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자 배터리’가 생명의 에너지를 흐르게 한다
(9) 생명의 대사 작용 원리
이번 칼럼부터는 예고대로 지구 생태계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 가보자.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이전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무질서의 정도 즉 엔트로피의 증가는 자연 법칙이다, (2) 엔트로피 증가는 죽음을 의미한다, (3) 죽음을 거스르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4) 생명을 구성하는 고분자에는 연결 에너지가 존재한다, (5) 생태계의 생물들은 생존 경쟁을 통해 에너지와 자원을 순환시킨다. 이번 칼럼에서는 생명 에너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아볼 것이다.
우리가 계속 이야기하고 있는 생명은 무엇일까? 이는 의외로 정답을 찾기 어려운 질문이다. 종교, 학문, 시대적 배경 그리고 개인적 관점에 따라 생명은 다양하게 정의된다. 하지만 현대 생물학 지식을 바탕으로 다양한 정의들을 정리하면 대사(metabolism)와 복제(replication)가 생명의 핵심으로 요약된다. 에너지를 이용하는 대사 능력, 그리고 자손을 복제하는 능력, 이 둘 다 가능해야 “생명을 가진” 생물로 분류된다. 이 가운데 복제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루고 지금은 대사를 먼저 알아보자. 대사는 생명이 에너지를 이용하는 포괄적 과정으로, 두 개의 상반된 과정이 포함된다. 하나는 생체 고분자를 분해하는 이화(catabolism), 또 하나는 그 반대로 생체 고분자를 합성하는 동화(anabolism) 과정이다.
이화 과정에서는 고분자가 분해되면서 연결이 품고 있던 에너지가 방출된다. 반대로 동화 과정에서는 이화과정에서 얻은 저분자를 결합시켜 고분자를 합성해낸다. 고분자가 합성된다는 것은 원자들이 규칙적으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질서가 부여된다는 것은 엔트로피 감소를 의미한다. 즉 동화가 바로 죽음을 거스르는 과정이며 에너지가 소모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럼 이 에너지는 어디에서 왔을까? 이화 과정에서 방출된 에너지를 이용한다.
그런데 이화와 동화는 같은 위치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이화에서 방출된 에너지를 동화에 효율적으로 전달해주는 수단이 필요하다. 만약 배터리가 없다면 핸드폰 사용이 얼마나 불편할지 상상해보라. 항상 전원 콘센트에 연결해야 한다면 핸드폰은 쓸모없는 물건이 된다. 무선 통신 기술과 함께 어디서나 에너지를 공급하는 배터리 덕분에 편리한 핸드폰이 탄생한 것이다. 대사에서도 배터리 역할을 하는 아데노신 삼-인산(Adenosine Tri-Phosphate, ATP)라는 분자가 존재한다. 이 생체 배터리가 없었다면 이화와 동화는 같은 위치에서만 일어나야 했을 것이고, 복잡한 생물은 존재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생소한 화학 용어가 거슬리더라도 ATP는 그만큼 중요하니 꼭 기억해두자,
ATP와 ADP의 에너지 순환 시스템
ATP의 구조나 작동 원리를 자세히 알 필요는 없고, 원소 인을 뜻하는 P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만 알아두자. 이 인의 결합에는 많은 에너지가 저장된다. 인이 결합되면 충전, 떨어지면 방전이다. 충전된 상태는 ATP, 떨어진 상태는 ADP가 된다(ATP는 인이 세 개, ADP는 두 개 붙어있다는 뜻이다). 대사의 이화 과정에서 방출된 에너지는 방전된 ADP를 ATP로 충전하는 데 이용된다. 그리고 동화 과정에서는 충전된 ATP를 방전시켜 고분자 연결에 필요한 에너지를 얻게 된다. 생성된 고분자는 더 낮은 엔트로피와 더 많은 결합 에너지를 갖게 된다. 그리고 방전된 ADP는 다시 이화 과정으로 가서 충전된다. 이렇게 ADP와 ATP는 이화와 동화를 오가며 에너지를 전달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그런데 이런 복잡한 과정을 거쳐 고분자를 분해해서 다시 합성하는 것이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분해되는 고분자는 먹이이고 합성하는 고분자는 자기 몸의 구성 성분이라는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새끼 고양이를 집안에서만 기른다고 생각해보자. 사료와 물만 먹이면 쑥쑥 자라서 새끼를 놓는다. 사료 속 고분자들이 분해되어 고양이의 형태로 재합성이 되고 최종적으로 자기 복제까지 일어나는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이 대사를 통해 진행된다.
