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간첩법 때문에 중국서 사진 ‘찰칵’하면 ‘철컹’이라고?
[주간경향] 중국에서 7월 1일부터 시행된 개정 반간첩법에 대한 관심이 높다. 미국 국무부는 중국의 개정 반간첩법 시행을 앞두고 자국민들에게 “자의적인 법 집행과 구금의 위험이 있다”며 중국 여행 자제를 권고했다. 그러면서 “중국 당국은 광범위한 문서와 데이터, 통계 등을 국가기밀로 간주하고 스파이 혐의로 외국인을 구금·기소할 수 있는 광범위한 재량권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며 “미국 시민들이 중국에서 공개적으로 이용 가능한 자료에 접근한 혐의로 구금되거나 기소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주중 한국대사관도 중국 반간첩법 개정안 시행에 대비해 대국민 안전 공지를 했다. 주중 대사관은 공지에서 “우리나라와의 제도·개념 등의 차이로 중국에 체류하고 있거나 방문 예정인 국민에게 예상치 못한 피해가 생길 수 있다”며 중국 국가안보 및 이익과 관련된 지도나 사진, 통계자료 등을 인터넷으로 검색하거나 스마트폰·노트북 등 전자기기에 저장하는 행위에 유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또 군사시설이나 주요 국가기관, 방위산업체 등 보안통제구역 인접 지역에서 사진을 촬영하거나 시위현장을 방문하고 시위대를 촬영하는 행위, 중국인에 대한 포교나 야외 선교 등 중국 정부에서 금지하고 있는 종교 활동에도 주의할 것을 권고했다.
이런 경고가 잇따르자 일각에서는 여행이나 업무차 중국을 방문했다 사진 한번 잘못 찍었다는 이유로 간첩으로 몰려 낭패를 보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하지만 개정된 반간첩법이 외국인들의 중국 내 일상생활이나 여행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여행객에 대한 안전 공지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한 주의 환기 차원의 안내로 볼 수 있다. 다만 간첩 행위에 대한 규정과 처벌 범위가 넓어진 만큼 중국에서 활동하는 외자 기업 등은 법의 내용을 검토하고 사전에 리스크를 줄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중국 반간첩법 뭐가 달라졌나
중국 반간첩법이 새로운 법률은 아니다. 2014년 처음 시행된 반간첩법의 일부 조항을 개정해 지난 7월 1일자로 시행됐다. 개정된 반간첩법에서는 간첩 행위에 대한 정의를 확대했다. 기존에 국가기밀과 정보에 한정됐던 간첩 행위의 범위가 ‘국가안전 및 이익에 관련된 문서, 데이터, 자료, 물품에 대한 절도, 정탐, 매수, 불법제공 행위’로까지 넓어졌다. 또 국가기관이나 핵심 정보 인프라 시설 등에 대한 사이버 공격이나 침입, 교란, 통제, 파괴 등의 행위도 간첩 행위의 범위에 새롭게 포함됐다. 개정 반간첩법은 직접 간첩 조직에 참여하거나 간첩 조직 및 그 대리인의 지시를 받는 경우에 더해 간첩 조직이나 그 대리인에 협력하는 것도 간첩 행위로 간주한다. 간첩 조직이나 그 대리인이 중국 국민이나 조직 또는 기타 조건을 활용해 시행하는 제3국을 겨냥한 간첩 활동이 중국의 국가안보를 위협한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도 반간첩법의 적용이 가능하다.
개정 반간첩법에서는 국가안보기관의 조사 권한을 확대하고 처벌도 강화했다. 기존 간첩법에는 국가안전기구가 간첩 행위 방지를 위해 수사와 구류, 체포 등의 직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했는데, 이번에 법 개정을 통해 전자 데이터 열람과 수집, 소환, 자산정보 조회 등의 행정 권한을 추가했다. 여기에 더해 간첩 혐의가 있는 경우 임의로 휴대 물품 등을 검사할 수 있고, 강제 소환을 통해 일정 시간 내 심문도 할 수 있도록 했다. 처벌 조항도 기존에 형사 범죄에 해당하지 않는 간첩 행위에 대해서는 경고 또는 15일 이하 행정 구류만 할 수 있었던 데 반해 개정법에서는 벌금이나 면담, 면허 정지·말소 등의 행정처벌도 부과할 수 있게 바꾸었다. 개정법에는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활동을 할 가능성이 있는 외국인에 대해 입국을 불허하고, 반간첩법을 위반한 외국인은 추방 후 10년 동안 입국을 금지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외자 기업은 리스크 점검 필요
중국의 반간첩법 개정은 기존에 시행되던 법체계를 보완하고 시대 변화에 따른 새로운 간첩 행위 유형에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 등과의 정보 전쟁이 치열해지면서 국가안보와 관련한 정보 유출을 막고 통제를 강화하려는 측면도 있다. 우려와 달리 일반적인 중국 내 여행이나 일상생활, 정상적인 기업활동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다만 간첩 행위가 의심된다는 이유로 재산 정보조회나 압수, 동결, 추방 및 입국 금지 등의 임의적인 조치가 취해질 수 있고, 특정 산업에서 정보 통제가 강화될 수 있는 만큼 이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무엇보다 법 조항이 모호해 자의적인 법 집행이 이뤄질 수 있다는 점이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중국 최대 로펌 가운데 한 곳인 킹앤우드맬리슨스는 개정 반간첩법을 분석한 보고서에서 “국가안보 및 이익에 관한 정의가 모호해 외국인의 중국 내 입국이나 외자 기업의 중국 내 경영 활동에 예측불가능한 리스크가 있다는 주장이 나오지만, 중국의 국가안보를 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외자 기업이나 외국인이 중국 내에서 반드시 준수해야 할 기본 원칙”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반간첩법에 관련 조항이 추가되기 전에도 이미 여러 법률과 행정 법규에서 핵심 데이터의 범위와 수집, 저장, 사용, 가공 등에 대한 명확한 규정을 갖고 있다”며 “외국인이나 외자 기업이 기존 법률 규정을 준수한다면 실질적으로 반간첩법을 위반할 위험성은 크지 않다”고 분석했다.
킹앤우드맬리슨스는 다만 외자 기업이 중국에서 컨설팅 업무를 하는 경우, 특히 국방, 군수, 금융, 화폐, 첨단기술 등 핵심 분야에서는 비밀 정보 보호 등 데이터 안전에 보다 신경을 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일반 외자 기업도 데이터 처리에 신중을 기하고 국가안전 예방 의무 이행과 관련 기관·부서의 업무 수행에 적극 협조할 필요가 있다고 부연했다. 국내 법무법인 광장의 중국그룹도 “반간첩법 개정으로 간첩 행위에 대한 정의가 확대되고 중점업체관리제도와 국가안전 건설프로젝트 인허가제도 등이 도입됐으며, 국가안전기관의 권한과 처벌 기준이 강화됐다”며 “중국 내에서 상업 활동을 하는 기업이나 실무자들은 반간첩법 집행 추이를 주목하면서 중국 내에서 접촉, 수집하는 자료들이 국가안보나 이익에 관련된 자료인지 여부를 확인하고 기업 특성에 맞는 내부 교육을 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베이징 | 이종섭 특파원 noma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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