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지배한 '페·나·조 시대' 마감...지금은 'MZ세대' 알카라스 시대
알카라스는 17일(한국시간) 영국 런던의 올잉글랜드클럽에서 끝난 윔블던 남자 단식 결승에서 노바크 조코비치(36·세르비아)를 세트스코어 3-2(1-6 7-6<8-6> 6-1 3-6 6-4)로 제압하고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윔블던에서 ‘페·나·조’ 이외 선수가 우승을 차지한 것은 2013년 앤디 머리(영국) 이후 10년 만이다. 로저 페더러(8회), 조코비치(7회), 라파엘 나달(2회)의 윔블던 우승 횟수를 모두 합치면 총 17회나 된다. 3명이 이룬 메이저대회 우승은 무려 65회(페더러 20회, 나달 22회, 조코비치 23회)에 이른다.
‘페·나·조’ 시대는 이미 저물고 있다. ‘황제’ 페더러(스위스)는 지난해 은퇴를 선언했다. ‘흙신’ 라파엘 나달(스페인)도 내년 은퇴를 예고하고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는 단계다.
반면 조코비치는 여전히 건재하다. 올해 열린 호주오픈과 프랑스오픈에서 잇따라 우승하면서 남자 테니스 메이저대회 최다 우승 기록(23회)을 갈아치웠다.
36살에도 최상의 기량을 보여온 조코비치도 떠오르는 신예 알카라스의 벽을 넘지 못했다. 그것도 자신이 강한 모습을 보였던 윔블던에서 패했다는 것은 더 의미가 남다르다.
알카라스는 같은 스페인 출신 선배인 나달처럼 원래 클레이코트에서 강하고 잔디코트에선 약점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번 윔블던에서 그런 편견을 싹 날려버렸다. 코트를 가리지 않는 진정한 강자임을 증명했다.
1세트는 조코비치가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다. 2세트 이후부터는 전세가 알카라스 쪽으로 기울었다. 알카라스는 체력과 패기로 조코비치를 괴롭혔다. 영원히 늙지 않을 것처럼 보였던 조코비치도 후반으로 갈수록 힘겨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심지어 여러 차례 몸을 가누지 못하고 코트에 나뒹굴기까지 했다.
알카라스는 이번 대회를 통해 새로운 ‘테니스 황제’가 될 것임을 예고했다. 2018년 프로로 데뷔한 알카라스는 2021년 18살 때크로아티아 우마그 대회에서 남자프로테니스(ATP) 투어 첫 우승을 차지하며 주목받았다.
지난해에는 마스터스 1000 대회인 마이애미오픈, 마드리드오픈에서 잇따라 우승했다. 대회마다 모두 최연소 우승 기록을 갈아치웠다. 일찌감치 ‘페·나·조’의 뒤를 이을 차세대 선수 중 에이스로 자리매김했다. 지난해 연말에는 역대 가장 어린 나이(19년 5개월)로 세계랭킹 1위에 오르는 새 역사를 쓰기도 했다.
알카라스는 올해 중반까지 부상으로 고전했다. 첫 메이저 대회인 호주오픈에는 불참했고 두 번째 메이저 대회인 프랑스오픈에서는 준결승에서 조코비치에게 1-3으로 패했다. 당시 알카라스는 3세트 초반부터 근육 경련이 일어나는 바람에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당했다.
이번 대회에선 조코비치에게 완벽하게 설욕하면서 프랑스오픈에서 아쉬움을 씻었다. 겨우 20살의 어린 선수지만 멘털이 단단했다. 1세트를 완패한 뒤 와르르 무너질 수 있었다. 2세트부터 마음을 추스르고 반격하는 저력을 발휘했다. 실력뿐만 아니라 강한 정신력까지 겸비한 점은 알카라스가 더 높이 평가받는 이유다.
수염은 길렀지만 얼굴에는 여전히 여드름 자국이 선명한 알카라스는 “노바크(조코비치)를 이기고 윔블던에서 우승하는 것은 테니스를 시작했을 때부터 꿈꿔온 일”이라면서 “지금은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스무살이고 이런 상황을 많이 느껴보지 못했기 때문에 아마 한 5년 뒤에는 인생 최고의 순간이 바뀔 수 있을 것도 같다”고 너스레를 떨면서 “지금은 이 순간을 즐기겠다”고 말했다.
다만 ‘페·나·조’ 시대를 마감하고 새 시대를 열었다는 평가에 대해선 고개를 저었다. 알카라스는 “솔직히 테니스의 새 세대가 아닌 나를 위해 승리했다”고 선을 그었다.
조코비치는 알카라스를 ‘약점이 없는 완벽한 선수’라고 극찬했다. 그는 “알카라스는 나달의 놀라운 수비와 투쟁심, ‘스페인의 황소 정신’을 가지고 있다”며 “또한 그는 나와 비슷한 슬라이딩 백핸드를 구사하고 내 강점인 수비, 적응력 등이 좋다”고 말했다.
더불어 “페더러와 나달은 각자 강점과 약점이 분명한 선수였다”면서 “그런데 솔직히 알카라스 같은 선수와는 경기해 본 적이 없다. 그는 매우 완벽한 선수”라고 말했다.
알카라스의 다음 목표는 오는 8월 28일 개막하는 올해 마지막 메이저 대회 US오픈이다. 알카라스는 지난해 US오픈에서 생애 첫 메이저 대회 우승을 이룬 바 있다. 이번 윔블던 우승으로 당분간 남자 테니스 세계랭킹 1위 자리도 알카라스가 장기 집권할 가능성이 커졌다.
이석무 (sports@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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