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폐기물로 이제 항공유 만든다…SAF 시장 성장에 韓 규제가 발목

김현 특파원 2023. 7. 18.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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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펄크럼, 연간 50만톤 생활폐기물로 합성원유 26만배럴 생산
SK, SAF 시장 대응 위해 1000억원 투자…최태원 ESG 경영 결실
에릭 프라이어 펄크럼 최고경영자가 지난 13일 미 네바다주 리노시 시에라공장에서 취재진들과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 2023.07.13.

(리노 네바다주=뉴스1) 김현 특파원 = 도박과 관광, 이혼으로 유명한 미 네바다주(州) '리노' 시내에서 버스를 타고 20여분을 달리자 락우드(Lockwood) 지역 쓰레기 매립장이 나왔다. 각종 쓰레기를 버리기 위한 차량들이 매립장으로 들어가기 위해 줄을 잇는 모습이 보고 있자니 매립장 인근에 있는 한 공장시설에 버스가 멈춰 섰다.

뉴스1이 지난 13일 찾은 이곳은 문명의 골칫덩이인 '쓰레기'를 인류의 미래를 이끌 '미래 에너지' 자원으로 만들고 있는 '펄크럼 바이오에너지(Fulcrum BioEnergy·이하 펄크럼)'의 공급원료 처리시설(FPF)이었다.

펄크럼은 생활폐기물을 가스화해 합성원유(syncrude)를 만드는 기술을 갖고 있는 회사다. 특히 FPF는 원료로 공급된 폐기물 중 가스화할 수 없는 알루미늄·플라스틱·철 등 불연성 폐기물을 골라낸 뒤 3㎝ 이하의 조각으로 분쇄해 합성원유를 만드는 펄크럼 시에라공장으로 보내는 역할을 하는 이른바 '폐기물 선별·처리시설'이었다.

FPF는 생각했던 것보다 내부 상태가 깨끗했고 냄새도 견딜 만한 수준이었다. 공장에서 근무하는 16명의 직원들은 소음 차단을 위한 귀마개 외엔 마스크 등 별다른 장비 없이 근무를 하고 있었다.

각종 음식물과 플라스틱, 목재와 비닐 등이 뒤섞인 원료 쓰레기들은 컨베이어벨트를 타고 자동화된 거대한 선별·처리 장치들을 이동하면서 미래 에너지로 거듭날 준비를 마쳤다. 이 FPF에선 당초 쓰레기 매립장에 묻힐 연간 17만5000톤의 생활폐기물을 미래 에너지의 자원으로 변모시킨다고 한다.

FPF에서 버스로 10분 정도 거리에 위치한 시에라공장은 그야말로 석유 정제시설이나 다름없어 보였다. 시에라공장 저장 창고엔 FPF에서 보내온 쓰레기들이 가득 쌓여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냄새는 전혀 나지 않았다.

완전히 건조돼 색종이 조각같은 쓰레기들은 가스화 공정에 투입되면 약 30분 후 '합성원유'로 바뀌게 된다. 이날 저장 창고에 쌓여 있던 쓰레기들은 공장에서 사용하는 3일치 분량으로 10만 갤런(약 37만8500ℓ)의 합성원유를 만들 수 있다고 펄크럼측은 설명했다. 에릭 프라이어 펄크럼 최고경영자(CEO)는 "이 시설이 정말 자랑스럽다"며 "여기에서 보고 있는 것은 완전히 새로운 산업의 시작이다. 지금은 에너지 산업과 전 세계를 위한 분수령의 순간"이라고 말했다.

미 네바다주 리노시 인근 쓰레기 매립장에 위치한 펄크럼의 공급원료 처리시설(FPF) 내부. 공장 직원들이 중장비를 통해 기계에 투입되는 생활폐기물들을 정리하고 있다. 2023.07.13.

◇생활쓰레기로 기존 원유보다 탄소배출 크게 줄인 합성원유 생산

펄크럼은 미국의 폐기물 가스화 전문 기업이다. 펄크럼은 지난해 12월 폐기물 가스화를 바탕으로 한 합성원유 생산시설(Biorefinery)인 시에라공장을 세계 최초로 상업 가동했다. 2018년 5월 건설을 추진해 2021년 7월 완공했으며, 지난해 5월 시험가동에서 공정의 안정성을 입증했다.

