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한미 금리역전에도 공포는 없다… 원화환율 안정이 최대 공신[Deep Read]

2023. 7. 18.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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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세돈의 Deep Read - 한·미 금리차와 금융시장
전대미문의 한미 금리역전 계속되지만… 경이로운 원·달러 환율 유지로 금융시장 불안 잠재워
외국인 국내투자 유입, 내국인 해외투자 절제, 대외 차입선 확보 등 정책적 노력 지속돼야

지난 13일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3.5%로 동결하면서 1.75%포인트의 한·미 금리역전 상황이 두 달 이상 지속 중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추가로 금리를 인상하면 한·미 금리 차는 올해 안에 2%포인트 이상으로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사상 초유의 한·미 금리역전 속에서도 한국의 금융시장은 놀라울 정도로 안정된 원화 환율 상황에 힘입어 튼튼히 버티고 있다. 당국이 앞으로도 원·달러 환율의 안정을 유지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적 노력을 계속해나간다면 미증유의 한·미 금리역전에서 비롯되는 막연한 공포와 우려를 극복할 수 있다.

◇불가피한 美 금리 인상

과거에도 2000년 5∼8월의 1.5%포인트, 2006년 5∼6월의 1%포인트, 2019년 7월의 1%포인트 차 등 한·미 금리역전이 있었지만 1.75%포인트 차는 전에 없던 새로운 경험이라 불안감을 안겨주는 게 사실이다. 사상 최대의 금리역전이 발생한 이유는, Fed가 최근 꾸준히 기준금리를 올리는 동안 한국은행은 반년 가까이 기준금리를 동결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기조가 유지되면 금리역전은 조만간 2%포인트 이상으로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Fed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지난달 14일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지난해 3월 16일 이후 열 번 연속 인상하다가 처음으로 인상을 멈춘 것인데, 이유는 ‘물가가 어느 정도 잡혔기 때문’이 아니라 ‘물가 및 고용 통계를 좀 더 살펴보고 결정하자’였다. 아직 물가 안정에 확신이 서지 않았다는 의미다.

위 <그림>에서 보듯이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나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수는 지난해 6월 정점을 찍은 후 5월까지 확실하고 꾸준하게 3∼4%대로 떨어졌다. 하지만 2% 물가목표와는 아직 상당한 거리가 있다. 게다가 Fed가 정책목표로 관리하는 근원 PCE 물가지수는 지난해 12월 이후 6개월 동안 4.6∼4.7%대에서 거의 떨어지지 않았다. 원자재 가격이 빠르게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경기·고용시장 활황세가 계속됐기 때문이다.

올 1분기와 같은 2%대 성장세와 고용시장 상황이 하반기에도 지속할 경우 근원 PCE 물가지수 하락속도가 더딜 수밖에 없다. 따라서 7월에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하는 것은 물론, 근원 PCE 물가지수가 4.0% 이하로 떨어지지 않을 경우 Fed는 9월 이후에도 기준금리를 올리는 게 불가피하다.

◇금리 올리기 어려운 한국

미국 FOMC 구성원들은 근원 PCE 물가지수 목표 2%를 달성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올릴 태세가 확실하지만, 한국은행의 물가목표, 즉 CPI 기준 2% 달성 의지는 그만큼 투철하지 않다. 제롬 파월 Fed 의장이나 다른 위원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반드시 물가목표 2%를 달성할 것이라고 확고한 의지를 천명하지만, 한국은행 총재나 금통위원들은 그런 다짐을 절박하게 드러내지는 않는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올해 중 물가를 공공연하게 3%대 중반으로 예측하거나 전망하기도 한다. 한국은행 내에서 기준금리를 시급히 올려야 한다는 분위기를 읽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건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천문학적인 가계·민간부문 부채 때문에 경제 주체들의 이자 부담이 과중해 기준금리를 더 올리기 어렵다는 것이다. 2000조 원에 가까운 가계부채와 그와 거의 맞먹는 기업부채를 감안할 때 0.25%포인트 금리 인상만으로도 가계·기업의 부담은 수십조 원 가까이 추가로 늘어난다. 이 때문에 미국이 한창 기준금리를 올리던 올 1월부터 한국은행은 6개월째 기준금리를 동결할 수밖에 없었다. 가계부채와 경기를 고려하면 앞으로도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리기는 어려워 보인다.

