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태펀드 돈은 안 받습니다만"…이 VC가 사는 법 [긱스]
국내 벤처펀드는 정책자금인 모태펀드를 중심으로 움직입니다. 대개 모태펀드가 30~40%를 출자하면, 벤처캐피털(VC)이 나머지 자금을 연기금 은행 증권사 기업 등 민간에서 조달해 운영하는 식입니다. 올해 들어 모태펀드 예산이 30% 삭감되면서 고금리 여파로 어려운 VC 업계가 더욱 힘들어졌습니다. 그런데 모태펀드 돈을 받지 않고 벤처펀드를 운용하는 투자사가 있습니다. 2019년 설립한 메인스트리트인베스트먼트입니다. 이 VC가 모태펀드 돈을 받지 않고 살아남는 방법을 한경 긱스(Geeks)가 살펴봤습니다.
설립 4주년을 맞은 메인스트리트인베스트먼트(이하 메인스트리트)는 벤처캐피털(VC) 업계 '이단아' 같은 투자사다. 모태펀드 자금을 받지 않는다. 이름이 알려진 유명 스타트업은 투자 검토도 하지 않는다. 한 펀드에 20~30개 기업 포트폴리오를 담아 운용하는 다른 벤처펀드와 달리 특정 기업에 투자하는 프로젝트 펀드로만 운영한다. 투자한 기업 하나라도 망가지면 그야말로 '끝장'이다.
17일 서울 강남구 봉은사역 인근에 있는 메인스트리트를 찾았다. 빌딩 숲 뒤 주택가의 단독 건물을 쓰고 있었다. 회사 소개에 나선 박순우 대표는 "직원들이 매일 관리한다"며 가장 먼저 화장실부터 보여줬다. 한눈에 봐도 깨끗했다. 탕비실의 커피와 간식도 일렬로 말끔히 정리돼 있었다. 디테일을 강조하는 박 대표의 스타일이 묻어났다.
메인스트리트의 전체 직원은 아침 7시 30분이면 출근한다. 증권사에서 오랜 경험을 쌓은 박주환 상무도 마케팅 총괄 담당 임원으로 합류했다. 이준성·박동혁 심사역은 인턴부터 시작해 굵직한 투자를 직접 주도할 만큼 역량을 키우고 있다.
고대 경영학과 92학번 동기
메인스트리트를 공동설립한 박 대표와 고병우 부대표는 고대 경영학과 92학번 동기 사이다. 오리엔테이션에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친구가 됐다.
박 대표는 대학 졸업 후 1998년부터 2002년까지 아서디리틀(Arthur D. Little)과 ADL파트너에서 각각 경영 컨설턴트 및 벤처 투자자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2002년 한빛소프트에 입사하며 게임업계 발을 들인 그는 해외 마케팅 상무를 맡으며 최연소 임원에 올랐다.
박 대표는 2007년에는 중국으로 건너가 나스닥에 상장한 중국 게임사 더나인의 부사장으로 온라인게임 사업부문 대표를 맡았다. 알리바바 게임 담당 총괄이사를 맡은 그는 2014년 LB인베스트먼트 중국법인 대표를 맡으며 벤처투자 업계로 돌아왔다. 중국 데이팅 앱 '탄탄'이 대표적인 그의 투자사다. 13년 넘게 중국에서 게임 업계에 벤처투자 업계에서 활약한 그는 2019년 한국으로 돌아와 메인스트리트를 설립했다.
고 부대표는 안진회계법인에서 회계사로 활동했다. 이후 옐로모바일 자회사 옐로오투오 이사로 있으면서 약 250개 스타트업의 투자 검토를 직접 진행하면서 그야말로 '회사 전문가'로 활약했다. 부드러운 성격의 고 부대표에겐 창업가들이 먼저 고민을 털어놓기도 한다.
선배 창업가 같은 투자자
메인스트리트는 포트폴리오사 대표들과 일주일에도 몇차례 소통한다. 카카오톡으로 연락하는 것은 물론 조찬모임도 자주 한다. 강남 인근 24시간 영업하는 영동설렁탕이나 금수복국에서 아침을 먹으며 창업가의 고민을 들어준다.
게임회사에서 오래 일한 박 대표는 투자자보단 사업가 성격이 강하다. 알리바바의 미국 증시 상장 과정에서 게임 총괄 이사로서 제품디자인, 앱 등 세세한 부분까지 담당했던 박 대표의 조언은 창업자들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
디자인의 디테일까지 신경 쓰는 박 대표는 회사 로고도 직접 고안했다. 각종 보고서의 폰트도 MS 스타일로 정했을 정도다. 검정 네모 안의 MS를 넣은 로고는 박 대표가 좋아하는 투자사인 미국 유니온스퀘어벤처스와 중국계 힐하우스캐피털의 박스 형태 로고를 따라 만들었다. '주요한 길' 위에 있겠다는 의미다.
