당하듯 강렬하게 특정인의 팬이 되는 것을 뜻함)’로 다시 K팝 덕질 세계로 뛰어 들었다.

그런데 오랜만에 ‘덕생(덕질하는 인생)’을 살아보려 하니 요즘 아이돌 덕질 문화가 너무 생소했다. 스트리밍을 돌리거나 음악 프로그램 공개 방송을 가는 등 기본적인 활동은 여전하지만 ‘생일 카페’, ‘예절샷’처럼 이름도 낯선 문화들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아래에서 하나하나 소개할 테니 잠시만 기다려주면 감사하겠다.😉)

하지만 걱정도 잠시. 하나하나 직접 경험해 보니 덕질 문화는 10년전 보다도 훨씬 깊고 풍성해져 있었다. 덕후들은 이제 엔터테인먼트 회사에서 제공하는 콘텐츠를 소비하는 데 만족하지 않는다. 아이돌을 닮은 캐릭터 솜인형을 만들어 공동 구매하고, 덕질하는 모습을 촬영해 브이로그를 제작하기도 한다. 에디터는 다양한 아이돌 그룹의 ‘찐’ 덕후들에게서 이왕하는 덕질, 제대로 즐기는 법을 들어봤다. 단, 그들의 ‘일코(일반인 코스프레의 준말, 덕후인 것을 감추고 일반인처럼 행동하는 것)’를 위해 익명으로 진행된 점 양해 부탁한다. 😎

“잠시만요, 예절샷 찍고 가실게요” 덕질의 기본, 포카와 탑꾸

요즘 덕질 문화의 기본 중 기본은 ‘포토카드(이하 포카)’다. 포카는 앨범을 사면 들어있는 굿즈로 아이돌의 사진이 인쇄된 명함 사이즈의 카드다. 온라인에 공개하지 않은 셀카로 만드는 것이 ‘국룰’이다.

포토카드는 미공개 사진으로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렇기에 앨범을 산 사람들에 한해서 볼 수 있도록 포토카드 이미지를 미리 공개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다만 한 아이돌 그룹의 앨범을 샀다고 해서 모든 멤버의 포카가 들어있는 것은 아니다. 여러 멤버가 랜덤으로 배정돼 있기 때문에 최애의 포카를 구하기 위해 트위터나 중고거래 플랫폼을 통해 다른 팬들과 교환하기도 한다. 심지어 원하는 포카 한 장을 얻기 위해 앨범의 몇 배 가격을 주고 사 모으는 이들도 있다. 이처럼 포카를 향한 덕후의 열망이 강한 것을 알기에 아이돌을 광고모델로 기용한 회사는 제품을 사면 포카를 주는 이벤트를 실시하기도 한다.

그렇게 소중하게 얻은 포카가 행여나 구겨지거나 찢어지기라도 하면 낭패다. 포카를 대량으로 구비한 경우에는 전용 앨범을 따로 구매해서 보관한다. 하지만 개중 가장 선호하는 포카 한 장은 항상 ‘탑로더(포토카드를 담는 케이스)’에 넣어서 들고 다니곤 한다. ‘예절샷’을 찍어야 하기 때문이다. 예절샷이란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나 여행을 갔을 때, 포카를 배경과 함께 찍는 것을 말한다. 어원은 불분명하나 덕후라면 마땅히 지켜야 하는 예절이라는 뜻에 사진을 의미하는 ‘샷’을 붙였다는 추측이 나온다.

늘상 포카를 들고 다니며 예절샷을 찍는 직장인 신 ㅇ씨(25세)는 “덕후들에게 예절샷은 일종의 SNS와 같다”며 “내가 이렇게 구하기 힘든 포카를 가졌다거나 같은 팬들을 만났다는 것을 뽐내고 싶은 마음”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때 느끼는 유대감이나 소속감도 예절샷을 찍는 이유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온라인 거래 플랫폼을 통해 완성된 탑꾸 를 판매하기도 한다.

예절샷을 찍을 때, 아무리 사진이라고 해도 최애가 담긴 케이스가 허전하면 안 될 노릇. 그래서 최근에는 ‘탑로더 꾸미기(이하 탑꾸)’에 진심인 덕후들이 많다. 기본 투명 탑로더에 스티커나 생크림 본드, 파츠를 붙여 예쁘게 꾸미는 것이다.

