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쓰레기'가 '비행기 연료'로 둔갑한다고?

워싱턴=CBS노컷뉴스 최철 특파원 2023. 7. 18.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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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요약
미국 가정에서 배출하는 생활쓰레기만 연간 3억톤
뉴욕시, 내년 가을부터 '음식쓰레기' 분리수거키로
생활쓰레기 매립은 물,토양 오염 및 심한 메탄발생
美 펄크럼, '생활 쓰레기'로 '합성원유' 만들고 있어
합성원유, 기존 원유보다 탄소배출 80% 가량 줄여
SK㈜와 SK이노베이션, 펄크럼에 8000만 달러 투자
한국 생활쓰레기 처리 문제의 대안이 될 수도 있어
연합뉴스

줄곧 한국에서만 살다가 몇 달 전 미국에 와서 가장 처음 '문화적 충격'을 받은 것은 다름 아닌 '쓰레기 분리 수거'였다. 임시로 묵었던 '에어비앤비'에 비치된 쓰레기 봉투는 딱 한 종류였다. 재활용 쓰레기는 따로 내놓고, 그 외의 쓰레기는 모조리 봉투 하나에 다 집어넣어 버리는 방식이었다. 일반 가정에서 재활용은 물론 음식물 쓰레기도 따로 처리하던 한국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숙소 근처의 음식점도 마찬가지였다. 간단히 허기를 채울 요량으로 시킨 패스트푸드의 양이 많아 다 먹지 못했고, 결국 분리배출을 시도하려고 했다. 숙박 시설과는 달리 음식점에서는 남은 음식물을 분리 수거할 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음식점 쓰레기 통에 남은 음식과 일회용 용기, 냅킨 등을 한꺼번에 넣으라는 종업원의 '조언'만이 있었다.

음식물과 일반 쓰레기를 분리하지 않고 한 봉투에 버린다면, 결국 이 '생활 쓰레기'의 최종 종착지는 '매립'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워낙 땅덩이가 큰 나라이다 보니 매립지도 충분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지만, 환경을 조금이라도 고려한다면 이 방법이 과연 최선일까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생활쓰레기가 펄크럼의 쓰레기 분류장에 쌓여있는 모습. 최철 기자


미국 가정에서만 배출하는 '생활 쓰레기'가 연간 3억톤에 이른다고 한다. 2050년까지 전 세계에서 매년 34억톤의 생활 쓰레기가 나올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그런데 2010년대까지만 해도 이같은 쓰레기를 수입해 외화를 벌던 개발도상국들이 이제는 '환경 보호'를 이유로 더 이상 쓰레기 수입을 하려고 하지 않고 있다. 한국 역시 수도권매립지가 2025년 매립 종료를 앞두고 있다. 더 이상 매립·소각 중심의 쓰레기 처리는 설 자리가 없게 됐다는 말이다.

그러다 최근 미국 최대 도시 뉴욕이 내년 가을부터 음식 쓰레기를 전면 분리수거하겠다는 뉴스가 들려왔다. 앞서 뉴욕의 일반 쓰레기통마다 쓰레기와 함께 섞여있는 음식을 먹으려는 쥐가 들끓어 위생 문제가 제기됐다. 여기다 생활 쓰레기 매립·소각이 메탄가스를 유발해 환경 파괴를 넘어 기후 변화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지적도 뉴욕시의 결단에 한몫을 했다.

이를 보도한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뉴욕시가 롤모델로 삼은 곳이 다름 아닌 한국이다. 한국에서 분리 수거된 음식물 쓰레기는 재처리 공장에서 선별 작업을 거친 뒤 분쇄기로 갈고 탈수·건조 과정을 거친다. 이런 후 일부는 동물들의 사료로 쓰이고, 또 다른 일부는 바이오 가스로 변환돼 지역 난방의 연료로 사용되기도 한다.

