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의 옷을 입은 음악…사카모토 류이치 추모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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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마지막이 전시의 시작이다.
최근 국내 출간된 일본 거장 음악가 사카모토 류이치(1952∼2023·坂本龍一)의 유고집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 마지막 장엔 33곡의 플레이리스트가 실렸다.
사카모토는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보게 될까'에 슈가를 만난 일화를 적고 "음악에 진지한 청년"으로 그를 기억했다.
사카모토 음악은 물성을 갖춘 하나의 건축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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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로 30일까지 중구 피크닉서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책의 마지막이 전시의 시작이다.
최근 국내 출간된 일본 거장 음악가 사카모토 류이치(1952∼2023·坂本龍一)의 유고집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 마지막 장엔 33곡의 플레이리스트가 실렸다. 사카모토가 자신의 장례식 때 틀어달라며 남긴 진혼곡(鎭魂曲)들.
'퓨너럴(funeral) : 류이치 사카모토의 마지막 플레이리스트'라는 타이틀로 묶인 이 곡들의 총 러닝타임은 대략 2시간42분. 플레이리스트 마지막 곡은 미국 전자음악가 로렐 헤일로(Laurel Halo)의 '브리스(Breath)'다. 남산, 명동 등의 지역을 2시간 남짓 천천히 돌고 회현역 인근 언덕에 자리한 갤러리 '피크닉(piknic)'에 이르면, 숨(Breath)이 기분 좋게 가빠오고 '브리스'까지 다다른다.
피크닉에선 사카모토의 유고집과 동명인 추모 전시가 열리고 있다. 사카모토의 흔적이 묻어 나는 곳은 어디든 그와 닮았다. 흑백의 미니멀한 공간에서 사카모코의 대표곡 '메리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가 울려 퍼진다. 화면 속에서 그는 담담히 연주하고 있다.
디즈니 플러스(+) 음악 다큐멘터리 '슈가: 로드 투 디-데이(SUGA: Road to D-DAY)'에서 슈가는 사카모토의 개인적인 장소에 놓인 피아노로 '메리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를 연주했다. 사카모토 역시 슈가를 위해 이 곡을 직접 연주했다. 사카모토는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보게 될까'에 슈가를 만난 일화를 적고 "음악에 진지한 청년"으로 그를 기억했다. 슈가는 지난달 끝낸 솔로 투어에서 사카모토가 피아노 피처링을 한 '스누즈' 무대마다 "머나먼 여행 평안하시길 바라겠습니다"라고 추모했다.
사카모토 음악은 물성을 갖춘 하나의 건축물이다. 고독함을 짓는 앰비언트 음악의 미학이다. 음악을 듣는 자신을 들여다보게 만든다. 사카모토 추모 전시가 열리고 있는 공간은 그런 태도를 취하는 데 최적이다. 공간의 옷을 입은 음악이다. "저는 앞으로 암과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조금만 더 음악을 만들어볼 생각입니다. 여러분이 지켜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사카모토 류이치 2021년 1월) 사카모토는 올해 3월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음악은 여전히 많은 이들이 듣고 있다.
전시에선 '자연으로 돌려보내기 위한 실험'이라는 제목으로 행한 '생명, 그 본연의 모습' 관련 사진들도 볼 수 있다. 피아노를 마당에 그냥 놔뒀는데 본래의 나무 상태에 가까워졌다. 사카모토는 "이대로 어떻게 썩어갈 것인가. 그것은 우리 인간이 어떻게 나이 먹어가야 하는가, 하는 것과도 이어져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썼다.
음악은 인간의 강함과 약함을 동시에 꿰뚫는 감정이 있다. 비극을 다룬 음악이 고와도 되는가. 죽음을 향해 가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음악이 아름다워도 되는가. 우리가 죽음에서 자유롭다고 믿는 순간 거기에 갇히게 되고, 그 죽음에 갇혔다고 믿는 순간 더 자유로워진다. 사카모토가 생을 마감하기 직전 보여준 작업들은 그 경지에 이른다.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 클리셰가 된 이 말은 사카모토를 만나 지극히 환기된다. 전시에선 사카모토와 교류한 예술가들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과 현대음악 작곡가 존 케이지 사진, 일본 대표적 미디어아트 그룹 '덤 타입'의 영상 등도 볼 수 있다. 관람은 무료다. 오는 30일까지.
☞공감언론 뉴시스 realpaper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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