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기망했다" vs "합의했다"…LG家 상속재판 첫날 기싸움 '팽팽'

장유미 2023. 7. 18.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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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언장 인지 시점·제척기간 두고 양측 대립…하범종, 10월 재판서 첫 증인으로 나서

[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구광모 LG그룹 회장과 어머니인 김영식 여사, 여동생인 구연경 LG복지재단 대표, 구연수 씨의 첫 상속 지분을 둘러싸고 법적 분쟁이 시작된 가운데 양측이 첫날부터 팽팽한 기싸움을 벌였다.

상속 재산 분할 협의에서 유족들 논의 없이 구 회장 측이 일방적으로 협의서를 작성했다는 세 모녀 측과 상속을 받은 지 5년이 다 돼 이미 제척 기간이 지났다는 구 회장 측의 입장이 맞선 가운데 이번 재판의 첫 증인으로 채택된 하범종 LG경영지원부문장이 향후 재판에 어떤 영향을 줄 지 주목된다.

구광모 LG그룹 회장 [사진=LG그룹]

서울서부지법 민사 11부는 18일 오전 10시 고(故) 구본무 LG그룹 선대회장의 부인 김 여사와 딸 구연경 대표, 구연수 씨가 구광모 회장을 상대로 낸 상속회복청구소송의 첫 재판을 진행했다.

상속회복청구 소송은 자신의 상속 받을 권리를 침해받은 상속권자가 제기하는 소송이다.

이날은 변론준비기일로, 구 회장과 세 모녀는 법원에 출석할 의무가 없어 현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구 회장의 소송 대리인으로는 법무법인 율촌 강석훈, 김성우, 김근재, 김능환, 이재근, 최진혁, 강민성 변호사 등이 나섰고, 이날 재판에는 강석훈, 이재근, 한성우, 김근재 변호사 4명이 출석했다. 세 모녀 측에선 법무법인 케이원챔버 강일원, 법무법인 해광 임성근 변호사 등 두 명이 나왔다.

법원은 사건에 대한 쟁점과 증거, 증인 채택 여부 등을 양측 변호인의 참석 하에 이날 결정했다. 다음 변론기일은 10월 5일 오후 3시 30분으로 결정됐으며 첫 증인으로는 하범종 LG경영지원부문장이 채택됐다.

◆ '유언장 인지 시점' 두고 기싸움…세 모녀 측 "구광모가 기망했다"

이날 재판에서 양측은 변론준비기일임에도 유언장 인지 시점과 제척기간을 두고 각자의 입장을 강하게 표출했다. 구 회장 측은 상속을 받은 지 5년이 다 돼 이미 제척 기간이 지났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데, 이에 맞춰 지난 4월에는 법원에 소송의 제척 기간이 지났다는 취지의 답변서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제척 기간은 법적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일종의 법정 기한을 말한다. 상속회복 청구권은 상속권의 침해를 안 날부터 3년, 상속권의 침해행위가 있은 날부터 10년이 지나면 소멸한다. 구 회장 등에 대한 상속 절차가 2018년 11월 완료됐고, 김 여사 등이 소를 제기한 것은 올해 2월로 제척 기간이 훨씬 지났다는 것이 LG측 입장이다.

구 회장 측 변호인은 "구연수 씨를 상속 과정에서 배제했다는 원고 측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고, 상속 과정에서도 원고 측인 세 모녀 모두 구체적 분할 부분에 모두 합의한 것으로 절차상 전혀 문제가 없었다"며 "4년여간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고, 증거도 없고 (상대 측의) 주장도 타당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어 "명확한 동의가 없다는 원고 측의 주장도 맞지 않고, (세 모녀가) 피고(구 회장) 측 (한남동) 자택에 방문해 (양측이 협의했다는) 이 같은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는 발언도 했다"며 "피고 측이 상속 과정에서 원고 측을 기망한 사실도 없고, (구 회장이) 상속하기로 한 사실 자체를 두고 원고 측도 스스로 인정했기 때문에 (이번 소송의) 인과 관계는 전혀 없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2018년 12월 재산의 이전, 등기, 명의 이전, 공시, 언론보도 등이 이뤄졌다"며 "4년이 훨씬 경과해 상속회복청구권의 제척기간이 지났기 때문에 사건이 부적합하다"고 말했다.