근육 운동으로 본 에너지의 ‘이화와 동화’
좀 더 실질적인 예를 들어보자. 바디빌딩의 목적은 근육을 만드는 것이다. 단백질 파우더를 섭취하면 이화를 통해 기본 구성 성분인 아미노산으로 분해된다. 그리고 동시에 포장에 표시된 칼로리의 에너지가 얻어진다. 물론 실제 인체에서는 소화 흡수 대사라는 여러 과정이 복잡하게 연결되지만 여기서는 단순화해서 생각하자. 그 다음 근육 세포의 한계까지 열심히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면 해당 근육에서 근섬유 단백질이 더 필요하다는 자극을 받는다. 그럼 근원섬유를 구성하는 마이오신과 액틴 단백질의 동화가 증가하여 근육의 부피가 커지게 된다. 입력과 출력만 따져보면 단백질 가루가 근육으로 변환된 것이다.
인체에서 동화와 이화의 균형은 호르몬에 의해 정교하게 조절이 된다. 만약 근육의 생성에 충분한 칼로리가 음식을 통해 공급되지 않으면 인체의 에너지 저장고인 지방세포가 이화되어 에너지가 공급된다. 살이 빠지는 것이다. 만약 지방도 충분하지 않으면 오히려 근육이 이화되기 시작한다. 바디 빌더가 가장 무서워하는 단어인 ‘근손실’이 일어난다. 반대로 섭취된 칼로리만큼 운동을 하지 않으면 남는 에너지는 지방으로 변환되어 저장된다. 살이 찌는 것이다. 따라서 섭취한 칼로리와 운동량의 균형을 잘 맞춰야 원하는 부위에 근육이 제대로 만들어진다. 이것이 어렵다고 인위적으로 호르몬을 투여해 근육 동화를 비정상적으로 촉진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약물이 바로 운동선수에게 금지 약물인 아나볼릭(동화) 스테로이드다. 이런 행위는 단기적으로는 큰 효과를 얻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정교하게 조절되는 인체의 대사 균형을 교란시켜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킨다.
고양이는 사료를, 사람은 음식을 먹어 동화에 필요한 에너지와 재료를 얻는다. 이를 자연 생태계에서 보면 사료와 음식은 피식자, 고양이와 사람은 포식자이다. 먹고 먹히는 관계가 차례로 연결되면 생태계의 먹이 사슬 혹은 피라미드가 만들어진다. 그런데 동화와 이화가 아무리 정교하게 일어나도 대사의 에너지 효율이 100%가 될 수 없다. 거기에 도망가고 잡기 위해 소모되는 에너지를 생각하면 계속 순환되는 생태계 에너지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따라서 에너지가 지속적으로 추가 투여되지 않으면 생태계는 죽어가게 된다. 즉 생태계에는 최초의 동화를 계속 수행해 에너지를 공급하는 구성원이 필요하다.
식물과 동물의 에너지 공장, 어떻게 다른가
생태계를 가득 채우고 대사의 사슬을 구성하는 생물은 식물과 동물로 크게 분류할 수 있다. 식물과 동물의 차이는 무엇일까? 동물은 움직이는 것, 식물은 움직이지 않는 것이라는 생각이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이보다 더 근본적 차이는 세포 내에서 ATP 충전을 담당하는 에너지 공장의 종류가 다르다는 것에 있다. 식물은 엽록체, 동물은 미토콘드리아가 에너지 공장이다. 미토콘드리아에서는 이화를 통해서만 충전이 일어나지만, 엽록체에서는 빛으로 ATP를 바로 충전할 수 있다.
따라서 생태계에서 최초의 동화작용은 엽록체를 가진 식물이 시작한다. 식물은 빛과 물과 이산화탄소만 있으면 탄수화물 동화를 지속하며 자란다. 단순한 원자들을 탄수화물이라는 고분자로 전환시키기 위해서는 연결 에너지가 필요하다. 식물은 이 에너지를 빛에서 얻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이 광합성이다. 엽록체가 없는 동물은 다른 생물을 잡아먹어야 이화작용을 통해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이때 에너지 이용 효율을 높이는 것이 미토콘드리아다. 이화 없이 에너지 충전이 가능한 식물은 독립 영양 생물, 이화를 통해서만 에너지 충전이 가능한 동물은 종속 영양 생물로 분류한다.