탑로더를 스스로 꾸미는 것을 어려워하는 ‘똥손’들을 위해 네이버 스마트 스토어 등에 이를 주력으로 하는 액세서리 쇼핑몰이 입점해 있기도 하다. 또한 스스로 예쁘게 탑꾸할 자신이 없는 이들은 전문 제작자를 통해 구매하기도 한다. 창작거래 플랫폼 ‘윗치폼’에서 탑꾸를 판매하는 한 창작자는 지난 5월 104차 판매에 돌입했다. 개당 가격은 1만 원 중반대로 가격대가 있는 편이지만 매번 빠르게 품절된다.

🔊 예절샷 찍다가 친구 만든 조 ㅇ씨(23세, 대학생)
본인 제공

“지난번에 한 술집에서 같은 팬덤인 친구들과 오프 모임을 가졌어요. 안주가 나오고 다같이 예절샷을 찍는데 옆자리에서도 저희랑 같은 팬덤인 분들이 예절샷을 찍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초면이지만 바로 말 걸어서 다같이 예절샷도 찍고 SNS도 주고 받았어요. 오빠들이 친구도 만들어 주고… 덕질이 얼마나 좋게요?”
🔊 취미로 탑꾸하다가 판매까지 하게 된 이 ㅇ씨 (30대 후반, 직장인)
본인 제공

“직접 만든 탑꾸를 보여줬더니 지인들이 ‘팔아도 되겠다’고 하더군요. 인스타그램을 통해 다른 팬들에게도 물어보니 수요가 있어서 작년 11월부터 판매를 시작했습니다. 탑꾸는 멤버 각각이 선호하는 색상이나 포카의 분위기, 포즈에 따라 다르게 진행해요. 13차 판매까지 진행했는데 보통은 하루만에 매진돼요. (사진임에도 불구하고) 최애를 소중하게 대하고 싶은 마음에 더 예쁜 탑꾸를 만들고, 또 사고 싶어하는 것 같아요.”

홍철없는 홍철팀, 최애 없는 최애 생일 카페

MBC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에서 방송인 노홍철이 없는 상태로 ‘홍철팀’이 꾸려진 데서 홍철없는 홍철팀이라는 밈이 탄생했다. 이처럼 ‘생일 카페’에도 최애는 없지만 최애의 생일을 축하하는 팬들이 모여든다. 팬이 직접 좋아하는 연예인의 생일 주간에 카페를 대관해서 최애 사진으로 꾸미고 이벤트를 진행하면 다른 팬들이 찾아와 함께 어울리는 식이다. 인기있는 연예인의 경우 생일 주간에 생일 카페가 전국적으로 100여개 이상 열리기도 한다.

2년째 최애의 생일 카페를 찾은 직장인 최 ㅇ씨(25세)는 “친하지 않은 지인의 생일 때도 간소한 기프티콘을 보내고 축하한다”며 “하물며 내게 큰 힘이 돼 주는 최애에게 어떻게든 축하의 마음을 전하고 싶어 늘 생일 카페를 방문한다”고 설명한다.

이때, 카페 대관료는 대부분 무료거나 일반 공간 대여 업체보다 훨씬 저렴한 수준이다. 카페 입장에선 생일 카페를 찾는 팬들 때문에 높은 식음료 매출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생일 혹은 데뷔 기념일 축하 등 이벤트 전용 카페도 서울 홍대, 상수, 강남 지역을 중심으로 생겨나는 추세다.

(1) 생일 카페는 생일자인 아이돌 가수와 관련된 이미지, 텍스트로 꾸려진다. (2) 팬들은 생일 카페를 돌면서 받은 특전을 모아서 사진을 찍어 기념하기도 한다_본인 제공