LG트윈타워에서 구본무 1주기 추모식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LG]

이에 대해 원고인 세 모녀 측은 반발했다. 세 모녀 측은 구본무 선대회장의 유언장이 존재하지 않고 2022년 5월경 비로소 구광모 회장 측에 속았다는 것을 뒤늦게 인지해 소송을 제기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유언이 없었기 때문에 통상적인 법정 상속 비율을 따라야 한다는 입장이다.

민법 999조에 따르면 상속회복청구권은 상속권 침해를 안 날부터 3년, 상속권의 침해 행위가 있은 날부터 10년이 지나면 소멸한다.

원고 측 변호인은 "구연수 씨를 제외한 일부 상속인을 대상으로 이번 상속이 이뤄졌고 김영식 여사의 동의도 없었다"며 "구연경 대표에게도 피고(구광모 회장)가 LG 주식을 모두 상속 받는다는 발언으로 기망한 상태에서 협의서를 작성한 후 원고 측이 뒤늦게 사실을 깨달았고, 이에 따라 협의를 취소하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또 그는 "기망행위의 중심이 되는 (구본무) 유언장이 없다는 사실은 2022년에야 알게 됐다"며 "상속 합의 이후 제척기간의 경과와는 상관이 없다"고 덧붙였다.

◆ LG일가 전통 따른 상속…반발한 세 모녀

지난 2018년 구본무 선대회장 별세 후 그가 보유한 ㈜LG 주식 1천945만8천169주(11.28%)을 포함한 2조원 규모의 재산은 상속법에 따라 LG 총수일가인 부인 김영식 여사와 자녀인 구광모 당시 상무(현 회장), 구연경 씨, 구연수 씨 등 4명이 나눠 받았다. 법정 비율대로 상속할 경우 김 여사는 3.75%, 구광모 회장 등 자녀 3명은 2.51%씩 나눠 받아야 했다.

국내 민법(1112조)은 상속과 관련해 유류분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고인의 유언이 있다하더라도 재산을 특정인에게 몰아줄 수 없는 규정이다. 피상속인의 배우자와 직계비속은 법정 상속분의 2분의 1, 직계존속과 형제자매는 3분의 1을 유류분으로 규정한다.

이는 장남이 유산을 독식하는 관행을 타파하고 여성 배우자 및 자녀의 정당한 상속분이 일방적인 유언으로 훼손되지 않도록 하자는 취지였다. 이 같은 현행법을 따르면 고 구본무 전 회장이 보유한 상장사의 지분은 유가족에 1.5대 1대 1대 1 비율로 상속돼야 한다.

세 모녀 측 대리인인 임성근 변호사가 18일 서울서부지방법원 앞에서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사진=장유미 기자]

그러나 구광모 회장은 ㈜LG 지분의 8.76%(1천512만2천169주), 장녀 구연경 씨는 2.01%, 차녀 구연수 씨가 0.51%를 받았다. 당시 시장가격 기준 구연경 씨와 구연수 씨가 받은 지분의 가치는 각각 약 3천300억원, 830억원에 달했다. 배우자인 김 여사에게 상속된 지분은 없었다.

LG그룹에 따르면 LG일가의 전통에 따라 이들은 수 차례 협의를 통해 ㈜LG 주식 등 경영권 관련 재산은 구광모 회장이 상속하고, 김영식 여사와 두 여동생은 ㈜LG 주식 일부와 선대회장의 개인 재산인 금융투자상품, 부동산, 미술품 등을 포함해 5천억원 규모의 유산을 받는 것으로 합의했다.

