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타고 온 농약에 ‘탈락’···결과만 보는 친환경 인증
농약 검출량에만 초점
친환경 농업 지속가능성 낮춰
경기도 양평 양서면 두물머리는 농사를 짓기 좋은 곳이다. 두물(남한강과 북한강)이 하나로 합쳐지는 곳이라 물이 풍부하고, 지력이 좋다. 겨울에도 채소 농사를 짓기 편하다. 상온을 유지하는 지하수를 하우스 난방에 활용할 수 있어서다. 이곳과 북한강 건너편의 조안면에서 딸기 체험농장을 자주 볼 수 있는 배경이기도 하다.
농부 최요왕씨는 이곳을 터전 삼아 20년째 유기농 농사를 짓고 있다. 노지와 하우스를 합해 약 1700평의 땅에서 딸기, 양파, 무, 감자, 애호박, 멜론 등을 번갈아 가며 키운다. 질소를 땅에 공급하는 녹비작물인 콩은 3년에 한 번씩 심는다. 돌려짓기(윤작)는 유기농 인증에 필요한 농법의 하나다. 그의 양배추밭엔 나비가 자주 찾는다. 아침이면 양배추 잎 뒤에 알을 낳기 위해 찾아온 나비로 북적일 정도다. 나비도 무농약 양배추 잎이 안전하다는 걸 알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속가능성에 초점 두고 안전성 봐야
유기농을 하는 논밭엔 농약을 쓰지 않아 온갖 생물이 모여든다. 잡초와 병해충 관리가 어려워 농사가 쉽지 않다. 하지만 유기농업이 확대될수록 오염된 땅은 회복되고, 생태계가 살아날 수 있다. 유기농업을 하는 이들은 대개 이런 철학을 품고 시작한다. 현재의 친환경농산물 인증제도는 그러나 유기농이 지속가능한 환경을 만드는 데 기여하는 노력을 평가하는 대신, 농약 검출 결과에만 과도하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
환경오염이 일반화된 상황에서는 농부 자신이 농약을 쓰지 않아도 농작물에서 잔류농약이 검출될 가능성이 상존한다. 이웃 농가에서 농약을 칠 때 바람을 타고 유입되거나 땅이나 농업용수가 농약에 오염된 경우도 있고 인증기관에서 샘플을 채취하는 과정에서 오염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DDT와 같이 장기간 잔류하는 농약은 수십 년 전 사용이 금지됐지만, 여전히 남아 있을 수 있다. 이렇게 의도치 않게 농약이 검출되더라도 인증이 취소될 수 있다. 유기농을 하는 농부들이 늘 잔류농약 검사 결과에 가슴을 졸이는 까닭이다.
최요왕씨도 해마다 열 번 가깝게 검사를 받는다. 인증 갱신을 위해서다. 학교 급식에 들어갈 때도 검사 결과를 내야 한다. 그런데 최근 자신의 밭 옆에 새로 들어선 주말농장에서 과수 재배를 하고 있어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다. 바람이 자주 부는 방향에 있어 그들이 농약을 치면 바람을 타고 넘어올 가능성이 있어서다. 그래서 주말농장과 인접한 자신의 노지와 하우스를 따로 인증받았다. 평소처럼 묶어놨다간 자칫 노지에서 농약이 검출되기라도 하면 하우스도 함께 유기농 인증을 취소당하기 때문이다. 인증 비용이 배로 들지만 고육지책이었다. 주변 유기농 농가에서 비산 농약이 검출돼 인증이 취소당하는 사례를 여럿 봤기 때문이다.
친환경농어업법 시행규칙은 “바람에 의한 흩날림, 농업용수로 인한 오염 등 불가항력적인 요인으로 합성농약 성분이 식품위생법 제7조 제1항에 따라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이 정해 고시하는 농약 잔류허용기준 이하로 검출된 경우”에도 시정조치 명령에 이어 인증취소까지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2019년 7월 이전에는 비의도적인 경우를 전제로 식약청의 농약잔류허용기준(MRL·잔류 농약을 평생 매일 먹어도 건강에 이상이 없는 수준)의 20분의 1 이하인 경우 인증을 유지하고, 일반 농산물로 판매할 수 있도록 했다. 이후에는 그러나 이 규정이 삭제되고 불검출이 원칙이 됐다. 농민이 친환경 농업을 위해 어떤 노력을 쏟아부었더라도 검출 여부 한 방에 과정은 모두 무시된다는 점에서 ‘결과 중심의 인증제도’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친환경농산물 인증농가 수는 2020년 5만9249호에서 2022년 5만722호로 감소했고, 인증면적은 같은 기간 8만1827㏊에서 7만124㏊로 줄었다. 친환경농산물 인증취소 건수는 2020년 1473건, 2021년 2067건, 2022년 2299건으로 늘었다. 2022년 인증취소 건수 중 농약 사용 기준 위반이 1978건으로 86.03%에 달했다. 농약을 의도적으로 사용한 경우도 있지만, 비산이나 토양·물 오염으로 인해 농약이 검출된 사례도 적지 않다고 추정된다. 잔류농약 검사 위주로 운영되는 인증제도가 유기농업 축소의 가장 큰 이유라고 최씨는 말한다. “기존에 오염됐던 땅에 유기농업을 확산시켜 오염도를 낮추고 생태계가 살아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나 안전성(농약 검출 여부)에만 초점을 맞추면 지속가능성(유기농업의 확산)을 보장하기 어려워지죠. 지금 인증제도는 티끌 하나 없는 백지상태를 원합니다. 유기농업을 하면서 순백까지는 아니어도 거의 하얀 상태로는 만들었는데 티 하나 생긴 것 때문에 전체를 못 하게 하니 그 입지가 점점 좁아질 수밖에 없는 거죠.”
