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 러시아 ‘흑해곡물협정’ 중단으로 고통받는 최빈국들

유병훈 기자 2023. 7. 18.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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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해의 곡물 수송선 /AP=연합뉴스

우크라이나 곡물의 해상 수출을 가능케 한 흑해곡물협정이 17일(현지 시각) 러시아 측의 연장 중단 선언으로 종료됐다.

AP 통신 등의 보도에 따르면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이날 흑해곡물협정의 데드라인이 이날이었다며 “불행히도 러시아 관련 사항이 이행되지 않아 오늘부터 협정이 종료됐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는 세계 최대 곡물 수출국 중 하나로, 러시아의 침공 전인 2021년 기준 전 세계에서 ▲보리 3위 ▲옥수수 4위 ▲밀 5위 수출국이었다고 연합뉴스가 전했다. 이들 곡물의 95%는 오데사항 등 흑해 연안 항구를 통해 수출됐다.

흑해곡물협정은 이 같은 우크라이나 곡물 수출 선박이 전쟁 중에도 흑해를 안전하게 다닐 수 있도록 하고, 러시아는 농작물과 비료 수출을 보장받게 했다. 협정은 또 튀르키예 이스탄불에 공동조정센터(JCC)를 두고 곡물선이 무기 운송 등 다른 용도로 쓰이지 않는지 검사하는 등 수출입 절차 전반을 관리하도록 했다. 이 협정은 지난해 7월 체결된 이후 3차례 연장됐지만 러시아가 더 이상 연장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전 세계 곡물 가격에 또 비상이 걸렸다.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흑해를 통한 곡물 수출길이 막히자 세계적인 식량 위기가 발생했다. 협정 체결 직전인 지난해 6월 세계 밀과 옥수수 가격은 전년 대비 각각 56.5%, 15.7% 급등해 저소득 국가를 중심으로 식량난이 고조됐다.

결국 유엔과 튀르키예가 중재에 나섰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지난해 7월 흑해에서 곡물 수출선의 안전을 보장하는 협정을 맺었다. 곡물 협정이 타결된 뒤 우크라이나는 오데사항 등 3개 흑해 항구를 통해 지난 1년 동안 3290만t(톤)의 곡물을 수출했다. 유엔 세계식량계획(WFP) 통계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곡물은 전 세계 4억명을 먹여 살리고 있다.

흑해 항로의 안전 보장과 협정 이행을 맡은 JCC에 따르면 이중 절반 이상이 개발도상국에 공급됐다. 유엔은 흑해곡물협정으로 공급이 안정화하면서 국제 곡물 가격이 20% 이상 하락했으며 이는 이집트, 레바논 등 수입 식량에 의존하는 개발도상국들에 큰 도움이 됐다고 보고 있다.

우크라이나 항구에 5개월째 쌓였던 곡물이 다시 수출길에 오르면서 식량 부족과 곡물 가격 급등세를 진정시키는 성과를 거뒀다. 밀 가격은 올해 들어 약 17% 하락했고, 옥수수 시세도 약 26% 내려갔다.

WFP는 협정 체결 직후 72만5000t에 달하는 인도주의적 식량 원조를 에티오피아와 아프가니스탄, 예멘 등 기아에 허덕이는 최빈국에 전달했다. 이에 따라 우크라이나는 WFP가 식량원조용 농산물을 조달하는 국가 중 2위에 해당하며, 구호단체 국제구조위원회(IRC)는 흑해곡물협정을 두고 “가장 심각한 식량 불안 상태에 놓인 79개국 3억4900만명에게 생명줄과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AP·로이터 등 주요 외신들은 글로벌 식량 위기가 아직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터져 나온 이번 협정 중단이 전 세계 기아 위기를 부채질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7월 보고서에서 식량 지원을 해야 하는 국가가 45개국에 달한다고 지적하면서 식품 가격 급등이 이들 국가에서 기아를 유발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아리프 후세인 WFP 수석경제학자는 곡물협정이 재개되지 않으면 저소득 국가와 국민들이 “식량 가격을 감당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샤슈와트 사라프 IRC 동아프리카지역 비상국장은 동아프리카에서 심각한 가뭄과 홍수로 220만명분의 농작물이 파괴됐다며 이러한 위기 지역에서 식량 공급의 “예측 가능성과 안정성을 위해 흑해곡물협정을 장기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국제무역 전문가인 스위스 장크트갈렌대학의 시몬 에버네트 교수는 “흑해 협정은 여러 국가의 식량 안보에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며 “흑해곡물협정 중단은 높은 부채 수준과 기후 위기에 직면한 국가들의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영국의 바버라 우드워드 주유엔 대사는 “우크라이나산 곡물의 3분의 2는 중간 소득 국가로 가고, 일부는 아프가니스탄, 수단, 소말리아 등 기아 직전에 있는 국가로 향했다”며 “이제 그 곡물이 우크라이나를 떠날 수 없기 때문에 세계 식량 가격은 상승할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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