재계에선 LG 총수일가의 상속재산 분할과 관련해 구본무 회장과 법정상속인 간 생전에 원만한 협의가 있었던 것으로 그간 알려져왔다. 하지만 이번 일로 LG 총수일가도 상속 문제가 있었음이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됐다. LG 총수일가에서 재산 문제가 불거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LG그룹 관계자는 "구 회장은 그동안 가족과 가문의 화합을 위해 최대한 대화를 통해 원만히 해결하려 노력했던 것으로 안다"며 "이제 와서 문제를 제기한 데 대해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 녹취록·증인 채택 두고 입장차 뚜렷…하범종·강유식 증인 채택 합의

이날 재판에서 세 모녀 측은 유리한 판결을 이끌기 위해 막대한 분량의 녹취록을 재판부에 증거 자료로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녹취록을 증거로 제출하기 위한 절차와 관련해 피고인 측과 의견이 충돌됐다. 원고 측은 가족 간의 대화가 녹음돼 녹취록을 이번 사건과 관련된 부분만 발췌해 제출하겠다고 주장한 반면, 피고 측은 형사소송법상 절차를 이유로 원고 측이 먼저 녹음 파일 원본을 모두 공유해줘야 한다고 맞섰다.

원고 측 변호인은 "현재 상당히 많은 분량의 녹취록이 있고, 가족 간의 대화여서 전체 녹취록 제출이 매우 어렵다"며 "일반적으로 속기사에게 맡겨 녹취록을 작성해 제출하지만, 분량이 많은 데다 민감한 내용이 노출될 것이 염려돼 우리 측이 일부 발췌만 해서 녹취록을 제출하는 것을 재판부와 피고 측이 허용해줬으면 한다"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피고인 측 변호인은 "녹취 내용을 검토할 때 전체 맥락을 이해해야 할 부분이 있는데 발췌를 한다는 것은 (증거로서) 의미가 없다고 본다"며 "원본 파일만 공유해주면 우리도 의견을 준비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맞섰다.

구연경(왼쪽) LG복지재단 대표이사가 지난해 8월 19일 서울 마곡 LG사이언스파크에서 진행된 '저신장아동 성장호르몬제 기증식'에서 어린이에게 기증서를 전달하고 있다. [사진=LG그룹]

증인 채택과 관련해서도 양측은 이견을 보였다. 세 모녀 측은 지난달 30일 구 회장의 친부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을 포함해 구본무 선대 회장의 최측근인 강유식 전 LG경영개발원 부회장, 박장수 LX홀딩스 최고재무책임자(CFO), 하범종 LG경영지원부문장, 김성기 LG 재경팀 상무 등 7명에 대한 증인을 신청했다. 상속재산분할 당시 LG그룹 경영에 깊이 관여했던 이들이 해당 내용과 관련한 사실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을 것으로 판단해서다. 세 모녀 측은 구 회장의 친부인 구본능 회장과 회사 관계자들의 주도하에 상속재산분할협의서가 작성되고 날인됐다고 보고 있다.

일단 양측은 하범종 LG경영지원부문장, 강유식 전 LG경영개발원 부회장의 증인 채택에 대해선 합의했다. 구본무 선대회장의 최측근인 강 전 부회장의 경우 현재 LG연암문화재단·LG연암학원·LG상록재단 등 3개 공익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일단 이날 재판부는 하 부문장을 첫 증인으로 채택했다. 증인신문 시간은 하 부문장에게 60분, 강 전 부회장에게 30분이 주어졌다.

재계에선 향후 재판에서 세 모녀와 구 회장이 직접 출석할 지에 대해서도 관심을 두고 있다. 양측 변호인은 이날 재판 전후 현장에 있는 기자들의 관련 질문에 대해 "양해 바란다", "말씀 드릴 게 없다"는 등의 답변만 반복해 내놨다. 또 양측의 합의 가능성과 이를 위해 최근 만났는지에 대한 질문에도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재계 관계자는 "이번 재판은 '유언장 인지 시점'이 관건"이라며 "첫 재판일 전까지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는 점에서 상속 문제를 두고 재판 과정 중 양측의 갈등은 더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이로써 LG그룹은 창업주부터 75년간 무려 4대에 걸친 승계 과정에서 지켜온 '무분쟁' 전통이 깨졌다"며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대기업 가운데 사실상 유일무이하게 부모와 자식, 형제, 자매간 화합을 지켜 온 LG그룹에서 가족 간 재산 다툼이 쟁점화된다는 점이 다소 안타깝다"고 말했다.

/장유미 기자(sweet@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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