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의대 정원 확대하면 의료비가 늘어난다?
의료비 감소 예상 '경쟁 가설' 각축…환경·제도 따라 상반된 연구결과
경제논리로 과잉진료 정당화 안돼…제도개선·규제·직업윤리 교육 필요
(서울=연합뉴스) 이웅 기자 = 정부가 인구 고령화로 늘어난 의료수요에 대응해 의과대학의 정원 확대를 추진하고 있으나 의사들의 반발로 난항을 겪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우봉식 의료정책연구원장은 지난달 27일 보건복지부가 주최한 '의사 인력 수급추계 전문가 포럼'에서 "의대 정원 확대는 단순히 수요가 많으니 공급을 확대해야 된다는 단순한 개념으로 접근하면 매우 위험하다"며 "왜냐하면 의사 수 증대는 곧바로 의료비 증가로 이어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보건의료비 데이터를 살펴보면 의사 수 증가에 다른 의료비 증가가 분명히 나타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실제로 의대 정원을 확대해 의사 수를 늘리면 국민들의 의료비 부담이 커지는 걸까?
한국전쟁 이후 열악했던 우리나라의 의료 인프라는 경제 성장과 함께 급속히 발전했으며 인구 증가와 소득 증대로 의료비 지출도 빠르게 늘어났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우리나라 경제 규모(명목 국내총생산(GDP))가 1970년 2조8천억원에서 2021년 2천80조2천억원으로 740배 이상 커지는 동안 연간 경상의료비는 720억원에서 180조6천억원으로 2천500배 이상 증가했다. 경제가 연평균(CAGR) 13.8%씩 성장하는 사이 의료비는 매년 16.6%씩 증가한 셈인데, 1989년 전 국민 건강보험 실시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경상의료비는 보건의료 부문 서비스·재화에 대한 국민 전체의 1년간 지출 총액이다.
이런 가운데 해방 직후 6개에 불과했던 의과대학은 40개로 늘어나고 활동 의사 수는 1981년 1만9천명에서 2020년 13만명으로 증가했다.
그러나 의료 인프라를 확충하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과거 언론 보도를 검색해 보면 반세기 전인 1970년대부터 의대 증설과 의대 입학정원을 둘러싼 갈등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당시도 의사들은 의료인력 공급 과잉과 의료 교육 부실화를 이유로 의대 증설에 반대했으며, 반대편에선 인구에 비해 의사 수가 모자라 오진과 인명피해가 늘고 있다며 의사 증원을 요구했다.
이 같은 갈등은 1980~90년대에도 이어졌다. 의대 수가 1979년 19개에서 41개로 늘어나는 사이 의사들의 반발은 격화되고 의대 입학정원 동결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1990년 당시 활동 의사 수는 3만5천800명, 인구 1천명당 의사 수는 0.8명이었다.
보건복지부의 2020년 언론 배포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의대 입학정원은 해방 직후 800명에서 1990년대 3천300명까지 늘었다가 2006년 3천58명으로 줄어든 뒤 현재까지 18년째 유지되고 있다. 2000년 의약분업에 반발한 의사단체의 요구를 정부가 받아들여 입학정원을 10% 줄인 결과다. 2018년 서남의대 폐교로 의대 수는 1개 줄었으나 해당 정원(49명)을 다른 대학에 배정해 전체 정원은 변동이 없다.
한동안 잠잠했던 의사 증원을 둘러싼 갈등은 2010년대 인구 고령화 문제가 확산하면서 다시 불거졌다. 고령화에 따른 의료수요 증가에 대비해 부족한 의사 수를 늘리기 위해 의대 정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자, 의협은 국민의 욕구를 만족시킬 만큼 의사 인력을 늘리다간 의료비 증가에 직면할 것이라며 맞섰다. 정부는 코로나19 사태가 한창이던 2020년 의대 정원을 연 400명씩 10년간 4천명 늘리고 공공의대를 설립하는 방안을 추진했으나, 의사들의 집단휴진 등 반발에 막혀 중단됐다. 그러다 올 1월 논의를 재개한 복지부와 의협은 지난달 초 의대 정원 확대에 합의했지만, 의협 내부에서 지도부에 대한 불신임안을 발의하는 등 진통이 계속되고 있다.
[표] 국내 의과대학 설립경과 및 입학정원 변화
[보건복지부 2020년 7월23일 배포자료 '의대정원 확대 및 공공의대 설립 추진방안' 발췌]
흔히 '응급실 뺑뺑이' '소아청소년과 오픈런' '분만실 찾아 삼만리' 등으로 회자되는 필수의료 분야 의사 부족과 지역 간 의료 격차 문제를 해결하고 늘어나는 의료수요에 대응하기 위해선 우선 부족한 의사 수를 늘려야 한다는 게 복지부 등의 의대 정원 확대 주장 골자다.
