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예산 일수록 예술성 발휘 쉬워… 영화, 자본 - 작가성 균형 잡아야”

이정우 기자 2023. 7. 18.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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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구치 류스케, 미야케 쇼, 후카다 고지.

20여 년 전 봉준호, 박찬욱, 이창동 등이 일제히 등장하며 한국 영화의 황금기를 알렸듯 2010년대부터 해외에서 인정받는 감독들이 앞다퉈 등장한 옆 나라 일본 영화계의 기세가 심상치 않다.

한국이 제작비가 많이 드는 상업 영화에서 강점을 발휘하는 반면, 상대적으로 일본은 저예산 인디 영화로 유의미한 비평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다.

17일 서울 종로구 한 극장에서 만난 후카다 감독은 "영화 제작 단계에서부터 각종 지원금을 받는 한국이 부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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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영화 ‘러브 라이프’ 내일 개봉… 후카다 고지 감독
지원금 많은 한국 영화 부럽지만
그럴수록 창작에 제약 불가피
관계의 본질 들여다보는 신작
아내가 데려온 아이의 죽음…
부부의 슬픔 공유는 가능할까

하마구치 류스케, 미야케 쇼, 후카다 고지. 20여 년 전 봉준호, 박찬욱, 이창동 등이 일제히 등장하며 한국 영화의 황금기를 알렸듯 2010년대부터 해외에서 인정받는 감독들이 앞다퉈 등장한 옆 나라 일본 영화계의 기세가 심상치 않다. 선배 격인 고레에다 히로카즈와 구로사와 기요시까지 합치면 극심한 침체였던 일본 영화계가 중흥을 맞이하고 있다는 평가다.

한국이 해외 직배급이나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등을 통해 단번에 글로벌로 뻗어 나간다면, 일본은 작가주의로 무장해 비평적인 면에서 영토를 넓혀간다. 한국이 제작비가 많이 드는 상업 영화에서 강점을 발휘하는 반면, 상대적으로 일본은 저예산 인디 영화로 유의미한 비평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다.

17일 서울 종로구 한 극장에서 만난 후카다 감독은 “영화 제작 단계에서부터 각종 지원금을 받는 한국이 부럽다”고 말했다. 하지만 극장으로 향하는 발길이 뜸해지며 최악의 부진을 겪는 한국 영화는 체질 개선이 절실한 상황. 저자본 예술영화로 세계 무대를 누비는 일본의 저력이 궁금했다. 이에 대해 후카다 감독은 “‘옆집 잔디밭이 더 푸르게 보인다’는 일본 속담처럼 우리 입장에선 한국이 대단해 보이는데, 반대로 한국은 우리가 부러운 측면이 있는 것 같다”고 운을 뗐다. 그는 “영화에 돈이 많이 들어갈수록 오락성을 놓치지 않아야 하고, 그만큼 창작엔 제약을 받을 수 있다. 반대로 저예산일수록 작가 개인의 예술성을 발휘하기 쉬운 측면은 있다”며 “자본과 작가성이란 밸런스를 잡아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19일 개봉하는 후카다 감독의 신작 ‘러브 라이프’(사진)는 예기치 못한 사건과 타자의 등장으로 균열되는 가족을 통해 관계의 본질을 들여다본다. 다에코(기무라 후미노)와 지로(나가야마 겐토) 부부는 다에코가 전남편과 낳은 자식 게이타와 함께 산다.

둘의 결혼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시아버지의 생신날, 게이타가 욕조에 빠져 죽고, 장례식장에 전남편 박신지(스나다 아톰)가 찾아오며, 잔잔했던 일상은 크게 흔들린다. 지난해 베니스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 초청작이다. 감독의 전작 ‘하모니움’(2016)은 칸 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심사위원상을 받았다.

후카다 감독은 “데려온 아이의 죽음에 대해 부부가 슬픔을 똑같이 공유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에서 이야기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다에코는 자식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는 지로와 새로운 손자를 안겨주길 넌지시 바라는 시어머니 앞에서 평정심을 유지하지만, 장례식장에서 자신의 뺨을 때리고 화내는 전남편을 보고선 함께 절규한다.

전남편 박은 청각장애를 가진 한국인이란 설정을 갖고 있다. 실제 청각장애인인 스나다는 한국어 수화를 특별히 익혔다. 다에코와 박의 수어 대화를 현 남편인 지로는 알아들을 수 없어 묘한 긴장감이 조성된다. 하마구치 류스케 ‘드라이브 마이 카’나 미야케 쇼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에서도 언어적 소통의 불가능성이 주요 소재로 쓰인다. 후카다 감독은 “전적으로 우연의 일치”라며 “우리 셋 모두 언어적 대화만으로 영화를 만들어 나가는 데 한계를 느껴서 수어를 활용한 것 아닐까”라고 말했다.

영화에선 물리적 거리감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다에코는 지로와 같이 살다가 건너편 동, 다른 동네 순으로 점점 멀어진다. 이는 박을 한국인으로 설정한 이유이기도 했다. 후카다 감독은 “다에코와 박이 가급적 멀리 바다 건너 외국으로 갈 필요가 있었다”고 말했다. 다에코가 멀리 간 만큼, 집으로 돌아오는 결말에 힘이 생긴다. 다만 영화 속 한국의 이질적 풍경은 국내 관객들에겐 다소 불편할 수 있다. 아울러 인물들의 비약적 행동이 다소 작위적으로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이정우 기자 krust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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