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인가요? '10만명 중 1명' 걸린 희귀병 피해서…
[편집자주] 매일 근육이 서서히 굳어갔습니다. 수십 년을 기다려 마침내 치료제가 나왔습니다. '하늘의 선물' 같았지요. 그러나 이내 빼앗겼습니다. 왜일까요. 그 이야길 하나씩 들려드리려 합니다.
전 국민 5000만명 중 미토콘드리아 질환 환자는 500명 정도. 나머지 4999만9500명은 걸리지 않았다. '난 그 병을 피해서 다행이다'라 생각하는 이가 많을 거다. 그러나 같은 문장을 다시 쓰면 이렇다. '500명이 걸렸기에 4999만9500명이 걸리지 않았다.'
그러니 병에 안 걸린 이들도 '10만분의 1 정도 책임'은 져야한다고. 이 말을 한 건 이영목 강남세브란스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다. 그는 인터뷰에서 이 얘길했다. 그에 담긴 속뜻은 '안타까움'이다. 그 정도 관심도 희귀난치병 환자에게 없단 거였다.
이 교수가 요즘 하는 고민도 다 이와 맞닿아 있었다.
"잘 치료할 수 있게, 함께 환자 가족을 끌고 가는 게 요즘 진짜 고민이에요."
가족이 환자에게 정성을 다하도록 해야하는데, 여의치 않을 때가 있단 거였다. 그러려면 사회·경제적 지원이 필요하기에. 그런데 지원 받으려면 관심이 있어야 한단 거였다.
그러나 이게 힘들다고 했다. 희귀난치성 질환 권위자인 그와 나눈 모든 이야기엔, '관심 부족'이 원인으로 깔려 있었다.
그러니 치료제가 나왔단 건, 기적 같은 일이다. 2016년, 척수성근위축증(SMA) 치료제 '스핀라자'가 나왔을 때도 그랬다. 이 교수도 SMA를 치료하던 터라 그 소식을 듣고 그리 기대했다. 환자를 더 살릴 수 있을 거라고. 의사 역시 같은 맘이었다.
"아휴, 엄청…엄청 진짜 기뻤죠. 치료법이 있는 질환을 진료하는 거랑 그렇지 않은 병을 진료하는 건 완전 다르니까요."
그러나 바람처럼 다 되진 않았다. 고가의 치료제. 한정된 건강보험 재정. 그래서 치료받지 못하고 건강보험 급여에서 탈락하는 이들이 생겼다. 이 교수가 진료하는 환자 중에도 있었다.
"어떤 환자분들은 주삿값 1억원을 모으시겠대요. 아이에게 한 번만 더 맞히고 싶다고요. 그러면서 우시더라고요. 얼마나 절박하고 안타까우시면 그런 말씀을 하실까 싶었지요."
그중에서도 뇌전증처럼 상대적으로 흔한 질환이 아닌, 치료법도 마땅찮은 희귀질환 '미토콘드리아'를 주로 보고 있다. 국내 환자가 500명 정도다. 답을 내기 힘든 길을 늘 걸어왔다.
SMA 치료제가 비싸서, 건강보험으로 지원해줄 땐 '효과'를 따졌다. 그래서 이 교수는 치료 효과를 증명해줄 연구를 했다. 지난 1월엔 '치료제를 발병 초기에 투여할수록, 치료가 지속될수록 실질적 운동 기능 개선 효과가 있다'는 내용을 밝혀내 발표했다. 연구한 이유를 물었다.
"약 효과 측면에서 의미가 없어서 못 쓰는 것과, 지원이 안 돼서 못 쓰는 건 다르잖아요."
치료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데 탈락하는 일이 없도록 신경 써야 한단 거였다. 그러려면 섬세한 평가 기준이 필요하다. 그러나 희귀질환 치료법이 그동안 없었기 때문에, 명확한 평가 기준 역시 부재했다고.