'OECD 보건통계(Health Statistics) 2022'에 따르면 우리나라 활동 의사(한의사 포함) 수는 2020년 기준 인구 1천명당 2.5명으로 멕시코(2.4명)에 이어 밑에서 두번째로 OECD 평균(3.7명)에 한참 못 미친다. 반면 의사(전문의 봉직의)의 평균 임금소득은 연간 19만5천463달러(2억5천만원)로 가장 높아 OECD 평균(10만8천482달러)의 거의 2배다. 복지부 산하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2022년 '전문과목별 의사 인력 수급 추계 연구' 보고서에서 의사 1인당 업무량이 2019년 수준으로 유지된다고 가정할 경우 2030년 1만4천334명, 2035년 2만7천232명의 의사가 부족할 것으로 내다봤다.
반면 의협은 각종 의료 문제의 원인이 의사 수가 아니라 의사 배분에 있기 때문에 의료수가 인상과 제도 개선으로 해결할 수 있다며 맞서고 있다. 의협은 우리나라 1천명당 활동 의사 수가 최근 10년(2010~2020년)간의 증가율로 추정할 때 의대 정원을 유지하더라도 2063년 6.49명으로 늘어나 OECD 평균(6.43명)을 넘어설 것으로 본다.
그러나 의협 의료정책연구소의 2013년 '향후 10년간 의사인력 공급의 적정수준 연구' 보고서에선 2011년 기준 2.0명으로 OECD 평균(3.0명)보다 1명 적었던 우리나라 1천명당 활동 의사 수가, 의대 정원 확대 없이도 이르면 2023년 늦어도 2026년이면 OECD 평균을 따라잡을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이와 비교해 보면 10년이 흐른 지금 OECD 평균과의 격차는 더 벌어졌고 예상 추월 시기는 40년 뒤로 미뤄졌다.
[표] OECD 활동 의사수 및 의대 졸업자 수
['OECD 보건통계(Health Statistics) 2022' 데이터 취합]
의대 증원에 반대하는 의협의 핵심 논리는 의료비 증가로 인한 국민 부담이다. 의사 수를 늘리면 의료비가 늘어난다는 주장인데 여기에는 이론적인 근거가 있다.
의료시장은 서비스 공급자인 의사가 전문 지식과 정보 면에서 우월한 위치에 있는 탓에 수요자인 환자의 의사결정을 대신하게 된다는 점에서 일반시장과 차이가 있다. 의사는 이를 이용해 수익을 늘리거나 유지할 목적으로 불필요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데 이를 '공급자유인수요(Supplier-Induced Demand)'라고 한다. 즉, 의사 수를 늘리면 '과잉진료'를 유발해 환자들의 의료비 부담이 커진다는 것이다.
'공공 및 민간 의료기관에 대한 공급자 유인 수요 및 의료비 분석'(정수진 사공진 2019년) 등 학계 논문에 따르면, 유인수요 효과는 1959년 밀턴 뢰머 UCLA 공중보건대학 교수에 의해 처음 연구가 시작돼 1970년대부터 활발하게 연구가 이뤄졌는데 연구 결과는 엇갈린다. '유인수요 가설'을 지지하는 연구 결과들이 많지만 이와 상반된 '경쟁 가설'을 지지하는 연구 결과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경쟁 가설은 의료 공급이 늘면 경쟁이 강화돼 의료비가 감소한다고 본다.
2004년 논문 '국민의료비 결정요인분석'(최병호 등)에는 "의사수 공급의 증가는 공급자간 경쟁으로 의료서비스 가격을 낮추어 의료비를 감소시키거나, 공급자의 유도수요 증가로 오히려 의료비를 증가시킬 것"이라며 "기존 연구들에서 상반된 결과를 보이고 있음에 따라 하나의 가설을 세우지는 않았다"고 언급돼 있다.
연구 논문들은 의료 환경과 제도에 따라 유인수요 효과가 다르게 나타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의협에서 유인수요 가설을 지지하는 근거로 제시한 '국민의료비 지출구조 및 결정요인에 대한 국제비교'(고민창 등 2007년) 논문은 OECD 국가들의 의료비 지출을 분석해 의사 수 증가가 의료비 지출을 증가시킨다는 결론을 도출했으나, OECD 평균보다 소득이 낮은 국가들에선 의사 수 증가가 경쟁을 유발해 의료비 지출을 감소시킨다는 분석도 함께 제시했다. 우리나라의 1인당 GDP는 연구 당시(2003년 기준) 1만9천317달러로 OECD 30개국 중 밑에서 8번째였고, 2020년 현재도 3만1천598달러로 OECD 평균(3만8천851달러)에는 못 미친다. 이 논문은 또한 의사 수 증대가 곧바로 의료비 증가로 이어진다는 의협 주장과는 달리 유인수요 효과가 장기적으로만 포착된다고 지적했다.
유인수요는 통상 의료인력의 공급이 충분하거나 과잉인 경우, 공공의료기관보다는 민간의료기관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크고, 진료행위마다 가격을 책정하는 행위별수가제나 의사성과급제에 의해 촉발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2015년 논문 '우리나라 의원에서의 공급자 유인수요 실증분석'(여지영·정형선)은 우리나라 시군구(242개) 의원 밀도와 의료이용 관계를 분석한 결과 의원 밀도가 낮은 지역에서만 의사 수 증가에 따른 의료이용 증가 현상이 나타났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는 불필요한 유인수요가 아니라 의료공급이 불충분한 환경에서 의사 수 증가가 필요한 의료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는 '가용성 효과'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이 경우 의사 증원은 부족했던 의료공급을 채워주는 순기능을 한 것이다.