NYT는 "뉴욕이 배출하는 온실가스 중 20%는 매립지에 묻힌 음식물 쓰레기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특히 세계에서 매년 버려지는 음식물 쓰레기 14억톤 중 대부분이 매립지에서 썩으면서 물과 토양을 오염시키고 온실가스 중 하나인 메탄을 방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어쩌면 뉴욕시의 이같은 고민은 한국이 아닌 미국에서도 해법을 찾을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버려지는 '생활 쓰레기'가 '미래에너지 자원'으로 거듭나고 있는 공장이 미국에도 있기 때문이다.

생활쓰레기 중 금속류 등은 펄크럼의 쓰레기 분류장 컨베이어벨트에서 선별된다. 최철 기자


미국 네바다주 리노시에 위치한 폐기물 가스화 전문 기업 'Fulcrum Bioenergy(이하 펄크럼)'이 주인공으로, 이곳은 '생활 쓰레기'를 가스화해 합성원유를 만드는 기술을 갖고 있다. 생활 쓰레기에 산소, 스팀을 주입해 분해하면, 수소(H2)와 일산화탄소(CO)로 구성된 합성가스가 만들어지는데, 여기에 촉매 반응을 일으키는 공정으로 합성해 '액체 탄화수소'를 만드는 것이다. 액체 탄화수소는 화학적으로 원유와 유사해 '합성원유'로 불린다.

지난해 5월 시험가동에서 공정의 안정성을 입증한 펄크럼은 한 해 생활 쓰레기 50만톤을 처리해 합성원유 26만 배럴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는 미국 뉴욕과 영국 런던을 항공편으로 약 180회 왕복하는데 쓰이는 연료량과 맞먹는다.

선별작업후 건조과정을 거친 생활쓰레기의 모습. 여기에 산소, 스팀을 주입해 '합성 가스'를 만든다. 최철 기자


기존 원유 생산에서는 시추·생산·처리 과정에서 화석연료가 쓰이지만 펄크럼에서 만들어지는 합성원유는 시추 과정이 생략돼 기존 원유 생산 때보다 탄소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같은 양의 항공유를 생산한다고 가정했을 때, 펄크럼의 합성원유는 기존 원유보다 탄소 배출을 80% 가량 줄일 수 있는 것이다.

펄크럼은 리노 공장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미국 인디애나주 게리, 영국 체셔 등 10여개의 신규 공장 건립을 추진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미국 정부의 지원도 큰 보탬이 됐다. 미 정부는 지난해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라 합성원유 1갤런(3.78리터)당 보조금 1.25~1.75달러를 지급하기로 했다. 앞서 미 농무부는 10년 전부터 펄크럼의 사업에 1억500만 달러 상당의 대출보증을 해줬고, 미 환경보호청(EPA)은 '자원 보존 및 회수법(RCRA)'에 생활 쓰레기 가스화와 이를 통한 합성원유 정제 근거를 만들어 놓기도 했다.

선별 후 건조과정을 거친 생활쓰레기가 화학 공정을 앞두고 공장 한켠에 쌓여있다. 최철 기자


한편 펄크럼에 총 8000만 달러(약 1040억원)을 투자한 SK㈜와 SK이노베이션은 생활 쓰레기 가스화 기술을 고도화해 만든 합성원유를 장기적으로 세계 항공유 시장에 공급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폐기물 가스화 기술이 합성원유 확보는 물론, 향후 매립과 소각에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는 국내 생활 쓰레기 처리 문제의 대안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다.

실제로 김양섭 SK이노베이션 재무부문장(CFO)은 지난달 증권사 컨퍼런스콜에서 "생활 쓰레기를 활용한 합성원유 생산에 유상증자로 조달하는 자금 1조1800억원 중 2244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현재 국내에서는 환경부가 지난 2021년 6월 폐기물 자원화를 위한 시설 확충 의지를 밝혔고, 지난해 3월에는 폐기물 열분해로 연료를 만드는 시설 건립을 위한 '폐기물시설촉진법' 시행령도 효력을 내기 시작했다.