생일 카페 역시 기본적으로 ‘카페’인 만큼 음료나 디저트를 주문해야 특전을 받을 수 있다. 특전은 아이돌 사진을 담은 컵홀더, 스티커, 키링 등 다양하다. 구매 개수나 가격대에 따라 특전 종류가 달라지기 때문에 1명이 여러 잔을 구매하기도 한다. 이때문에 생일카페에서 제공하는 음료는 뚜껑이 있는 병으로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 보통 한번에 생일 카페 여러 곳을 방문하는데 그때마다 매번 음료를 마시거나 버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주최자에 따라 생일 카페 콘텐츠도 다양하다. 예컨대 아이돌 관련 ‘모의고사’를 풀어서 고득점자에게 선물을 주거나 주최자가 직접 만든 프레임으로 즉석사진을 찍을 수 있게 하는 식이다. 팬들은 SNS를 통해 미리 생일 카페 정보를 얻고 원하는 특전, 콘텐츠가 있는 곳을 체크해 둔다. 하루 동안 가장 효율적으로 돌아다닐 수 있는 동선을 미리 짜는 것도 필수다. 인기 있는 카페의 경우 웨이팅 1시간은 우습기 때문에 플랜 B, 플랜 C를 계획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 “우리 애 예쁘죠?” 넘치는 덕심으로 생일 카페 직접 주최한 이 ㅇ씨 (32세, 직장인)
본인 제공

“평소 좋아하는 연예인의 사진을 직접 찍으러 다녔는데 그러다 보니 주변에서 ‘생일 카페를 열어달라’는 요청이 자주 들어 왔어요. 생일 카페가 많을수록 그 연예인이 인기가 많다는 뜻이기도 하니 화력을 보여주기 위해 진행하게 됐습니다. 생일 기준 3개월 전부터 생일 카페를 준비했는데 1년 동안 찍어온 최애의 사진을 보면서 저의 1년도 함께 되돌아 보게 됐어요. 또, 사람들이 한번이라도 더 ‘내 새끼’의 예쁜 모습을 봐줬으면 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준비했네요.”

🔊 디저트 먹으러 갔다가 우연히 생일 카페에 들어간 머글 이 ㅇ씨 (27세, 직장인)
“평소 단골인 디저트 카페에 갔는데 그날따라 어떤 남성 분이 그려진 포스터와 판넬이 있었어요. 카페에 들어가자마자 15명 정도 여성 분들께 박수를 받았어요. 남자 팬은 잘 안 온다며… 알고 보니 어떤 아이돌 그룹 멤버의 생일 카페를 열고 있었더라고요. 아쉽게도 팬은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꿋꿋하게 디저트를 포장해서 나왔습니다. 다만 그 분 얼굴이 각인된 쿠키는 차마 못 사고 일반 쿠키로 사서 나왔네요. 처음에는 생일자 없는 생일 파티 느낌이라 어색했는데 오직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축하하고, 즐거워 하는 모습을 보니 팬들 입장에선 정말 좋은 경험이겠다 싶었어요.”

최애와 똑닮은 너, 내 가방 속에 저장!

좋아하는 연예인의 외모를 본뜨거나 상징하는 동물 모양으로 만든 ‘솜인형’ 또한 아이돌 덕후라면 빼놓을 수 없는 필수품이다. 예컨대 몬스타엑스 멤버 ‘아이엠’의 별명이 ‘고양이’이고 해당 멤버가 보라색을 좋아하기에 보라색 고양이 인형을 그의 상징 인형으로 만드는 식이다.

솜인형은 대개 팬들이 직접 도안을 만들어 SNS로 공동 구매를 진행하는데 10cm 기준으로 2~3만 원 수준이다. 공동 구매 기간이 지나면 다시 판매되는 경우도 드물어 인형을 구하는 것 자체가 어렵고 가격을 3~4배로 리셀하는 경우도 흔하다. 개별적으로 만들어 공동 구매하기 때문에 크기와 디자인이 다양하지만 대체로 손바닥만한 크기로 만드는 경우가 많다. 포토카드처럼 맛있는 것을 먹거나 좋은 것을 볼 때에 ‘예절샷’을 찍는 용도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사실 이같은 인형은 에디터가 10년 전에 덕질을 할 때에도 인기가 높았다. 예전과 달라진 점은 인형 제작 외에도 관련 산업들이 늘어났다는 점이다. 인형옷 전문 쇼핑몰이 생긴 것이 대표적이다. 20cm, 15cm, 10cm 등 인형의 크기에 맞는 옷이나 가방, 모자 등 액세서리들을 판매하는 것이다. 가격이 저렴하지도 않다. 한 인형옷 쇼핑몰에서 판매하는 멜빵바지(10cm 전용)는 2만 900원이다. 사람 옷에 버금가는 돈이지만 ‘최애 인형’에게 예쁜 옷을 입히기 위해 팬들은 기꺼이 지갑을 연다.