모든 것의 시작점은 태양 에너지
광합성이 지구 생태계에 에너지가 투입되는 유일한 수단이다. 그럼 광합성에 필요한 빛은 어디에서 왔을까? 이글거리는 태양은 1억5천만km 떨어진 지구에 빛 에너지를 전달한다. 태양 깊숙한 중심부에서는 두 개의 수소 원자핵이 하나의 헬륨 원자핵으로 융합되고 있다. 그런데 수소 원자핵 두 개의 질량보다 헬륨 원자핵 한 개의 질량이 더 작다. 에너지는 질량에 빛의 속도를 두 번 곱한 것과 같다는 아이슈타인의 유명한 공식에 따라, 사라진 질량은 에너지로 전환된다. 핵융합 과정에서 사라지는 질량은 아주 미미하지만 빛의 속도라는 엄청나게 큰 상수 값을 한 번도 아닌 두 번이나 곱하기 때문에 어마어마한 에너지로 전환된다. 태양 중심부에서 수소 폭탄이 계속 터지는 상황이라 생각하면 된다.
태양 중심부의 핵융합이 만들어내는 막대한 에너지는 빛으로 방출된다. 관찰 방법에 따라 빛은 파동이 되기도 하고 입자가 되기도 하는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 파동 형태이면 전자기파로, 입자 형태이면 광자로 불린다. 그리고 이 전자기파의 특정 파장은 우리 눈으로 관찰이 가능한 가시광선이다. 태양의 심부에서 방출된 빛이 태양 표면까지 도달하는 데는 십만년이 걸린다. 하지만 표면을 떠난 빛은 우주를 가로질러 8분 뒤면 지구에 도달한다.
지구에 도달한 대부분의 빛 에너지는 복사열로 흡수된다, 복사열은 바닷물과 육지를 데워서 지구 온도를 생명활동에 적절한 수준으로 유지해준다. 구역에 따라 흡수된 복사열의 차이는 비, 바람, 태풍 같은 기상 현상을 일으킨다. 하지만 생명은 태양이 보내주는 빛 에너지를 바로 이용할 수 없다. 생명 에너지로 변환되어야 한다. 마치 태양광 발전 패널을 통해 빛이 전기 에너지로 변환되는 것처럼, 식물은 빛을 생명 에너지로 전환시킨다. 여기서 생명 에너지는 추상적 개념이 아니다. 생명을 구성하는 특정 고분자들의 연결에 존재하는 화학 에너지가 생명 에너지이다.
대부분의 식물이 초록빛을 띠는 이유
지구는 자전을 통해 낮과 밤의 질서를 만든다. 이를 통해 표면의 식물들이 골고루 빛을 쪼이도록 해준다. 대부분의 식물은 붉은색 파장의 빛(광자)을 흡수한다. 그리고 나머지 색은 반사한다. 가시광선에서 붉은색만 흡수되고 반사되면 초록색이 된다. 즉 초록색은 광합성의 증거인 셈이다. 태양이 뜨거워질수록 식물의 초록은 더 깊어진다. 시인들이 봄의 신록을 노래하고 한여름의 깊은 초록에서 강렬한 생명이 느껴지는 것은 지극히 생물학적 반응이기도 하다. 계절이 바뀌면 광합성은 더 이상 동작하지 않는다. 붉은색을 흡수하지 못하는 잎은 초록을 잃어버리고 떨어지게 된다.
식물은 빛 에너지를 이용해 생태계의 가솔린이라 할 수 있는 탄수화물을 합성한다. 이 광합성은 빛을 이용하는 명반응과 이용하지 않는 암반응 두 단계를 거친다. 명반응은 태양전지에서 발생된 전기 에너지를 배터리에 충전시키는 것을 상상하면 된다. 이 과정에서는 빛 에너지를 흡수해 생태계의 배터리인 ATP를 충전시킨다. 암반응에서는 이산화탄소와 물을 재료로 탄수화물을 합성하게 된다. 이산화탄소의 탄소 원자를 분리해 생체 고분자로 재결합시키는 것이다. 이산화탄소와 물이라는 분자보다 탄수화물이라는 고분자가 가진 연결 에너지가 훨씬 크기 때문에 암반응에서는 에너지가 투입되어야 한다. 이때 명반응에서 충전된 ATP를 이용한다. 만들어진 탄수화물은 식물의 관을 따라 순환하며 줄기가, 뿌리가, 열매가 된다. 풀이나 나무가 자라는 속도를 보면 광합성이 얼마나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는지 짐작이 가능하다.