이 교수는 "기능을 0에서 100까지라고 봤을 때, 환자들이 0에서 5나 10까지 기능한다고 하면, 일반 환자들의 잣대를 여기 들이대면 너무 러프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제는 약이 있기 때문에 희귀질환 환자들에게 적합한, 더 정교한 기준과 새로운 측정 방법이 나와야 한다"고 했다. 그걸 만드는 것도 '환자를 보는 의사 몫'이라고 덧붙였다.
희귀의약품 급여율은 독일이 90.8%, 영국 70.6%, 프랑스가 68.7%다. 10명 중 최소 7~9명이 혜택을 보고 있는 거다. 반면 우리나라는 절반 정도(51.1%)에 불과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건 '희귀질환 치료'를 위해 별도로 재정을 마련하는 거란다.
필요한 이유는 이런 거다. 예컨대, SMA 치료제 '스핀라자'가 나왔을 땐 여론이 "당연히 치료해줘야지" 그러다가도 비용을 얘기하면 주춤하는 것. 내가 낸 보험금, 세금이란 생각. 내가 받을 혜택을 다른 쪽에 쓰는 걸로 생각해서다.
이 교수는 "건강보험 재정과 별도로 희귀질환 기금 같은 걸 만들면, 이런 이슈에서 좀 더 자유로울 수 있다"고 조언했다. 뉴질랜드는 정부 재원으로 희귀질환 치료제를 지원하고 있고, 벨기에도 특별연대펀드를 만들어 지원한단다.
국내에서도 관련법이 발의됐었다.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21년 8월에, 복권수익금 일부를 희귀난치성 질환자 치료제를 위해 쓸 수 있도록 개정안을 냈었다. 하지만 통과되지 못했다. 당시 이를 검토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제도 도입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 측면이 있다", "기존 수혜 기관의 반발 우려가 있다" 등 의견을 냈다.
선진국은 가능한데 우린 안 되는 이유를 물었다. 보험료 차이 때문이냐고 하니 아니라고 했다. 똑같은 재원이 있다고 해도, 어떤 가치에 무게를 두느냐에 대한 인식 차이 때문이란 거다.
이 교수는 "저희도 대학 병원이지만 돈 되는 것만 하지 않는다. 가치 있는 걸 한다"며 "병원에서 기획 실장을 하고 있는데, 희귀질환이나 어려운 과업에 대해 실현될 수 있도록 힘쓰고 있다"고 했다. 다양성의 가치를 존중하고 초점을 맞춘다는 거다.
결국엔 '관심 부재' 때문에, 문제 해결이 쉽지 않다고 했다. 그는 인터뷰를 할 때마다 얘기하는 게 있다고 했다.
"희귀병 확률이 10만 분의 1이면, 한 명 걸리고 9만9999명은 안 걸리는 거잖아요. '내가 아니고 쟤가 걸려서 다행이다' 이게 아니고, 최소한 10만분의 1만큼은 관심과 책임을 가져야지, 그런 생각이 있어야 해요. 그래야 환자나 가족들도 응원이 되고요. 혼자 하면 빨리 끝낼 수 있죠. 그런데 함께하면 끝까지 함께할 수 있잖아요. 가장 중요한 건 관심이에요."
아직 치료제가 없는 병이 많은 희귀질환. 환자와 가족들이 버티는 건, 언젠간 새로운 치료제가 나올 거란 '희망'. 그걸 기다리는 데 필요한 건 연대와 관심. 그러나 지금처럼 10만명 몫을 혼자 감당하는 상황에선 힘들다고 했다. 그래서 몇 번이고 강조해 당부하는 거였다. 끝으로 환자들이 포기하지 않도록 당부도 잊지 않았다.
"신약이 계속 만들어지고 있어요. 옛날보다 개발 속도가 훨씬 빨라졌고요. 옛날엔 막연한 기다림이었다면, 지금은 그래도 보일만한 기다림입니다. 의지를 갖고 유지해야 해요. 그래야 치료법 혜택도 보고 희망이 현실이 되니까요. 최선을 다해 가야합니다."
남형도 기자 hum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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