폐기물에 산소와 스팀을 주입해 분해 과정을 거쳐 수소(H2)와 일산화탄소(CO)로 구성된 합성가스를 만든 뒤 수소와 일산화탄소 혼합물을 고온·고압에서 촉매 반응을 일으켜 합성하는 피셔·트롭쉬 공정을 통해 '액체 탄화수소'를 생산한다. 액체 탄화수소는 화학적으로 원유와 유사해 '합성원유'로 불린다.

시에라공장에선 연간 생활폐기물 50만톤을 처리해 이 같은 합성원유 26만 배럴을 만들고 있다. 이는 미국 뉴욕과 영국 런던을 항공편으로 약 180회 왕복하는데 쓰이는 연료량과 맞먹는다. 합성원유는 기존의 석유정제시설을 활용해 휘발유와 경유, 항공유와 같은 석유제품을 만들 수 있다.

합성원유는 특히 기존 원유 생산시 화석연료 사용으로 탄소 배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시추 과정이 생략되는 만큼 탄소배출을 크게 줄일 수 있다. 펄크럼에 따르면 같은 양의 항공유를 생산할 때 펄크럼의 합성원유로 기존 원유보다 탄소 배출을 80% 줄일 수 있다.

펄크럼 FPF 내부 모습.

◇ 폐기물 처리시설 인식 극복 및 지역주민 고용 촉진 등 모델 제시

펄크럼의 사업은 모든 국가가 안고 있는 폐기물 처리 문제에 있어 일정부분 해법이 될 수 있는 것은 물론 폐기물 처리시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극복하고 이를 지역주민의 고용을 촉진하는 '지속가능한 폐기물 처리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는 평가다.

미국 가정이 연간 배출하는 생활폐기물은 3억톤에 달하고, 인구 증가와 개발도상국의 산업화 진전 등으로 2050년까지 전 세계에서 매년 34억톤의 생활폐기물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때문에 폐기물 처리 문제를 놓고 각국은 골머리를 앓고 있다. 2010년대까지 폐기물을 수입해 외화를 벌던 개발도상국들은 '환경 보호'를 이유로 속속 폐기물 수입을 중단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수도권매립지가 2025년 매립 종료를 앞두는 등 매립과 소각 중심의 폐기물 처리 방식은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펄크럼은 시에라공장의 경험을 토대로 미국 인디애나주 게리, 영국 체셔 등 10여개의 신규 공장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8억 달러를 투자해 오는 2026년 준공될 게리 공장은 시에라공장의 3배 규모로 계획되고 있다. 신규 공장 건립 계획이 마무리되면 합성원유 1000만 배럴이 생활폐기물로부터 만들어질 전망이다.

미 언론보도를 보면 일부 환경단체를 제외하곤 지방정부 등은 미래 에너지 산업 육성과 일자리 창출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펄크럼 공장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현재 시에나공장도 준공 후에 운영인력 100여명을 채용한 상태다.

펄크럼 시에라공장 저장창고. 펄크럼 관계자가 FPF에서 선별·처리 과정을 거쳐 공장으로 보내진 폐기물들의 상태를 보여주고 있다. 2023.07.13.

◇'합성원유 생산' SAF 시장 주목…美정부, 규제 개혁에 보조금

펄크럼의 합성원유는 전 세계적인 탄소감축 기조와 맞물려 경쟁력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합성원유로 만들 수 있는 '지속가능 항공유(SAF)'의 사업성에 주목하고 있다. 실제 시에라공장에서 생산하는 합성원유는 지난해 12월부터 미국 정유사 '마라톤'에 전량 공급돼 후처리 과정을 거쳐 SAF로 만들어지고 있다.