둘째, 상반기 경기가 침체 국면을 벗어나지 못하면서 거시경제 차원에서 기준금리를 올릴 상황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올 한 해 제조업 생산은 마이너스 성장이 거의 확실하다. 호조를 보이던 서비스업 생산도 3∼5월을 지나면서 증가율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상황이다. 수출증가율도 마이너스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추세가 하반기에도 지속하면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상하기는 더 힘들어질 게 분명하다. 1.75%포인트 혹은 그 이상의 한·미 금리역전이 당분간 계속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금융시장 안정조건

오는 26일 FOMC가 예상대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한다면 한·미 금리역전은 2%포인트가 된다. 이런 상태에도 시장이 계속 안정을 유지하려면 무엇보다도 원·달러 환율의 안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다음 요건을 갖춰야 한다.

첫째, 외국인의 국내 주식·채권투자 자금이 한 달에 대략 50억 달러 이상 유입돼줘야 한다. 지난 5월 채권에서 113억3000만 달러가 들어오고 주식에서 21억8000만 달러가 유입돼 모두 135억 달러 외자가 국내로 유입됐다. 이런 흐름이라면 2%포인트 금리역전이 되더라도 별문제 없다. 원화 환율 하락(원화 강세)에 따른 환차익과 주가 상승이 2%포인트의 금리차 손실을 만회하고도 충분히 남기 때문에 급격한 자본 유출은 발생하지 않는다.

둘째, 내국인의 해외투자가 절제돼야 한다. 2021년과 2022년 같이 매년 660억 달러 이상의 해외 직접투자가 지속된다면 원·달러 환율이 안정되기 힘들고, 이로 인해 외국인의 국내 증권투자도 기대하기 어렵다. 다행히 올 들어 해외 직접투자는 지난해 664억 달러에 비해 크게 줄어 300억 달러 내외가 될 전망이다. 연간 약 250억 달러나 되는 내국인의 해외 증권투자도 원·달러 환율 안정을 위해 절제될 필요가 있다.

셋째, 대출과 무역신용 같은 기타투자 부문에서의 대외 차입선을 확보해야 한다. 2021년과 2022년엔 각각 263억2000만 달러와 184억7000만 달러의 대외 차입이 들어오면서 외환시장 안정에 크게 기여했다. 넷째, 가능한 한 모든 국가 중앙은행들과 통화스와프 협정을 맺어야 한다. 국제 외환시장에서 달러가 추세적으로 약세를 지속하면 한국으로선 더욱 유리해진다.

◇불안에서 벗어나기

한·미 금리역전이 확대되면서 이에 따른 외화 유출 압력이 증대됐었지만, 원·달러 환율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바람에 급격한 시장 불안은 없었다. 환율이 안정적일 수 있었던 이유는 올 들어 상품수지와 경상수지 적자 폭이 꾸준히 줄어들었고, 내국인의 해외 증권투자는 축소되고 외국인의 국내 증권투자는 큰 폭으로 늘어나면서 대규모의 증권투자 수지 흑자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앞서 열거한 금융시장의 안정조건들 가운데 2∼3가지만 잘 갖춰도 한·미 간 미증유의 금리역전 상황을 이겨낼 수 있다.

숙명여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 용어설명

‘Fed’, 즉 연방준비제도는 미국의 중앙은행 시스템. 국제결제은행과 더불어 세계 금융경제의 주춧돌. ‘FOMC’, 즉 연방공개시장위원회는 Fed 산하 위원회로 미국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기관.

‘CPI’는 소비자물가지수, ‘근원 CPI’는 가격 변동성이 큰 식품과 에너지를 뺀 소비자물가지수임. ‘PCE’는 개인소비지출을 의미하며, 미 Fed는 ‘근원 PCE 물가지수’를 CPI보다 더 중시함.

■ 세줄 요약

불가피한 美 금리 인상 :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동결로 한·미 금리역전 상황이 계속되고 있음. 미국은 2% 물가목표 달성 때까지 추가 금리인상 가능성이 커, 한·미 금리 차는 올해 2%포인트까지 벌어질 것으로 예상.

금융시장 안정조건 : 시장이 동요하지 않으려면 원·달러 환율이 안정돼야. 이를 위해서는 외국인의 국내투자 자금 유입, 내국인의 해외투자 절제, 대외 차입선 확보, 주요국 중앙은행들과의 통화스와프 협정 등이 필요.

불안에서 벗어나기 : 한·미 금리역전 속에서도 금융시장 불안은 없었음. 원·달러 환율이 놀라울 정도로 안정됐기 때문. 환율 안정을 위한 당국의 정책적 노력이 계속된다면 금리역전에 따른 막연한 공포 이겨낼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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