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특한 조형미 갖춘 건물 설계… ‘공간을 통한 즐거움’ 선사하다 [스페이스도슨트 방승환의 건축진담]
7년 만에 조국 돌아온 김중업 복귀작
포개지고 증식하며 형태 만들어진 ‘원’
판매시설 전형 깨기위해 내놓은 대안
전면 경사로, 심혈 기울인 ‘3차원 간판’
단순히 상품을 파는 쇼핑센터가 아닌
대화 나눌수 있는 동네 중심되길 바라
워터 파크를 방불케 하는 수공간이나 세계적인 예술가가 디자인한 놀이터, 공원이나 도서관을 품은 쇼핑몰을 볼 때마다 생각나는 건물이 있다. 1981년 말 ‘대형쇼핑센터’를 표방하며 개점한 ‘태양의 집(現 썬프라자)’이다. 당시 신문 기사는 흥아상사가 영등포구 대림동에 건평 3200평 규모로 대형쇼핑센터를 짓고 있는데, 건축가 김중업이 독특한 조형미를 갖춘 건물로 설계했다고 소개하고 있다(매일경제 1981년 10월10일). 태양의 집을 개발한 흥아상사는 벽돌과 기와를 생산하는 회사로 박치현 대표는 사업을 영위하는 과정에서 부동산을 사고팔아 부를 쌓았다. 김중업은 1960년대 말 용산 후암동에 박치현의 집을 설계하기도 했다.
태양의 집을 설계한 김중업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주변 길과의 접촉 길이가 가능한 한 길어질 수 있도록 건물의 평면을 설계했다. 그리고 행인들의 관심을 끌 수 있도록 건물의 입면을 모두 다르게 디자인했다. 무엇보다 건물 전면에 1층에서 시작해 각 층을 지나 옥상까지 연결되는 경사로를 설치했다. 앞서 언급한 신문 광고에 실린 조감도를 보면 태양의 집 북쪽에 있는 별관 옥상도 연결할 계획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 계획은 실현되지 못했다.
건물의 이름이 ‘태양의 집’이 된 연유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건물 여기저기에 있는 동그란 창과 타일 그리고 동그랗게 잘려 나간 벽을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김중업에게 ‘원’은 일종의 화두였다. 그의 작업에서 원은 두 가지 방식으로 사용됐다. 첫 번째는 하나의 원을 사용해 기하학적으로 강한 구심점을 이루는 방식이고 두 번째는 원이 포개지고 증식하면서 형태가 만들어지는 방식이다. 전자의 대표적인 사례는 육군박물관이고 후자는 서산부인과(現 아리움 사옥)이다. 태양의 집은 후자에 속한다.
실제 태양의 집은 7년 만에 조국으로 돌아온 김중업의 복귀작이었다. 1970년대 초 그는 서울시의 도시계획과 건축 정책 그리고 군사정권을 비판하다 프랑스로 강제 추방당했다. 그사이 그와 다른 행보를 걸은 또 다른 근대건축가 김수근은 승승장구하며 국가의 주요 건축물 설계를 도맡았다. 물론 해외에서는 프랑스 공인건축가로 인정받고 하버드 대학교 교수도 됐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잊힌 건축가였다. 그런 그에게 태양의 집은 자신의 해외 체류 기간이 공백의 시간이 아닌 도약의 시간이었음을, 그 시간 동안 자신이 축적한 창의력을 우리 사회에 증명하고픈 작업이었다.
더군다나 태양의 집이 지어지기 전 그 자리에 있었던 신도림 시장의 신축과 증축 설계도 프랑스로 떠나기 전 자신이 했었다. 그렇기 때문에 태양의 집은 과거의 김중업이 설계한 신도림 시장과 비교해서도 완전히 다른 새로움이어야 했다.
현재 태양의 집을 보고 새로운 유형의 쇼핑센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옥상 광장을 포함해 중첩된 원으로 만들어진 여러 공간들도 현재 들어가 볼 수 없다. 그때그때 개조되면서 원래 모습이 많이 바뀌기도 했다. 건물 전면의 경사로와 입구에 들어섰을 때 보이는 Y자형의 계단 정도가 공간의 독특함을 느끼게 할 뿐이다.
태양의 집을 블로그에 올리자 어릴 적 맡았던 달콤한 빵 냄새와 고급스러운 향수가 떠오른 사람들이 댓글을 달았다. 그들은 놀이기구처럼 탔던 에스컬레이터를 기억했고 마음껏 뛰놀던 경사로와 관련된 추억을 공통적으로 이야기했다. 그리고 쇠락한 태양의 집이 새로운 역할을 얻어 자신들이 체감했던 ‘공간을 통한 즐거움’을 그다음으로 이어가기를 희망했다. 태양의 집에 다시 태양이 떠오르기를 기다려본다.
도시건축작가
방승환 도시건축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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