펄크럼 공장의 전경. 최철 기자


하지만 생활 쓰레기 가스화로 만든 항공유에 대한 법적 근거가 없다는 것은 풀어야 할 숙제다. 현행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 사업법은 항공유와 같은 석유제품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정유사(석유정제업자)가 '원유'만 정제해야 하기 때문이다.

즉, 현재로선 SK 같은 정유사가 펄크럼에서 만든 '합성원유'를 정제해 항공유로 만들 수 없는 것이다.

다만 산업부가 지난해 11월 '친환경 바이오연료 확대 방안'을 발표하면서 기존의 정유사들이 석유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원유 외의 다른 것들도 쓸 수 있도록 하는 규제완화 의지를 밝힌 점은 SK에게는 고무적인 일이다.

세계 항공업계에서 SAF가 필수인 이유는?
SAF는 'Sustainable Aviation Fuel'의 약자로 우리말로는 '지속 가능 항공연료'이다. 항공운송 산업은 무거운 항공기를 장시간, 장거리 운항해야하는 특성상 유류를 대체할 연료가 마땅치 않다. 배터리 등으로 항공기를 운항하는 것이 아직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는 말이다.
 
육상, 해상 운송수단은 배터리, 연료전지, 암모니아 등 유류를 대신할 연료가 등장해 상용화되고 있지만 항공은 대안이 뚜렷하지 않다. 장시간 1만m 이상의 고도를 날아야 하는 항공기 특성상 배터리는 무게가, 메탄올 및 암모니아와 같은 화학물질은 안정성이 검증되지 않은 점 등이 걸림돌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항공운송 산업에서의 유류 사용을 마냥 못본체 할 수만은 없다. 지난 2021년 유엔기후변화협약으로 각 국의 탄소중립 시기가 확정돼, 같은 거리를 이동할 때 육상 교통수단보다 탄소를 2배 이상 더 발생시키는 항공에서의 탄소감축을 서두르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항공운송 산업에서의 '탄소 배출'을 최대한 줄여보자는 노력의 일환이 바로 SAF인 것이다.
 
SAF는 쉽게 말해, 원유를 정제해 만든 기존 항공유를 대체하는 항공유라고 보면 된다. 바이오 연료, 합성원유, 폐식용유 등으로 만든 항공유가 여기에 포함된다. 제조 방식은 다르지만 모두 기존 항공유로 비행할 때보다 탄소배출을 대폭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SAF에는 기존 원유의 시추 과정에서 대량 사용되는 화석연료 사용이 필요없기 때문이다.
 
여기다 지난 4월 유럽연합(EU)이 역내 27개국 모든 공항에서 항공기 급유시 기존 항공유에 SAF를 반드시 섞도록 하는 탈탄소 대책 '리퓨얼EU'를 확정하는 등 항공 분야 탄소감축을 위한 주요국의 SAF 도입 정책이 연이어 발표되고 있다.
 
'리퓨얼EU'에 따르면 2025년 2%인 SAF 포함 비율은 2030년 6%, 2035년 20%, 2050년 70%로 증가한다.
 
세계 항공업계에게 SAF 도입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고 있는 것이다.
 
SK㈜, SK이노베이션이 함께 8000만 달러를 투자한 미국 펄크럼은 생활 쓰레기를 연료로 바꾸는 '폐기물 가스화' 기술로 SAF를 만들고 있다.
 
펄크럼의 이같은 기술은 매립·소각이 한계에 이른 폐기물 처리 문제를 해결할 대안으로 꼽힌다. 2021년 한해동안 국내에서 배출된 생활폐기물은 약 2270만톤이나 된다. 또한 2021년 말 기준 전국 매립지 용량 6억6717만㎥ 중 남은 매립용량은 2억2359만㎥로 33.5%만이 사용 가능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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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CBS노컷뉴스 최철 특파원 steelchoi@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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