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쓰레기로 나는 비행기'…생활폐기물서 합성원유를 생산하다
年 50t 생활폐기물서 26만배럴 합성원유 생산…뉴욕∼런던 180회 왕복 가능 수준
SK, '지속가능 항공유' 시장 대응 1천억 투자…국내 생산엔 법적 근거 필요 지적
(리노<네바다주>=연합뉴스) 강병철 특파원 = '세상에서 가장 큰 소(小)도시'로 불리는 미국 서부의 네바다주(州) 리노에서 동쪽으로 30분 정도 이동하면 테슬라 전기차 생산공장인 기가팩토리가 멀리 눈에 들어온다.
이 기가팩토리에서 직선거리로 4㎞ 떨어진 맞은 편에 '쓰레기를 탄소 순배출량 제로의 항공 연료로'를 자사 홈페이지에 슬로건으로 내건 미국 바이오에너지 기업 '펄크럼'의 시에라 공장이 자리 잡고 있다.
모래와 자갈 사이로 군데군데 잡초가 모습을 드러낸 황량한 들판을 가로지르는 439번 고속도로를 지나 지난 13일 방문한 이 시설은 자칭 '바이오 정유공장(bio-refinery)'이라는 이름처럼 소규모 정유시설 같은 모습이었다.
공장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서 취재진을 맞이한 에릭 프라이어 펄크럼 최고경영자(CEO)는 "여러분이 여기서 보는 것은 완전히 새로운 산업의 시작"이라면서 "이것은 에너지 산업 및 전 세계의 분기점"이라고 기존 산업과의 차이를 강조했다.
그 이유는 공장 초입에 있는 원료 저장시설(feedstock storage building)에서 바로 확인이 가능했다. 그곳에는 이 시설에서 이른바 합성원유를 만들기 위해 사용하는 쓰레기가 천장까지 쌓여있었다.
저장시설 90%를 채운 막대한 양에도 별다른 쓰레기 냄새는 나지 않았다.
생활폐기물 가운데 종이, 목재, 고무, 섬유 등 가연성 유기물 쓰레기를 선별, 3㎝ 이하 크기의 조각으로 자른 뒤 말리는 처리 과정을 거치면서 쓰레기에서 합성 원유의 원료로 탈바꿈을 했기 때문이다.
이 쓰레기가 건물 한편에 위치한 컨베이어벨트를 통해 고온의 가스화기(gasifier)에 들어가 수소와 일산화탄소로 구성된 합성가스(syngas)가 된다. 이 과정에서 분해를 위해 산소와 스팀이 주입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합성가스는 촉매 반응 과정인 피셔트롭쉬(FT) 공정을 거쳐 액체 탄화수소가 된다. 액체 탄화수소는 화학적으로 원유와 유사해 '합성 원유(syncrude)'로 불린다.
공장에서 쓰레기가 합성 원유가 되는 데 얼마나 걸리는지 물어보니 예상외의 답이 나왔다.
며칠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했는데, 폐기물 선별 등 공급 원료가 준비되면 쓰레기가 합성 원유가 되는 것 자체는 거의 바로 이뤄진다는 취지의 답변이 돌아와서다.
제임스 스톤사이퍼 엔지니어링 담당 부사장은 "합성 가스를 만들기 시작해서 합성원유 제품이 나오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30분 미만"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합성원유는 현재 미국 정유사 '마라톤'이 지속가능 항공유인 'SAF'를 생산하는 데 사용하고 있다.
이 공장에서 만든 합성원유는 가스화기에서 불순물을 완전히 제거하기 때문에 기존 원유보다 더 깨끗하다고 프라이어 CEO는 설명했다.
그는 "현재 계약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군 기준에 부합하는 제트기 연료를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면서 "실제 국방부로부터 공장 건립을 위해 보조금도 받았다"고 말했다.
또 별도의 시추 과정이 필요 없기 때문에 기존 원유로 항공유를 생산할 때보다 탄소 배출을 80% 정도 줄일 수 있다는 것도 합성 원유의 장점으로 꼽힌다.
2021년 7월 완공돼 지난해 12월 상업 가동에 들어간 이 공장에서는 연간 합성원유 26만 배럴을 생산할 수 있다. 이는 미국 뉴욕에서 영국 런던을 180회 왕복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규모다.
이 원유 생산을 위해서는 연간 생활 폐기물 50만톤이 필요하다.
펄크럼 공장이 이곳에 자리 잡은 것도 이 때문이다. 공장에서 30㎞ 떨어진 곳에 쓰레기 매립장이 있어 안정적으로 원료 확보가 가능한 상태다.
실제 펄크럼은 매립장 인근에 '공급 원료 처리시설(FPF)'을 건설하고 선별 과정 등을 거쳐서 합성 원유 생산에 필요한 원료를 확보하고 있다.
펄크럼 합성원유 생산시설 방문에 앞서 찾은 FPF는 겉보기에는 일반 공장 같은 모습이었다. 쓰레기 처리시설임에도 밖에서는 심한 냄새가 나지 않았다.
시설 안으로 들어가니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돌아가는 컨베이어벨트 위로 패트병, 포장지, 비닐 등 쓰레기들이 이동하고 있었다. 공장 한편에는 갓 반입된 각종 쓰레기가 산처럼 쌓여있었는데 육안, 무게, 자력(磁力) 등의 선별 과정을 거쳐 이 가운데 가연성 폐기물만 최종적으로 합성 원유 원료가 된다.
철이나 알루미늄 등 불연성인 금속 폐기물은 별도로 분류되기 때문에 쓰레기 상당 부분이 재활용된다.
생활 폐기물을 통한 합성원유 생산은 쓰레기 재활용이나 탄소 배출 절감 등 환경적 측면뿐 아니라 실세 사업성도 있다고 펄크럼은 보고 있다.
이 회사는 현재 첫 공장의 경우 12개월 내 수익을 낼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미국 인디애나주 게리, 영국 체셔 등 10여곳에 신규 공장 건립을 추진하고 있으며 현재 공장이 SAF 생산공정도 추가해 자체적으로 SAF도 만든다는 계획이다.
유럽연합(EU)의 경우 2025년부터 SAF 등 바이오 항공유를 최소 2% 이상 섞도록 하는 등 SAF의 경우 시장성도 있는 상태다. 펄크럼에는 미국 유나이티드 항공, 일본항공(JAL), 홍콩 케세이퍼시픽 등 항공사들도 투자했다.
여기에다 미국에서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라 SAF 1갤런(3.78리터) 당 1.25∼1.75달러의 보조금도 받을 수 있다.
한국에서는 SK㈜와 SK이노베이션이 폐기물 가스화 기술력을 확보, SAF의 글로벌 시장 확대에 대응한다는 계획에 따라 모두 8천만달러(약 1천40억원)를 펄크럼에 투자했다.
열분해로 연료를 만드는 시설 건립을 위한 폐기물시설촉진법 시행령이 올해 시행되는 등 국내에서도 폐기물 자원화 사업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다만 합성 원유 정제에 대한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고 SK는 밝혔다. 현행법에서 항공유와 같은 석유제품은 정유사가 원유를 정제하도록 하고 있어서다.
solec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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