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의 과학세상] '가짜' 과학에 찌들어버린 사회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대해 침묵을 지켜왔던 과학기술계가 마침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과학기술한림원이 지난 7월 6일 원탁토론회를 통해 우리가 후쿠시마 오염수의 태평양 방류를 걱정해야 할 어떠한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사실을 밝혔다.
서울대 원자핵공학과도 홈페이지를 통해서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대해서 언론을 통해 확산하고 있는 엉터리 주장을 반박하는 구체적인 자료를 내놓았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도 일본의 방류 계획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 보고서를 공개했다. 미국·캐나다·뉴질랜드·유럽연합(EU)이 모두 IAEA의 보고서를 인정한다고 밝혔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반응이 당혹스럽다. 원자력학계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두고 ‘정치적 성향’이나 ‘개인적 관점’에 따라 서로 정반대의 주장을 펼치는 ‘균열’의 모습을 보이기 시작해서 국민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국민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진보’의 과학과 경제적 이익에만 눈이 먼 ‘보수’의 과학 중 어느 것이 옳은지는 모르겠다고 당당하게 외치는 역사학자도 등장했다. 과학기술계가 오염수 방류가 ‘안전하다’고 일방적으로 외칠 것이 아니라 국민적 신뢰를 얻는 일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는 점잖은 충고의 목소리도 들린다.
● 가짜 과학에 찌든 사회
우리에게 엉터리 ‘가짜 과학’(fake science)은 결코 낯선 것이 아니다. 모두가 국민 건강·안전과 국가 경제를 떠들썩하게 앞세운다. 그러나 사실은 눈앞의 이익을 부당하게 챙기려는 파렴치한 기업이나 사회적 명성에 눈이 멀어버린 ‘돌팔이’ 과학자·전문가들이 만들어낸 억지일 뿐이다. ‘진짜’ 과학과 ‘가짜’ 과학을 분별한 최소한의 능력조차 갖추지 못한 황색 저널리즘이 엉터리 가짜 과학의 온상이다.
정체불명의 ‘육각수’가 암·치매·정신병까지 말끔하게 고쳐준다는 1980년대의 억지가 우리 사회에 등장한 ‘가짜 과학’의 원조(元祖) 격이었다. 국가과학자로 선정된 경력을 가진 원로 화학자가 만들어낸 가짜 과학이었다. 얼음의 결정 구조를 유지하는 액체의 물이 기적과도 같은 치료 효과를 낸다는 억지였다.
가전 3사가 떠들썩하게 ‘육각수 냉장고’를 들고나왔다. 원로 화학자의 가짜 과학에 우리 과학계는 침묵할 수밖에 없었고, 그런 틈을 노리고 화려한 황색 저널리즘이 국민의 이성을 마비시켜버렸다. 그런 가짜 과학을 말끔하게 정리해준 것은 소비자단체였다.
당시 소비자연맹의 정광모 회장이 육각수 냉장고의 진실을 낱낱이 파헤쳐 보여주었다. 그렇다고 우리 사회가 육각수의 환상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언론을 통해 기적의 전해수·알칼리수·이온수·알파수·레민다수·황토수 등의 ‘기적의 물’이 끊임없이 등장했다.
가장 최근에 등장했던 ‘산소수’와 ‘수소수’도 소비자의 이성을 마비시킨 엉터리 가짜 과학이었다. 심지어 물이 사람의 마음을 읽어내고, 좋은 말과 나쁜 말을 구별하고, 놀라운 기억력을 가지고 있다는 가짜 과학도 등장했다. 순진한 어린아이를 호수로 데려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노래하는 눈물겨운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1990년대에는 ‘음이온’이 등장했다. 우리의 건강을 지켜준다던 기적의 ‘음이온’을 쏟아내는 기능을 갖춘 공기청정기와 에어컨이 불티나게 팔렸다. 자동차와 냉장고용 음이온 살균 장치는 지금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사실 기적의 음이온은 호흡기에 치명적인 피해를 주는 ‘오존’이었다. 실제로 음이온 공기청정기가 쏟아내는 오존에 목숨을 잃어버린 소비자가 있다는 보도도 있었지만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만병통치의 ‘원적외선’도 있었고, ‘신생아에게 안전한’ 가습기 살균제도 등장했다.
건강한 삶을 위해 평생 먹어야만 하는 아미노산인 글루탐산(MSG)을 치명적인 질병을 일으키는 ‘신경독소’로 전락시켜버린 MSG 가짜 과학도 있었고, 서해의 맑은 바닷물과 깨끗한 바람으로 만든 ‘천일염’과 대나무에 넣어서 구운 ‘죽염’이 세계 최고 품질의 식용 소금이라는 엉터리 가짜 과학도 있었다. 고압 송전탑과 휴대폰의 전자기파가 암을 일으킨다는 ‘전자파’ 유해론도 심각한 가짜 과학이었다.
● 가짜 과학은 ‘과학’이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가짜 과학 공화국’에 살고 있다. 정말 안타까운 현실이다. 후쿠시마 오염수 괴담도 사실은 지난 10여 년 동안 우리 사회를 끈질기게 파고들었던 가짜 과학에서 시작된 것이다.
황색 저널리즘의 전형(典型)이 돼버린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이 오염수와 관련된 엉터리 가짜 과학을 퍼트리는 돌팔이 과학자에게 영혼을 팔아버렸다. 광우병과 사드 괴담으로 톡톡히 재미를 봤던 정치판이 힘을 합치면서 ‘후쿠시마 가짜 과학’은 아무도 감당할 수 없는 ‘후쿠시마 괴담’으로 증폭되고 말았다.
