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쉰들러홀딩AG의 신의는 개나 줘버려?

양창균 2023. 7. 18.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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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뉴스24 양창균 기자] '믿음이 없으면 설 수 없다'는 무신불립(無信不立). 논어(論語) 안연편(顔淵篇)에 실린 공자의 말이다. 믿음과 의리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 종종 인용되는 구절이다. 믿음과 의리를 일컫는 신의(信義)는 모든 관계에서 가장 기본이기도 하다. 하물며 기업이 요구하는 신의의 수준은 더더욱 엄격하다. 한번 신의를 저버린 기업은 생존자체가 위협받는 시대다. 이미지 추락뿐 아니라 자칫 불매운동으로 번져 발을 붙일 수도 없다. 소비자의 제품 선택 기준이 기업과 브랜드의 중요도에서 기업의 신뢰도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실제 1982년 미국의 거대 제약회사 존슨앤드존슨은 절체절명의 사건에 휘말린다. 미국 시카고에서 판매하던 진통제 타이레놀을 복용한 주민 8명이 사망하는 사건 탓이다. 캡슐에 누군가 독극물을 주입해 벌어진 일이었지만 존슨앤드존슨의 대처는 놀라웠다. 짐 버크 회장의 거듭된 사과와 함께 타이레놀 제조공정을 바꾸고 캡슐을 알약으로 교체했다. 시중에 깔린 모든 캡슐 형태의 타이레놀 제품을 정제형으로 교환하기까지 했다. 존슨앤드존슨은 책임감 있는 회사라는 명성을 되찾았고 타이레놀의 시장 점유율도 수개월만에 회복했다.

이 같은 기준에서 보면 쉰들러홀딩AG(이하 쉰들러)가 현대엘리베이터에 보여준 행태는 시정잡배만도 못하다. 현대엘리베이터의 2대 주주인 쉰들러는 지난달 26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 시스템을 통해 '임원•주요 주주 특정증권 등 소유 상황보고서'와 '주식 등의 대량 보유 현황보고서(일반)' 등 2건을 잇달아 공시했다.

이 과정에서 쉰들러는 앞선 보고서의 ‘보유주식 등의 수 및 보유비율’에서는 2015년 7월 2일과 이번 2023년 6월 23일을 비교해 보유 비율이 5.53% 하락한 것으로, 또 한 보고서에서는 2020년 7월 3일과 비교해 0.54% 하락했다고 기재하면서 언론과 증권 시장의 혼선을 일으켰다.

그러나 실제는 최근의 보유량과 비교했을 경우 9만119주 매도로 16.18%에서 15.95%로 0.23%에 지나지 않는다.

쉰들러는 2015년 21.48%(421만6천380주)를 보유했지만, 2020년까지 전환사채, 유상증자, 자기주식 소각, 무상증자를 통해 2020년 6월에 16.49%(632만4천570주)로 변동 됐다. 이후 올해 자기주식 소각 등으로 이번 매도전까지 16.18%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 기간 동안 주식수는 크게 늘어났지만, 지분율 조정이 됐다.

이 때문에 일부 언론에서는 ‘엑시트’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쉰들러가 5.53%를 매도했다는 오보가 게재되면서, 공시 익일인 27일 오전 증권시장에서는 한 때 현대엘리베이터 주가가 13% 이상 폭락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쉰들러의 의도대로 된 것이다.

이렇게 되자 시장에서는 쉰들러를 ‘시장교란세력’으로 사실상 공매도로 주가 하락을 유도한다는 극단적인 비판 글이 돌았다. 돈도 벌고 지분도 싸게 늘리자는 수법으로 볼 수 있다는 것. 쉰들러가 5차례 걸쳐 4만3천원 가량에 9만주를 시장에 매도할 때 이를 매수한 소액주주들은 공시 이후 주가 폭락으로 10%이상의 손실을 입었다.

쉰들러는 2015년 이후 이번 매도 전까지 지분을 사거나 판 적이 없다. 이 기간 보유율 변동은 유상증자 불참에 따른 것이며, 오히려 무상증자로 주식수 421만6천380주에서 632만4천570주로 늘고 최근 자사주 소각으로 지분율은 15.5%에서 16.18%로 오른 바 있다.

통상 대주주가 지분을 매각할 때는 블록딜 형태가 일반적이다. 이런 식으로 장내에서 매각하면서 본인들의 수익을 챙기고 소액주주들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는 전형적인 투기세력이라고밖에 설명할 수가 없다는 지적이다. 더욱이 2대주주로서 기업의 정상적인 경영을 방해하고 시장에서의 신뢰를 저버리게 하는 것은 무책임하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주주대표소송을 통해 현정은 회장이 현대엘리베이터에 2천억원대의 손해배상을 하도록 했던 쉰들러의 최종 목적은 현대엘리베이터 경영권 장악이라는 게 재계의 분석이다. 결국 이번 주식 매각을 통해 주가를 폭락시키고 다시 우호세력 등과 결탁해 주식 매집 등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이다.

지난 20여 년간 끊임없이 현대엘리베이터를 노리고 흔들기를 멈추지 않는 쉰들러의 형태는 적대적 M&A를 노리는 전형적인 투기세력과 다를 바 없다. 이 과정에서 시장을 교란해 선량한 주주들에게 마저 피해를 주는 등 막무가내식 행위를 서슴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이들의 꼼수 공시와 시장교란 등을 들어 자본시장법 등의 위반 소지는 없는지도 따져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제기되고 있다.

쉰들러는 공시 이후 언론에 자료를 배포해 "현대엘리베이터의 지분 10% 이상을 지속 유지할 것"이라며 "계속해서 현대엘리베이터의 대주주로서 남을 것"이라고 추가적인 매도 의도와 동시에 대주주로 남겠다는 이중성을 보였다. 이미 땅에 떨어진 신뢰를 회복하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한 메시지다. 설령 신뢰를 잃은 쉰들러가 현대엘리베이터에 대한 적대적 M&A가 성공하더라도 한국시장에서 과연 설 자리가 있을 지 묻고 싶다.

/양창균 기자(yangck@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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