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무용수의 변신… ‘창작 안무가’로 날다

유민우 기자 2023. 7. 1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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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정상급 현역 발레단원들, 새 작품 잇단 공개
‘지젤’같은 고전 레퍼토리 넘어
한국 정서 담은 발레 신작 무대로
공연 횟수 늘려 관객 끌어오고
우수 인재들 국내 유입 기회로
창작 발레 흥행 어려워 부담도
“틀 깨고 다른시각으로 접근을”
선호현 국립발레단 무용수의 안무작 ‘All’s good(얼씨구!)’.한국 전통의 처용무, 사물놀이, 사자춤을 클래식 고유의 아름다운 선율에 맞춰 표현했다. 국립발레단 제공

최근 창작 발레 작업이 활발해지면서 강미선 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가 창작 발레 ‘미리내길’로 무용계의 아카데미상 ‘브누아 드 라 당스’를 수상하고, 박슬기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가 안무한 ‘콰르텟 오브 더 솔’은 올해 일본에, 국립발레단 송정빈 안무가의 ‘해적’은 지난해 유럽 진출에 성공했다.

국제 무용 콩쿠르에서 수상하고 세계 주요 발레단에서 활약하는 등 한국인 무용수들의 위상은 세계 최정상급으로 평가받지만 한국 고유의 레퍼토리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하지만 이제 K-창작 발레도 세계로 나아가며 약점을 보완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이러한 국내 창작 발레의 세계 진출과 더불어 주목할 트렌드가 있다. 수석무용수부터 군무에 이르는 현역 무용수들이 안무가로 변신 중이라는 점이다. 기존엔 동양인 최초로 파리오페라발레단에 입단한 김용걸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워싱턴발레단 수석무용수 출신의 조주현 한예종 교수처럼 무용수로 은퇴한 후에 안무가로 활동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최근엔 현역 무용수가 안무가로 창작 발레를 선보이고 있다.

안무를 지도 중인 이하연(위쪽 사진) 국립발레단 무용수. 정은영(아래쪽) 수석무용수의 안무작 ‘어둠’. 국립발레단 제공

국립발레단은 강수진 단장의 지휘 아래 2015년부터 매년 안무가 육성 프로젝트 ‘KNB 무브먼트 시리즈’를 통해 국립발레단 단원들이 직접 안무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지난 1∼2일 열린 ‘KNB 무브먼트 시리즈 8’에선 수석무용수, 솔리스트, 군무 등 무용수를 포함한 7명이 자신의 작품을 공개했다. 외로움의 벼랑 끝에 선 사람의 어둠 속에 숨겨진 역설적인 찬란함을 표현한 정은영 수석무용수의 ‘어둠’, 한국의 아름다움을 발레로 표현한 선호현 드미솔리스트의 ‘All’s good(얼씨구!)’, 살아가며 자연스레 찾아오는 행복의 순간들을 표현한 이하연 코르드발레의 ‘Etude du bonheur’ 등 매력적인 7편의 작품이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유니버설발레단은 권세현 드미솔리스트가 개인 활동으로 창작 발레 ‘Shapes’의 안무를 맡고 있으며, 광주시립발레단은 지난 4월 노윤정, 하승수 단원이 안무가로서 작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현역 무용수의 안무가 도전은 직접적으로 국내 발레 발전으로 이어지고 있다. 우선 ‘백조의 호수’ ‘지젤’ 등 고전 레퍼토리 위주로 공연하던 때에 비해 공연 횟수가 늘어나고 작품이 다양해지고 있다. 고유한 자체 레퍼토리 부족은 절대적인 공연 횟수 부족으로 우수한 인재를 해외에 빼앗긴다는 문제점도 있다. 공연의 다양화는 우수 인재들이 국내 발레단으로 눈을 돌릴 계기가 될 수 있다. 길이가 상대적으로 짧은 다양한 작품을 한자리에서 보는 것도 가능해 다양한 관객층을 끌어올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무용수가 안무가로서의 새로운 재능을 발견하고 안무가에 대한 이해가 높아진다는 장점도 빼놓을 수 없다. 장광열 무용평론가는 “현역 무용수가 안무가로 참여함으로써 창작 발레의 발전에 기여할 뿐 아니라 무용수로 다른 안무가의 작품에 참여할 때도 공연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 발레단이 그간 창작 등 새로운 시도를 적극적으로 하지 못했던 이유는 객석 점유율에 대한 부담감이 컸기 때문이다. 발레가 이전에 비해 대중화되며 ‘지젤’ ‘백조의 호수’ ‘호두까기 인형’ 등 고전은 전 회차가 매진되며 ‘흥행 보증수표’ 역할을 하지만 창작 공연은 ‘어렵다’는 관객들의 선입견 때문에 흥행이 여전히 어렵다. 일례로 한국인의 대표 정서인 ‘정(情)’을 담은 유니버설발레단 작품 ‘코리아 이모션’은 70% 이상의 손실을 감수해야 했다. 강미선이 올해 브누아 드 라 당스를 수상한 창작 발레 ‘미리내길’ 역시 코리아 이모션에 포함된 작품이다. 김용걸 교수는 “외국은 극장 가는 일 자체가 자연스러운 문화다 보니 관객들이 창작 발레에 대한 거부감도 없다. 국내에도 그런 문화가 안착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발레 선진국들은 이미 오래전에 고전 레퍼토리만 공연하는 것에서 벗어나 다양한 새로운 형식을 시도하고 있다. 김 교수는 “(2000년대 초) 내가 소속된 시절부터 이미 파리 오페라 발레단은 고전 계승은 물론이고 유명 안무가를 초빙해 신작 초연을 적극적으로 시도했다. 정형적인 틀을 깨부수고 다른 시각으로 발레에 접근해야 발전할 수 있다”며 “특히 현역 무용수들이 안무가 활동을 하는 것은 안무가로서의 재능을 몰랐던 무용수들이 재능을 찾고 은퇴 후 방향을 모색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유민우 기자 yoom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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