식물이 독립 영양 생물이라면, 스스로 에너지를 생산하는 능력이 없는 모든 동물은 종속 영양 생물이다. 생태계에서 식물은 생산자, 동물은 소비자다. 그리고 동물은 다시 초식, 육식, 혹은 잡식으로 분류된다. 초식 동물의 경우 깨어있는 동안 거의 모든 시간을 풀을 먹고 소화하는 것에 투자해야 한다. 필요한 에너지와 생체자원을 얻기 위해서는 그만큼 많은 양의 식물을 섭취해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육식성 동물은 에너지 효율이 초식동물보다 뛰어나다. 다른 동물을 잡아먹으면 더 많은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만히 움직이지 않는 식물을 먹는 것과 죽기 살기로 도망치는 먹이를 잡아서 먹는 것은 난이도 측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 육식동물에겐 지능이 생존 능력이라는 의미다. 그래서 초식 동물보다 육식 동물의 평균적인 지능이 더 높다.
이런 에너지 흐름에만 식물과 동물의 연결고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 물, 이산화탄소, 빛이 필요한 광합성 과정이 끝나면 산소가 부산물로 배출된다. 동물은 호흡을 통해 산소를 받아들여 세포의 미토콘드리아에서 많은 ATP가 충전되도록 한다. 그리고 부산물로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동물이 배출한 이산화탄소는 식물의 기공을 통해 흡수되어 광합성의 재료로 쓰인다. 이런 이산화탄소와 산소의 순환 고리도 생태계에 존재하는 동식물 공생의 큰 축이다.
식물은 지구 생태계의 주춧돌
지구 생태계의 수많은 생명은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결국 태양 빛에 의존해서 살아가는 셈이다. 만약 화산 폭발이나 운석 충돌로 지구 대기가 먼지로 가득차서 식물에 빛이 차단된다면 생명 에너지 생산이 중단된다. 생태계에 추가적인 에너지의 공급이 없으면 생명을 유지하는 결합에너지도 부족해진다. 엔트로피는 증가하게 되고 생태계는 서서히 죽어가게 된다. 대멸종이 일어나는 것이다. 식물이 살지 못하면 동물도 살 수 없다.
요즘 기후 문제가 점점 커지고 있다. 기후 변화로 해수면이 상승하고 폭염, 홍수, 가뭄 같은 기상 이변이 점점 자주 발생한다. 하지만 더 무서운 것은 식물의 서식 환경 변화다. 우리나라도 점차 아열대 기후로 변하고 있다. 동물은 기온이 변하면 더 시원하거나 따듯한 곳으로 움직이면 된다. 하지만 움직일 수 없는 식물은 자라는 곳의 기후(온도와 강우량)가 변하면 죽어버린다. 현재 인류의 주식인 곡물은 소위 곡창 지대로 불리는 특정 지역에서 효율적으로 자라는 품종으로 개량되어 획일화되어 있다. 따라서 곡창 지대의 기후가 조금만 변해도 식량 생산은 타격을 받는다. 인류 문명이 아무리 발달해도 사람은 종속 영양 생물이다. 따라서 기후 변화 최악의 시나리오는 식량 위기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식량자급률이 낮은 경우는 더 치명적인 시나리오이다. 밥 한 공기에 10만원, 라면 한 봉지에 20만원인 세상은 얼마나 끔찍할까. 고기를 대신 먹으면 된다고 생각하지 말기 바란다. 가축이 먹는 사료들도 대량 생산된 곡물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생태계의 모든 생명은 식물에 의존하고 있다.
이번 칼럼에서는 태양과 식물에 의존하는 생명 에너지를 대사를 중심으로 이야기하였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어떻게 지구 생태계의 다양한 생명들이 품고 있는 고분자와 에너지가 서로 호환되고 순환이 되는 것일까? 그 이유는 현재 생태계의 모든 생물이 하나의 세포에서 기원했기 때문이다. 다음 칼럼에서는 LUCA(Last Universal Common Ancestor)라 불리는 생명의 공통 조상 세포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주철현/울산의대 미생물학 교수·의학교육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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