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하는 민족’ 오명 벗어난 독일의 비결 [70th 창사기획-리버스 코리아 0.7의 경고]
복지정책 대전환 사회인식 바꿔
“첫 아이 가질때부터 둘째 생각”
본지-보건사회연구원 동행취재
“이미 첫 아이를 가질 때부터 둘째도 생각했어요.”
지난 달 22일 찾은 방대한 규모의 도심공원인 뮌헨 ‘영국 정원(Englischer Garten)’. 그곳에서 아이와 함께 산책을 나온 ‘공무원 아빠’ 하랄드(Harald·36) 씨는 “현재 육아휴직 중으로 아내와 함께 휴직을 하면서 14개월 간의 부모수당을 받고 있다”며 “민간기업에 다니는 친구들도 아빠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데 부담을 느끼는 경우는 한번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하랄드 씨뿐 아니다. 아이 손을 잡고 나온 엄마 에바(Eva·37) 씨도 “아이를 낳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없었다”고 했다. 독일 부모들은 출산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 “출산 후 양육부터 교육까지 한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건 모든 것이 도전”이라며 “ ‘사회적인 양육 루트’가 확보돼야 아이를 낳을 수 있을 것 같다”는 대한민국 맞벌이 부부들의 하소연과 극명히 대조적이다.
독일도 ‘인구절벽’을 우려했던 때가 있다. 지난 2006년 독일은 ‘멸종하는 민족(aussterbendes Volk)’이란 평가를 받았다. 그해 독일 신생아 수가 67만3000명에 그쳐 1965년 130만명 대비 반 토막 수준으로 줄었다. 합계출산율도 1.33명으로 프랑스(1.98명), 영국(1.84명), 네덜란드(1.66명) 등 이웃 국가에 비해 현저히 낮았다. 하지만 현재 독일의 출산율은 1.58명(2021년 기준)으로 반등에 성공했다. ‘아이를 낳아도 행복한 나라’로 탈바꿈한 독일의 비결은 무엇일까.
헤럴드경제는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최초의 국가(옥스퍼드대 데이비드 콜먼 인구학 명예교수)”라는 대한민국 인구 문제의 해답을 찾기 위해 지난 6월 18일 프랑크푸르트행 비행기에 올랐다. 취재팀이 주목한 것은 독일 인구정책 수립 과정과 일·가정양립 정책의 실효성을 담보해준 필수조건이다. 이를 위해 열흘 간 독일 헤센주 비스바덴을 시작으로 노르트 라인-베스트팔렌주 보훔의 사립학교, 바이에른주 뮌헨의 대표적인 시민 공원인 ‘영국 정원’, 베를린시의 유치원과 이민자들이 모여 사는 슈판다우(Spandau) 지역의 전일제 학교를 찾았다. ▶관련기사 4·5면
인구정책 권위자인 이상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인구모니터링평가센터장은 헤럴드경제와 독일 현지 동행취재에 나섰다. 본지에서 연재하고 있는 연중기획 ‘저출산 0.7의 경고’ 시리즈를 읽었다는 그는 “헤럴드경제도 저출산 대응을 기존 사업의 확장 대신 교육, 지방소멸, 양육, 근로 체계 등 다양한 분야의 정책이 함께 어우러지는 것으로 (저출산에) 유의미한 변화를 줄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며 본지와 동행하게 된 배경을 밝혔다.
그는 “지금까지 우리 정부의 인구 정책은 ‘현금 지원’ 등에 초점을 맞춘 복지 정책이 주를 이뤘다”며 “그러나 독일은 복지 정책뿐 아니라 노동, 교육 시스템 변화를 통해 사회 전반적인 인식을 바꾸는 데 성공했다”고 독일의 인구정책을 평가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서쪽으로 40여분 차를 달리면 헤센주의 주도 비스바덴에 도착한다. 독일 인구정책의 ‘싱크탱크’ 연방인구연구소(BiB)가 그곳에 있다. 같은 달 19일 만난 BiB의 연구 총책임자(부국장)인 마틴 부자드(Martin Bujard) 박사는 “독일의 인구정책은 ‘과학적인 연구’를 기반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부자드 박사가 자랑스럽게 꺼낸 정책이 바로 ‘육아휴직 제도’다. 독일의 육아휴직은 3년이다. 3년 중 12개월 동안 ‘부모수당(Elterngeld)’을 지급하는데, 아빠가 육아휴직에 참여하면 2개월을 추가해 총 14개월까지 받는다.
부자드 박사는 “정액제로 지급하던 지원금도 각 개인의 임금에 맞춰 소득대체율 67%까지 높여 한 달에 최대 1800유로(약 256만원)까지 준다”고 자랑하듯 말했다. ‘아빠 육아휴직’을 쓰지 않는 이가 드문 이유다. 한국으로선 부러운 정책이다. 한국은 육아휴직이 1년으로 독일의 3분의1 수준인 데다, 휴직기간에도 돈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아빠의 육아휴직 비율도 엄마의 절반에 못 미친다.
독일의 일·가정 양립 정책이 가능한 것은 이른바 ‘하르츠 개혁’이라 불리는 지난 2003년 노동개혁이 밑거름이 됐다. 근로시간 유연화로 출퇴근 시간이나 자율 근무제가 보편화된 덕에 ‘맞벌이 부모’들은 오후 4시면 퇴근이 가능하다.
우리 정부가 2025년 도입을 목표로 추진 중인 ‘유보 통합’도 독일에선 이미 시행 중이다. 27일 만난 베를린 유치원(INA.KINDER.GARTEN Lüneburger Straße)의 스텔라 흐리스토풀로스(Stella Christopoulos) 원장은 “89명의 원생의 부모 중 60%는 맞벌이”라며 “유치원은 오전 7시까지 오후 5시까지 열려있고, 오후 5시엔 아이를 찾아가야 하지만 이 시간까지 아이를 못 찾아가는 경우는 드물다”고 말했다.
독일은 지난 2003~2009년 총 40억유로(약 5조원)를 투자해 16개 모든 주 정부에 약 1만개의 전일제 학교를 증축했다. 이에 더해 오는 2025년까지 총 35억유로(약 4조7000억원)를 투자해 모든 초등학교를 대상으로 전일제 학교를 의무화한다.
또, 전일제 학교의 질적 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해 각 학교 사정에 맞는 ‘특성화’ 프로그램을 지원한다. 베를린 이민자 거주지역의 크리스티안-모겐스턴 초등학교(Christian-Morgenstern-Grundschule)의 카리나 예니혜(Karina Jehniche) 교장은 “학생의 90%가 저소득 이민자 가정인 탓에 우리 학교의 특성화 콘셉트는 독일어 교육”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공부방이 없는 학생들이 많고 집에선 자국어를 쓰는 경우가 많다”며 “학교는 이들에게 양질의 점심 식사와 공부할 공간을 제공하고 숙제를 도와준다”고 말했다. 독일 인구 증가의 한 가지 비결이기도 한 ‘이민자’ 들은 자녀를 안심하고 학교에 맡기고 일터로 향한다.
이 학교 학부모 대표 킴벌리 하인리히(Kimberley Heinrich) 씨는 “아이가 안전한 학교에 있어 부모도 안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들에게 학교는 “가르칠 뿐만 아니라 돌보는 공간”이다.
출산 이후 아이가 만 3세 될 때까진 육아휴직으로 부모가 아이를 키울 수 있고, 3세 이상부터 유치원과 학교가 무상으로 아이를 맡아주는 셈이다.
헤센주 비스바덴(독일)=김용훈·김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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