현재 세계 주요국들은 항공분야 탄소감축을 위해 SAF 도입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유럽연합은 지난 4월 오는 2025년부터 역내 27개국의 모든 공항에서 항공기 급유시 SAF를 반드시 섞도록 하는 탈탄소 대책 '리퓨얼EU'를 확정했고, 미국도 지난해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통해 SAF에 1갤런(3.78ℓ)당 1.25~1.75 달러의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때문에 세계 항공업계에서 SAF 도입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고 있고, 기존 원유보다 탄소배출을 크게 줄이는 합성원유로 만든 SAF는 펄크럼의 경쟁력 분야로 자리잡고 있다.

미국 유나이티드, 일본항공(JAL), 홍콩 캐세이퍼시픽 등 대형 항공사들이 일찍이 펄크럼에 투자하고, 뉴질랜드 정부는 에어뉴질랜드와 함께 SAF 기술 도입을 추진하며 펄크럼을 후보에 올린 것도 이같은 경쟁력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도 펄크럼의 도전에 적극 지원하고 있다. 미 농무부는 펄크럼이 공장 건설을 준비하던 2012년 1억500만 달러 상당의 대출보증을 해줬고, 미 환경보호청(EPA)은 '자원보존 및 회수법(RCRA)'에 폐기물 가스화, 이를 통한 합성원유 정제 근거를 만들었다.

프라이어 CEO는 "현재 계약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군 기준에 부합하는 제트기 연료를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면서 "실제 국방부로부터 공장 건립을 위해 보조금도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연방 및 주정부 차원의 보조금 프로그램을 거론하면서 "시에라공장은 12개월 내에 손익분기점(break-even)에 도달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시에라공장에서 만든 합성원유는 가스화기에서 불순물을 완전히 제거하기 때문에 기존 원유보다 더 깨끗하다면서 향후 SAF 생산공정도 추가해 자체적으로 SAF도 만들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펄크럼 시에라공장의 전경 모습.

◇ 최태원 'ESG경영 결실' 펄크럼 투자…법적 규제가 발목

SK(주)와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부터 펄크럼에 총 8000만 달러(약 1040억원)를 투자했다. 이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강조하고 있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의 결실이기도 하다.

특히 SK이노베이션은 펄크럼 투자로 폐기물 가스화 기술 경쟁력을 확보해 SAF 시장 확대에 대응하겠다는 계획이다. 김양섭 SK이노베이션 재무부문장(CFO)은 지난달 증권사 컨퍼런스콜에서 폐기물을 활용한 SAF 생산에 유상증자로 조달하는 자금 1조1800억원 중 2244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시장조사업체 TMR에 따르면 세계 SAF 시장규모는 2021년 1억8660만 달러에서 연평균 26.2%씩 증가해 2050년 402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법적 규제가 발목을 잡고 있다. 현행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 사업법은 항공유와 같은 석유제품을 생산하기 위해선 정유사(석유정제업자)가 ‘원유’만을 정제하도록 하고 있다. 석유대체연료 중 하나로 ‘바이오가스연료유’가 정의돼 있지만 이를 만들기 위한 합성원유 정제에 대한 법적 근거가 없는 상태다.

정부가 지난해 11월 친환경 바이오연료 확대 방안을 발표하며 정유사의 석유제품 원료 확대, 바이오연료 제조업자 사업요건 완화를 추진할 계획을 밝혔지만, 아직까진 규제 정비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펄크럼뿐만 아니라 이퓨얼(e-fuel) 전문업체인 '인피니움'에 투자하고 바이오 항공유 제조를 위한 공장 건설을 추진하는 등 2026년경 SAF 시장이 본격 열리는 때에 맞춘 시장 진입을 준비하고 있다.

강동수 포트폴리오부문장은 "SK이노베이션은 SAF 시장 확대에 발맞춰 다양한 대안을 적극 모색하고 있다"며 "세계적인 탄소감축 비전 속 지속가능한 항공시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SAF 분야 경쟁력을 펄크럼과 적극 확대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프라이어 펄크럼 CEO도 "우리는 한국이나 아시아의 다른 나라의 어떤 개발 프로젝트에 대해 SK를 지원하길 열망한다"면서 "우리는 SK와 긴밀히 협력하고 있으며, SK의 모든 개발 계획을 지원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gayunlov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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