와이어 교정, 솜 추가 등의 치료 과정을 거친 솜인형_출처 : 니니니 솜종합병원

이외에도 인형의 털을 말끔하게 빗어 정리해 주는 ‘인형 미용실’, 겉모양이 망가진 것을 고쳐주는 ‘인형 병원’, 인형 솜의 모양을 다시 다듬어 주는 ‘인형 경락’ 등의 서비스도 생겨났다. 인형의 크기와 서비스의 종류에 따라 가격은 다르지만 평균적으로 1~2만 원이다. 그럼에도 예약하려는 인원이 많아 정해진 날에만 예약 창을 열고 선착순으로만 신청을 받기도 한다. 인형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최애처럼 애착을 담아 대하는 팬들이 많다는 방증이다.
🔊 최애 인형과 함께 마닐라도 다녀온 김 ㅇ씨(26세, 대학원생)
본인 제공

“제가 좋아하는 아이돌은 얼굴에 있는 점 3개가 트레이드 마크예요. 이 아이돌을 모티브로 한 솜인형들도 모두 얼굴에 점 3개가 그려져 있어서 더 닮아 보이고, 귀엽게 느껴져요. 최애와 꼭 닮은 인형이 마치 최애의 분신처럼 느껴지기도 해서 이왕이면 예쁜 옷을 입혀주고 싶고 좋은 곳에 가면 같이 보고 싶어요. 그런데 사실은 최애를 투영하지 않아도 인형 자체로도 너무 귀여워요. 인형은 어릴 때만 갖고 논다는 편견이 있는데, 성인 여성도 눈치 안 보고 즐길 수 있는 인형놀이라서 더 좋아하는 것도 같아요.”
🔊 인형 미용실을 운영하는 솜묭실 (25세, 취업준비생)
본인 제공

“저도, 언니도, 동생도 ‘찐’ 덕후여서 집에 솜인형이 많았어요. 인형 제작자 분이 꼼꼼하게 만들어 준 인형의 디테일과 표정 등을 더 잘 보이게 하고 싶어서 혼자 미용을 해왔어요. 그러다가 가족과 지인들 인형도 다듬어줬고 더 많은 사람들이 이런 서비스를 원하겠다는 생각에 트위터 계정을 만들게 됐습니다. 올 1월부터 시작했는데 매월 30분정도께서 신청을 해 주세요. 인형 하나당 미용 시간은 2~3시간 가까이 걸리고 자수가 많다거나 무늬가 복잡하면 3시간 30분까지도 걸려요. 저도 인형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 인형을 구하기가 얼마나 힘들고, 또 소중하게 여기는지 알기에 더 책임감을 갖고 미용하고 있어요. 제 가위질 한 번에 이 아이는 남은 인생(!)이 달려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자식처럼 아끼는 인형을 믿고 맡겨주신 만큼 저도 최선을 다해서 예쁘게 꾸며주고 있어요!”

🔊 중고 거래로 힘겹게 최애 인형을 구한 윤ㅇㅇ씨(21세, 대학생)
“무려 2년 동안이나 중고거래 플랫폼에 키워드 알림 설정을 해놓고 기다렸습니다. 보통 이런 인형들은 한번 공구 기간이 끝나면 다시 제작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구하기가 정말 어렵거든요. 그냥 ‘인형’ 아니냐는 소리는 뭘 모르는 소리에요. 최애를 똑닮은 인형을 침대 머리맡에 두니까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져요. 괜히 방청소도 열심히 하게 된다니까요.”

이외에도 덕질을 즐기는 법은 무궁무진하다. 덕후들 사이에서암암리에 소문이 난 주점에 가면 좋아하는 연예인 이름으로 라벨을 만들어주는 곳도 있다. 각자의 최애들의이름이 쭉 적힌 소주병을 늘어 놓고 인증샷을 남기는 것은 필수. 포토카드의 분위기에 맞춰 커스텀 칵테일을제조해 주는 바(bar)도 있다. ‘어덕행덕이 어차피 덕질할 거, 행복하게 덕질하자! 라고 했는가? 이제는 어차피 덕질할 거, ‘행동하며 덕질해 보자. 더넓고 풍성한 세계가 이제 막 입덕한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테니😉

인터비즈 조지윤 기자 georg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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