투자기업 하나라도 망하면 '끝장'
대부분의 VC는 모태펀드로부터 출자금을 받고, 나머지를 민간에서 조달해 블라인드 벤처펀드를 만든다. 한 펀드에 10~20개 기업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게 보통이다. 펀드 운용상 편하고 수익률을 방어하기도 유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메인스트리트는 모태펀드 출자사업엔 큰 관심이 없다. 박 대표는 "정책자금을 받지 않아 해외투자 등 자율적인 투자 운용을 하기가 수월하다"고 설명했다.
메인스트리트는 투자 대상을 정해놓고 출자자를 모집하는 프로젝트 펀드로만 운영하고 있다. 사모펀드(PE) 형태로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VC 역할을 하는 셈이다.
2019년 7월 설립 이후 4년간 29개 회사에 투자하면서 31개의 펀드를 조성했다. 대부분 특정 회사에 투자하는 기관 전용 사모펀드로, 투자기업이 망하면 펀드도 끝장이다. 박 대표가 "매 번의 딜이 벼랑 끝에 있다"고 말할 정도다.
박 대표는 LB인베스트먼트 중국법인 대표를 맡아 유망 스타트업을 발굴했지만, 출자자(LP)로부터 자금을 조달해본 경험은 없었다. 메인스트리트 설립 이후 인연을 맺은 캐피털, 증권사 등이 LP로 나섰다. 지금까지 10개 펀드에 출자한 고객사도 있다. 회사를 매각한 개인 자산가들도 뭉칫돈을 맡기고 있다. 100% 자회사 액셀러레이터인 '메인스트리트벤처스'를 통해 조성한 개인 투자조합 펀드도 있다.
VC가 가치투자?
박 대표는 벤처캐피털리스트로서 워런 버핏의 가치 투자 철학에 깊이 공감한다. 그는 "상장사 투자든 바이아웃 펀드든 엔젤 투자든 안정적으로 성장하는 주식을 싸게 사야 하는 본질은 같다"며 "과거의 데이터가 많으냐 미래를 상상하느냐의 차이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2021~2022년 벤처 호황기에 높은 밸류에이션으로 투자받은 창업가 가운데 후회하는 경우도 많을 것"이라며 "상장 이후에도 기업이 계속 발전해야 하는 게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때문에 높은 밸류에이션을 고집하는 창업자에겐 이 정도의 주가수익비율(PER)을 벗어나지 않는 게 좋겠다고 솔직하게 말한다. "스타트업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어떤 투자자도 눈물을 흘리지 않으면 좋겠다"는 게 박 대표의 말이다.
중국 최대 VC인 힐하우스캐피털을 설립한 장 레이 회장은 박 대표의 롤 모델이다. 장 레이가 그의 저서 '가치'에서 밝힌 투자의 기준은 실질 가치를 창출하고 있는지 이 가치가 사회 전체의 번영에 이로운지 여부다. 스타트업 투자자로는 이례적으로 초장기, 집중투자를 하고 있다.
박 대표는 "기업이 어느 단계에 있든 주식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투자할 수 있어야 한다"며 "정책펀드 자금을 받고 있지 않아 다양한 운용 방식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천지인 투자란
천(天)·지(地)·인(人)이 맞아야 투자한다는 게 박 대표의 지론이자, 메인스트리트의 투자 기준이다.
천은 성장하고 있는 시장, 메가 트렌드에 속하나 결여된 것이 많은 시장을 의미한다. 지는 1등 할 수 있는 회사의 전략과 실행, 비즈니스 모델(BM), 기술과 기업문화를 말한다. 박 대표는 "BM은 단순하고 시원시원해야 한다"며 "대체제가 있는 사업인지도 중요한 포인트"라고 설명했다.
인은 회사를 이끌어 갈 수 있는 대표의 성품과 능력, 공동창업자와 핵심 인력의 완결성을 뜻한다. 박 대표는 "창업가를 볼 때 잘 나갈 때 부화뇌동하지 않고 다음 목표를 설정할 수 있는 그릇의 크기인지를 살핀다"며 "잘 안됐을 때 도망가지 않고 책임지는 자세인지 확인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실패를 경험해본 창업가들을 선호한다. 실패 과정에서 주변 사람을 잃지 않았다면 말이다. 라이브러리컴퍼니를 비롯해 모노랩스, 팀블라인드, 도어랩스, 심플리케어바이오, 노노워리, 포라타 등 투자한 기업의 창업가들은 다양한 실패를 경험했지만, 그 실패 원인을 반복하지 않고 극복한 경우다.
투자 구조가 결과 만들어
박 대표는 "늙어 죽을 때까지 투자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모든 성과관리를 지속할 수 있는 구조로 만들었다"며 "투자 구조가 결과를 만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회사가 직원들에게 주는 성과급과 배당·유보금 비중은 50대 50이다. 모든 딜이 끝나면 전 구성원이 토론을 거쳐 성과기여도를 정한다. 딜소싱, 협상 분석, 펀드 영업처 발굴, 펀드 세일즈, 펀드 관리 등에 따라 가중치를 부여했다.
4년 운용 성과도 곧 나온다. 내년 초 라이브 엔터테인먼트 기업 라이브러리컴퍼니가 포트폴리오가 가운데 첫 상장 테이프를 끊는다. 와치박스도 내년 하반기 상장을 목표로 한다.
허란 기자 wh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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