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더하고 나누어봐도 삶이란 그냥 본전… 허겁지겁 살 필요있나[주철환의 음악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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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이름이 성호관 율곡관 다산관 연암관, 이런 식이다.
내가 강의하던 건물은 다산관이었는데 학생들에게 이런 말을 한 기억이 난다.
그러나 삶의 기승전(起承轉)을 지나 결(結)에 이르면 이런 말을 한다.
'아무리 더하고 나누어 봐도 삶이란 그냥 본전일세 삶이란 그저 허무일세.' 허무를 조장한다기보다 그렇게 헐레벌떡 허둥지둥 허겁지겁 살지 말라는 조언으로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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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이름이 성호관 율곡관 다산관 연암관, 이런 식이다. 교수도 학생도 별생각 없이 강의실을 드나든다. 챗GPT가 활약하는 시대에 조선시대 학자들 명패가 웬 말이냐. 짧은 순간에 스쳐 간 느낌을 정리하면 이렇다. 인기에 따라 그때그때 개명하기보다는 시간이 지나도 우리가 왜 사는지, 어떻게 사는 게 좋은지 깨우침을 준 분들을 기억하는 게 낫다. 돌이켜보자. 이세돌을 이겼던 알파고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사는지 잘 모른다. 그의 근황을 굳이 확인할 여유도 없다. 인공지능은 우리의 미래를 걱정해주지 않는다. 그들이 먼저 말을 거는 법도 없다. 그냥 똑똑하고 신기한 기계일 따름이다.
앞서 거명한 학자들은 각자 집을 남겼다. 어디에 몇 평 몇 층짜리 이런 게 아니라 생각을 담은 집이다. 시나 문장을 모아 엮은 책을 문집이라고 한다. 톨스토이의 집은 문집, 윤동주의 집은 시집이다. 명인이 쓰던 가재도구는 박물관으로 가지만 그들이 쓴 시와 글은 후대의 영혼에도 영향을 끼친다. 내가 강의하던 건물은 다산관이었는데 학생들에게 이런 말을 한 기억이 난다. 억울하게 유배지에 간 다산 정약용은 떼를 쓰거나 악을 쓰거나 돈(뇌물)을 쓰거나 손(친분)을 쓰지 않고 글을 썼다. 그러니 잘 먹고 잘사는 것도 필요하지만 잘 쓰고 잘 남기는 것 또한 중요한 일이다.
돌고 돌아서 노래마을까지 왔다. 이 근처에 왕실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동안 가요계에 황태자는 수없이 많았다. 그들의 근황도 알파고랑 비슷하다. 박수와 갈채는 시한부. 그래서 그들에게도 오래 머무를 집이 필요하다. 1집 가수와 2집 가수는 조금 차이가 난다. 그러니 집을 몇 채 소유한 가수들은 음악동네 주민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상당하다. 데뷔 56주년을 맞은 가수 나훈아(사진)가 또(!) 새 앨범을 냈다(7월 10일). 몇 집 앨범인지는 본인도 정확히 모르지 않을까. 한때 그도 트로트의 황태자라 불린 적이 있는데 오랫동안 그를 사모하는 팬들은 언제부턴가 나훈아를 가황이라 부른다.
“신곡 여섯 이야기는 모두 잠 못 드는 하얀 새벽에 지었습니다.” 그래서 노래 제목이 아니라 앨범(집) 이름이 ‘새벽’이다. 첫 페이지는 ‘삶’으로 시작한다. ‘삶이란 인생이라는 마당에서 한세월 놀다가 가는 거지’ ‘삶이란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한바탕 울다 웃다 가는 거지’. 그 마당이 좁다고 여긴 적도 있고 그 무대가 춥다고 느낀 때도 있었으리라. 그러나 삶의 기승전(起承轉)을 지나 결(結)에 이르면 이런 말을 한다. ‘아무리 더하고 나누어 봐도 삶이란 그냥 본전일세 삶이란 그저 허무일세.’ 허무를 조장한다기보다 그렇게 헐레벌떡 허둥지둥 허겁지겁 살지 말라는 조언으로 들린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새벽이 온다. 밤은 어둠이 아니라 빛을 잉태하는 시간이다. ‘아무도 찾지 않는 바람 부는 언덕에 이름 모를 잡초야.’ 나훈아가 ‘잡초’(1982)를 불러주기 백 년 전에 세상을 떠난 시인 에머슨(1803∼1882)은 그의 집(문집) 뜰에 핀 잡초를 ‘아직 그 장점(가치)이 발견 안 된 식물’로 규정했다. 저세상 가면서 ‘나는 본전 뽑았어’라고 말하면 그게 성공한 인생일까. 노래를 다 듣고 슬그머니 이런 생각에 이르렀다. 성공은 그 자리(남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지만 행복은 내 자리를 찾아가는 것이다.
작가·프로듀서· 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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