유인수요가 전체 국민의료비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치는 지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 국회예산정책처의 2012년 보고서 '국민의료비 지출수준과 연관요인 분석'(박인화)에선 국민의료비 지출에 미치는 영향은 국민소득(1인당 GDP)이 가장 크고, 65세 이상 노인인구 비중과 의료비 공공지출 비중이 그다음인 것으로 분석했다.
앞서 언급한 '국민의료비 결정요인분석'을 비롯한 다수 논문에서도 소득을 의료비 변동을 설명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변수로 꼽았다. 소득이 늘어날수록 건강에 대한 욕구가 커지고 의료수요가 늘어나면서 의료비 지출이 증가하는 경향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 밖에도 인구구조, 의료기술 발전, 정책변화 등 다양한 요인들이 의료비 지출에 영향을 미친다. 의사 수도 의료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검토한 사례들이 있지만 영향이 그리 크지 않은 보조적 변수로 거론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의 과거 경상의료비 변동 추이나 OECD 국가들의 의료비 현황을 살펴보면 소득(GDP)과의 상관관계는 비교적 뚜렷하다는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의사 수와 의료비의 직접적인 관련성을 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우봉식 의료정책연구원장은 지난달 포럼에서 의대 정원을 350명 늘리면 2040년 요양급여비용 총액이 현상 유지 때보다 7조원 증가하며, 2천명, 3천명 증원하면 각각 36조, 55조원이 더 늘어난다고 밝혔다. 그런데 당시 발제 자료('의대정원 논의, 문제와 대안')를 살펴보면 의료비가 의사 수에 100% 연동되는 것으로 전제하고 의사 1명이 늘어날 때마다 의료비가 기존 의사 1인당 의료비만큼 증가할 것으로 가정해, 의사 수 변동만으로 미래 의료비를 추산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실제로는 의료비에 소득 성장, 인구구조, 의료기술 발전, 정책변화 등 다른 변수들이 미치는 영향이 훨씬 크다는 기존 연구 결과들에 배치된다. 의협 의료정책연구원에 문의했으나 의료비와 의사 수가 완전한 인과관계임을 뒷받침할 근거는 찾을 수 없었다.
게다가 세부 계산 방식도 납득하기 어렵다. 발제 자료에 제시된 데이터를 분석해 보면 미래 의료비(요양 급여비용 총액)를 추계하면서 2010~20년 '①연간 의과 요양급여비용'을 당해 '②의사 수'로 나눠 '③의사 1인당 의과 요양급여비용'를 구하고 10년간의 연평균 증가율(CAGR)을 적용해 ②와 ③의 미래 추계치를 각각 계산한 뒤, 둘을 다시 곱하는 방식으로 ①의 미래 추계치를 산출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산출한 ①의 미래 추계치는 ②와 ③을 거치지 않고 ①에 2010~20년 연평균 증가율(7.8%)만을 적용해 바로 구할 수 있다. 이는 ②의 자리에 의사 수가 아닌 간호사 수나 사망자 수, 심지어 다른 어떤 수치를 대입해도 동일한 결과를 얻게 된다는 의미다. 이는 숫자로만 보면 간호사 수나 사망자 수도 의사 수처럼 의료비를 좌우한다는 말이 돼 전체 추계의 설득력을 떨어뜨린다. 의협 측은 포럼 이후 의사 수 추계방식을 변경하면서 요양급여비용 총액 추계치도 일부 수정했으나 산식의 골격은 동일하다.
정리해 보면 의사 수가 늘어나면 유인수요에 의해 의료비가 증가할 수 있지만, 언제나 통하는 철칙으로 볼 수는 없다. 의료 환경과 제도에 따라선 경쟁 효과로 의료비가 감소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의대 정원 확대가 필요하다고 보는 의료 전문가들은 의사 수가 늘어날 경우 유인수요 효과가 일부 있더라도 경쟁 효과가 커 의료비 부담이 줄어들 것으로 본다. 의사 수를 의료비를 좌우하는 핵심 변수로 보기도 어렵다.
다수의 학계 논문들은 유인수요에 의한 과잉진료가 의대 정원 확대로 의사 수를 늘였을 때 나타나는 부작용이 아니라 과거는 물론 지금도 곳곳에 상존하는 현상임을 보여준다. 의사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환자들에게 해가 되는 과잉진료를 하는 건 약탈적 행위로, 공공연한 관행이나 권리처럼 경제 논리로 포장하거나 스스로 정당화하는 건 옳지 않다. 적극적인 제도 개선과 정책적 규제, 의사 직업윤리 교육 강화로 근절해 나가야 한다.
[표] 우리나라 연도별 경상의료비 및 GDP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 자료 취합]
abullapi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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