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년간 경험 못한 일이 벌어졌다"…점점 가난해지는 유럽인

신정은 2023. 7. 1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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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인, 점점 더 가난해 진다…임금 안올라 구매력 '뚝'
미국 실질임금 6% 오르는데 독일은 3% 떨어져
고령화에 생산성 낮아지고 高인플레 지속
수출 부진 타격…세수 부담은 더 커질 듯
이 기사는 국내 최대 해외 투자정보 플랫폼 한경 글로벌마켓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과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이 지난해 3월 25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공동 기자회견 후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유럽인들이 가난해지기 시작했다. 물가는 뛰고 임금은 오르지 않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지갑을 열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과거 세계를 지배했던 유럽이 수십 년 동안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경제 현실에 직면하면서 빛을 잃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 임금 6% 오르는데 독일은 3% 떨어져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유럽이 올해 초 원만한 경기침체에 빠졌고, 경제적·정치적·군사적으로 쇠퇴하기 시작했다고 1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유럽은 오랜 기간 인구 고령화로 생산성이 하락했는데 코로나19 대유행, 우크라이나 전쟁 등을 겪으면서 물가가 상승하고 임금은 하락하는 고충을 겪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유럽 각국의 인플레이션을 반영한 실질 임금은 하락하고 있다. 유럽 강국인 독일의 평균 실질 임금은 2019년 이후 약 3% 하락했고, 이탈리아와 스페인은 각각 3.5% 낮아졌다. 그리스의 평균 임금은 6%나 추락했다. 같은 기간 미국의 실질임금이 약 6% 늘어난 것과 대조적이다.

사진=연합뉴스


반면 유로존 20개국의 물가상승률을 반영한 민간 소비 지출은 2019년 말 이후 약 1% 감소했다. 물가 상승 대비 임금이 오르지 않으면서 유럽인들이 지갑을 닫고 있다는 얘기다.

WSJ은 "프랑스인들이 푸아그라와 레드와인을 덜 마시고, 스페인에선 올리브 오일을 아껴 쓰고 있다"며 "핀란드에서는 풍력 발전소를 가동할 수 있는 바람이 부는 날 사우나를 이용하라는 얘기가 나오고, 독일 전역에선 육류와 유제품 소비가 30년 만에 최저수준으로 떨어졌다"고 표현했다.

소매점과 식당에서 팔지 못한 재고를 판매하는 투굿투고(Too Good To Go)는 유럽 전역의 이용자가 현재 7600만명에 달한다. 이는 2020년 말보다 3배 늘어난 수치다.

2020~2022년 각국의 평균 실질임금 변화 추이. 사진=WSJ, OECD

그동안 정부의 대응이 이런 현상을 더 악화시켰다는 지적이다. 유럽 정부는 일자리를 보존하기 위해 고용주에게 보조금을 지급했는데 이것이 소비자들에게 전달되지 못했다. 미국은 주로 시민들에게 정부 지원 혜택을 줘 소비를 촉진했다.

세계 경제 부진도 발목을 잡는다. 유로존 GDP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50%에 수준이다. 내수 비중이 높은 미국은 전체 GDP에서 수출 비중이 10%밖에 되지 않는다고 WSJ은 전했다. 유럽이 미국에 비해 세계 경제에 대한 취약성이 노출되어있다는 얘기다.

유럽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국방비를 확충해야 하는 상황이라 소비자들의 세수 부담은 커질 전망이다. 유럽에서 세금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0~45% 수준으로 미국의 27%보다 훨씬 높다.

고소득층도 소비 줄여…독일인 고기 8% 덜 먹는다

이런 고통은 저소득층뿐 아니라 중산층도 느끼고 있다.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 중 하나인 벨기에 수도 브뤼셀에선 저렴한 식자재를 구하기 위한 줄이 길게 늘어섰다. 유통기한이 임박한 식품을 반값에 판매하는 해피아워마켓의 한 관계자는 "어떤 고객들은 우리 상품 덕에 일주일에 2~3번 고기를 먹는다고 했다"고 전했다.

고급 식자재에 대한 지출도 눈에 띄게 감소했다. 독일의 2022년 1인당 육류 소비량은 52kg으로 전년보다 약 8% 줄었다. 이는 1989년 집계가 시작한 이후 최저치다. 동물 복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높아지며 채식주의자가 늘어난 영향도 있지만, 육류가격이 몇 달 만에 30% 상승하면서 소비가 위축된 것으로 풀이된다. 독일 연방 농업 정보센터에 따르면 독일은 들은 소고기와 송아지 고기 등 비싼 육류 대신 닭고기 등 가금류를 구매하기 시작했다.

프랑크푸르트 인근 유기농 식품 공급업체인 토마스 울프는 물가상승 영향으로 작년 매출이 30% 줄었다. 이 회사는 코로나19 초기 고용했던 직원 33명을 모두 해고했다.

명품뿐 아니라 소비재 지출도 마찬가지다. 루이뷔통모에헤네시(LVMH) 등 명품 기업은 유럽 내 매출 비중이 줄고 있다. 글로벌 생활용품 회사인 유니레버의 그레임 핏케틀리 최고재무책임자(CIO)는 "미국 소비자가 유럽보다 더 빠르게 회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행지에서 씀씀이도 줄고 있다. 지중해 섬 마요르카 상공회의소에 따르면 미국인들인 이곳에서 하루 평균 260유로를 호텔에 지출하는 반면 유럽인들은 180유로를 썼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유로존의 경제는 지난 15년 동안 달러 환산 기준 약 6% 성장했다. 반면 미국은 82%나 성장했다. 달러 강세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도 큰 차이가 난다.

브뤼셀에 본부를 둔 독립 싱크탱크인 유럽정치경제센터는 최근 보고서에서 현재 추세가 지속된다면 2035년까지 미국과 유럽연합(EU)의 1인당 GDP 격차가 오늘날의 일본과 에콰도르 사이의 격차만큼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신정은 기자 newyear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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