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멀리포트] 플라스틱 끈, 철사, 스파이크까지 두른 새 둥지가 위험하다
플라스틱 끈, 담배꽁초, 비닐봉지, 사탕 포장지.... 최근 인간이 버린 쓰레기를 이용해 지은 새 둥지가 늘어나며 새들의 생존을 위협한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나왔다. 이로 인한 피해를 줄이려면 둥지에 쓰인 인공 재료가 새의 이동과 번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구체적인 연구와 함께, ‘잘 썩지 않는’ 쓰레기를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생물학 학술지인 영국 ‘왕립학회 자연과학 회보B’는 지난 10일 이 같은 내용의 연구 결과를 특별호로 다뤘다. 폴란드 포즈난생명과학대와 영국 버밍엄대, 뱅거대, 스페인 그라나다대 연구진이 학계에 보고된 관련 논문 75개를 통해 새 176종이 지은 둥지 3만5000개를 분석한 결과다.
◇ 담배 둥지는 내분비 교란 일으키고, 플라스틱 끈 둥지는 숨통 조인다
새들은 자기가 사는 환경에서 구하기 쉬운 재료를 이용해 둥지를 짓는다. 대개 나뭇가지나 잎, 끈처럼 길고 질기거나 진흙처럼 굳는 것을 이용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주변에서 얻기 쉬운 인공 재료가 둥지 재료로 선택됐다. 도시에 사는 새는 담배꽁초와 플라스틱 빗자루 섬유, 면 조각, 비닐봉지, 물티슈를, 농촌에 사는 새는 농사에 많이 쓰는 플라스틱 끈과 철사, 나일론 봉지, 합성섬유 조각을 많이 썼다. 바다에 사는 새는 낚싯줄과 밧줄, 그물 조각을 많이 썼다.
지역에 상관없이 새들이 공통적으로 가장 선호하는 인공 재료는 플라스틱(58.5%)과 천(19.7%), 종이(8.5%)였다. 금속 재료 중에서는 철사(24.4%)가 가장 많이 쓰였다. 플라스틱을 세세히 분류해보면 끈이 가장 많았고(21.6%) 호일 같은 시트 형태(19.2%)와 실(14.0%), 조각 형태(11.4%) 순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이들 재료가 자연에서 얻는 둥지 재료인 잎과 나뭇가지, 덩굴과 닮아 새들이 선호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부리로 물고 나르기에 가볍고 둥지 형태를 유지할 만큼 튼튼하기 때문이다. 반면 새가 나르기 무겁거나 힘든 유리 조각과 플라스틱 필름, 페트병은 둥지 건축에 잘 쓰이지 않았다.
인공 재료로 지은 둥지는 얼핏 새들에게 이점을 주기도 한다. 예를 들어 멕시코양지니(Haemorhous mexicanus)와 집참새(Passer domesticus)는 둥지에 담배꽁초를 많이 넣는데, 이 안에 든 니코틴에 특이한 냄새와 독성이 있어 기생충이나 천적이 꼬이지 않았다.
몇몇 물닭(Fulica atra)은 철사나 인공 끈을 이용해 둥지를 지었는데 폭풍이 불어도 끄떡없었다. 흰색 플라스틱 조각을 둥지에 쓴 솔개는 천연 둥지에서 사는 솔개보다 짝짓기 상대를 구할 확률이 더 크고 실제로 자손도 많았다. 폴리에스터 충전재와 헝겊, 폴리우레탄 폼으로 둥지를 지으면 보온을 유지할 수 있다. 이렇게 지은 둥지에 사는 아기 새는 천연 둥지의 아기 새보다 발달 상태가 좋고 사망률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하지만 둥지에 쓰인 인공 재료가 새들이 살아가는 데 위협이 된다고 지적했다. 담배꽁초로 지은 둥지에서 사는 참새는 니코틴 때문에 적혈구유전독성이나 내분비 교란 현상이 일어났다. 황새들은 둥지에 끼어 있던 플라스틱 끈이나 고무줄을 먹어 치명적인 장폐색을 보였다. 이런 둥지에서 죽은 채 발견된 새들을 부검한 결과 약 26%가 소화기에서 고무줄이 나왔다. 바다수리(Pandion haliaetus)가 플라스틱 끈이나 고무줄로 둥지를 지었다가 여기에 엉켜 사망하는 경우도 5.6%나 됐다. 합성 섬유나 플라스틱 조각이 천연 재료보다 색깔이 화려한 탓에 포식자에 눈에 잘 띄는 점도 문제였다.