과학기술계가 보수와 진보로 균열되어 있다는 언론의 지적은 명백한 오류다. 과학계는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내놓은 오염수 방류의 기술 평가 보고서를 인정한다. 탱크에 저장해놓은 ‘오염수’를 일본의 다핵종제거설비(ALPS)로 처리한 ‘처리수’를 충분히 희석한 ‘방류수’의 방류가 국제적 관행을 충족시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우리 과학계도 지구 표면의 32%, 바다 면적의 46%를 차지하는 대양(大洋)인 태평양에 하루 120톤의 오염수를 처리·희석해서 방류한다고 해양 생태계에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는 분석에 동의한다는 뜻이다.
후쿠시마 해변에 4인 가족 100가구가 거주하는 아파트 1개 동에서 배출하는 하수·오수가 드넓은 태평양을 못쓰게 만든다는 주장은 과학 이전에 상식을 완전히 벗어나는 억지라고 할 수밖에 없다. 후쿠시마 앞바다에 가장 강력한 쿠로시오 해류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더욱이 일본이 태평양으로 내보낸 방류수에 들어있는 방사성 오염물질이 우리나라 해역으로 흘러올 가능성이 무시할 수 있을 정도라는 사실도 확인했다. 다만 오염물질이 우리나라 해역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전문가의 주장은 매우 조심스러운 것이다.
유입되는 오염물질의 농도가 검출한계 이하일 경우에는 ‘흘러오지 않는다’는 일상적인 표현이 더 적절한 것이다. 후쿠시마 앞바다에 버린 1조 개의 페트병 중에서 1개가 제주도로 흘러온다고 해서 후쿠시마의 오염물질이 제주도로 ‘온다’고 해서는 안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일부에서 ‘진보’의 과학이라고 인식하는 주장은 진정한 ‘과학’이 아니다. 오히려 초등학교 수준의 상식과 과학을 철저하게 무시하는 ‘가짜 과학’일 뿐이다. 언론이 그런 엉터리 가짜 과학을 아무 단서도 붙이지 않고, 마치 확인된 ‘과학적 사실’인 듯 보도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가짜 과학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어야 하는 가짜 과학과 대립하는 ‘의견’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주장이 ‘가짜 과학’이라는 사실조차 구별하지 못하는 인문·사회학자의 억지도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부끄러운 것이다.
해류는 오염물질을 ‘운반’해주는 대신 사방팔방으로 흩어지게 만드는 ‘분산’의 기능을 한다. 세슘과 플루토늄이 무거워서 바다 밑으로 가라앉는다는 주장도 소가 들어도 웃을 정도의 가짜 과학이다. 원자나 분자는 너무 작아서 중력보다 열운동의 영향이 더 중요하다.
1905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원자의 존재를 이론적으로 밝혀낸 꽃가루의 브라운 운동이 바로 그런 현상이다. 일반적인 물과 화학적으로 구분할 수 없는 삼중수소수(水)로 존재하는 삼중수소가 생체에 축적된다는 주장도 당혹스러운 가짜 과학이다.
알프스에 대한 가짜 과학도 심각하다. 알프스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필터와 분리막도 교체해야 한다. 그런데 알프스의 가동이 중단된다고 처리하지 않은 오염수가 그대로 바다로 누출되는 것은 아니다. 오염수의 수질과 알프스의 성능에 대한 지나친 관심은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저장탱크에 들어있는 오염수가 아니라 바다에 흘려보내게 될 방류수의 수질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방류수가 ‘먹는 물 수질기준’을 충족한다는 주장에 ‘너나 마셔라’라고 외치거나, 안전하면 수돗물로 쓰거나 맥주를 만들어 마시라고 몰아붙이는 것도 볼썽사나운 가짜 과학이다. 기술적으로는 오염수를 진짜 먹는 물 수준으로 정수 처리할 수 있다.
실제로 국제우주정거장(ISS)의 우주인은 자신의 소변을 먹는 물로 재활용한다. 그러나 일상생활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경제성과 국민 정서도 고려해야 한다. 수도법에 따라서 저장탱크의 오염수는 수돗물의 원수(原水)로 사용할 수 없다. 바다에 버릴 수 없다는 방류수는 농업·공업용수로 쓸 수도 없다. 농업·공업용수도 결국은 바다로 흘러 들어가기 때문이다.
IAEA의 보고서를 신뢰할 수 없다는 보건학자의 억지도 황당하다. 미국·캐나다·뉴질랜드·유럽연합에도 뛰어난 역량을 가진 보건학자들이 넘쳐난다. 알량한 수준에서 국제기구의 공식 보고서를 한 마디로 평가절하해버리는 모습이 애처로울 뿐이다.
‘기준치’가 임의로 설정된 것이라는 물리학자의 억지도 황당한 가짜 과학이다. 고속도로의 ‘제한속도’도 임의로 설정한 것이지만 함부로 무시해서는 안 된다. 세상이 물리학 법칙만으로 움직인다는 식의 억지는 부끄러운 것이다.
언론 보도에서 진짜 과학과 가짜 과학의 ‘균형’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황당한 것이다. 상식과 과학을 무시한 가짜 과학은 보도 가치가 전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기꾼의 거짓 주장도 보도해야 한다는 억지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것이다. 기자들에게는 가짜 과학을 가려낼 능력이 없다는 변명은 부끄러운 것이다. 과학기술 시대의 언론인에게 요구되는 책무는 절대 가벼운 것이 아니다. 언론이 가짜 과학에 찌들어버린 우리 사회를 바로 잡겠다는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
※필자소개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2012년 대한화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과학기술,교육,에너지,환경, 보건위생 등 사회문제에 관한 칼럼과 논문 2900편을 발표했다.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번역했고 주요 저서로 《이덕환의 과학세상》이 있다.
[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duckhwan@sogang.ac.kr ]
Copyright © 동아사이언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