◇ 새 부리와 둥지 재료는 공진화, 어떤 상호작용하는지 추가 연구 필요
‘왕립학회 자연과학 회보B’는 같은 날, 새 부리가 둥지 재료와 함께 상호 영향을 준다는 연구 결과도 소개했다. 영국 브리스톨대와 세인트앤드루스대 연구진은 새 5924종의 부리 모양과 각각 둥지를 지을 때 쓰는 재료를 68.5~96.8% 정확도로 맞히는 인공지능(AI)을 개발했다.
그 결과 부리 길이에 비해 너비가 좁은 새들은 주로 식물 줄기나 덩굴로, 부리 부피가 큰 새들은 진흙이나 토탄, 배설물처럼 잘 엉기는 재료로 둥지를 지었다. 부리의 형태가 실제로 둥지 재료를 선택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새 부리의 형태와, 새가 둥지를 지을 때 고르는 재료는 서로 밀접하게 영향을 주며 진화(공진화)한다”고 분석했다. 인공 재료로 둥지를 짓는 일이 많아지는 만큼 부리와 둥지 재료 사이의 상호작용에 대한 자세한 연구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어떤 새들은 자기 둥지를 지키기 위해 일부러 ‘쓰레기가 아닌’ 인공 재료를 뜯어다 쓰기도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네덜란드 자연사박물관 생물다양성센터와 라이덴대 생물학연구소 연구진은 영국 글래스고와 벨기에 앤트워크, 네덜란드 로테르담 등에 지어진 새 둥지 가운데 일부에서 버드스파이크를 발견해, 연구 결과를 지난 11일 로테르담 자연사박물관 정기간행물(Deinsea)에 실었다.
버드스파이크는 비둘기나 까치 등 새가 창문가나 동상 등에 앉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플라스틱판에 철판을 빽빽하게 꽂아놓은 장치다. 연구진은 둥지 속 버드스파이트에서 새들이 일부로 잡아뜯은 흔적을 발견했다. 천적으로부터 알을 보호하기 위해 버드스파이크를 이용해 울타리를 둘렀다는 주장이다.
그만큼 인공 재료가 새들이 둥지를 짓는 데 주요하게 쓰인다. 하지만 새 둥지에 쓰이는 인공 재료가 얼마나 다양한지, 어떤 종이 주로 어떤 인공 재료로 둥지를 짓는지 등에 대한 자세한 연구가 없다.
◇ 사람 살지 않는 섬에서도 인공 재료 둥지가 새들 위협할 수 있어
포즈난생명과학대 등 연구진은 새들이 둥지를 지을 때 인공 재료를 얼마나 많이 쓰고 있는지, 인공 재료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등을 자세히 연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둥지는 새들이 일정한 장소에서 머물로 번식하는 중요한 장소이므로 새들의 생존 문제와 직결돼 있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인공 재료로 지은 둥지가 몇 마리를 병들게 하고 죽게 하는 수준을 넘어, 장기적으로는 새들이 번식하고 이동하는 것을 방해해 멸종 위기로 몰아 넣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또한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려면 근본적으로 자연에 쌓이는 인공 폐기물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간이 버리는 폐기물은 점점 급증하고 있다. 학계에서는 플라스틱 같은 고형 폐기물이 매년 20억 톤 이상 발생하며, 2050년까지 50% 이상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고형 폐기물은 오랫동안 썩지 않는 데다 바닷물을 타고 사람의 발길이 닿은 적이 없었던 외딴 곳까지 퍼진다. 남태평양 동쪽에 있는 헨더슨섬은 무인도인데도 1m²당 인공 폐기물 672조각이 쌓여 있으며 매일 26.8개가 해변으로 밀려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7년 기준으로 17.6t(톤)이 쌓여 있다. 아마존 하구와 소노란 사막 등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지역에서도 새들이 충분히 인공 재료로 둥지를 짓고 살며 장기적으로 생존의 위협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참고 자료
Philosophical Transactions of The Royal Society B(2023), DOI:https://doi.org/10.1098/rstb.2022.0156
Philosophical Transactions of The Royal Society B(2023), DOI:https://doi.org/10.1098/rstb.2022.0147
DEINSEA(2023) https://www.hetnatuurhistorisch.nl/fileadmin/user_upload/documents-nmr/Publicaties/Deinsea/Deinsea_21/Deinsea_21_17_25_2023_Hiemstra_et_al.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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