인증취소, “인생이 부정당한 느낌”
유기농 인증 심사는 오염 물질의 불검출이 아니라 오염을 최소화하려는 실천과 생산과정을 중심에 둬야 한다고 유기농 농민들은 입을 모은다. Codex 국제식품규격위원회(식품에 관한 국제기준을 개발하는 정부 간 기구)도 “유기농업 실천이 일상적인 환경오염으로 인한 잔여 물질이 전혀 없도록 보장할 수는 없다. 유기농업 실천의 목적은 공기, 흙, 물의 오염을 최소화하는 것”이라고 ‘유기농 먹거리 생산·가공·라벨링·마케팅을 위한 가이드라인’(1999년)에서 밝히고 있다.
실제 미국과 유럽의 경우 검출 여부보다 과정에 중심을 두고 평가한다. 농약이 나와도 일정 기준 이하(미국은 MRL 20분의 1 이하·유럽연합은 일반 농산물 기준 단, 이탈리아는 불검출)는 용인한다. 잔류농약 검사도 우리처럼 전수조사가 아닌 샘플링 방식을 택하고 있다. 유럽연합은 잔류농약 검사도 생산자가 의도적으로 위반했다는 확고한 의심이 가는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한다. 같은 유기농산물이라고 해도 잔류허용기준이 있는 나라의 수입 유기농산물과 비교해 불검출을 요구하는 국내 유기농산물은 인증제도의 동등성 측면에서 불평등한 대우를 받는 셈이다.
유병덕 이시도르지속가능연구소장은 현재의 인증제도는 과학적으로 불가능한 일을 하도록 농업인에게 짐을 지운 꼴이라고 평가했다. “선진국·후진국을 막론하고 생산자가 노력한 만큼 인증을 주는 것이지 노력해도 이룰 수 없는 성과를 요구하진 않는다. 옆 밭에서 뿌린 농약이 날아들었다고 마치 유기농업을 한 사람이 큰 잘못이라도 저지른 것처럼 여론이 형성된다. 지리산 흙을 파고 검사해도 중금속이 나온다. 유기농을 한다고 농약이 하나도 검출되지 않아야 한다는 건 거짓의 명제이고, 참의 명제는 유기농을 하면 농약이 훨씬 덜 검출된다이다.”
인증이 취소될 경우 생산물은 대부분 폐기된다. 다시 인증을 받기까지 최소 3년이 걸린다. 경제적 타격도 문제지만, 자부심이 무너지는 심리적 타격이 더 두렵다. 경북 상주에서 20년 넘게 포도, 토마토, 벼 등을 유기농으로 재배해온 농부 김하동씨( 친환경인증제도를 혁신하는 사람들 대표)는 지난해 알 수 없는 원인으로 농약이 검출돼 인증취소 통보를 받았다. 다행히 시료의 포장방법이나 채취 방식에서 문제가 있었다는 문제 제기가 받아들여졌고, 재심사 후 농약이 검출되지 않아 구제를 받았다.
“사람이 먹을 것을 짓는 일이고, 또 자연에 해를 주지 않는 방식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에서 유기농을 시작했다. 유기농을 하는 많은 분이 갖고 있는 철학이다. 그런데 농약이 검출되면 주변 농부와 소비자와의 관계에서 신뢰를 잃게 된다. 인생 전체를 부정당하는 느낌이었다. 마을에서는 믿지 못할 사람으로 낙인찍힌다. 농부가 농약과 비료를 전혀 쓰지 않아도 이미 오염됐거나 오염될 소지가 있는 환경이 됐는데 이런 상황에서 농약이 검출됐다는 이유만으로 인증을 취소하는 제도는 말이 안 된다.”
유기농 농부들은 지금의 인증제도는 자기 잘못도 없이 늘 불안감 속에서 농사를 짓도록 만드는 제도, 농부의 인권을 침해하는 제도라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농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한다는 점도 또 다른 문제로 지적된다. 유 소장은 “잔류농약 검사에 의존하는 방법을 폐지해야 한다. 그리고 검출될 경우 그 원인이 무엇인지에 먼저 관심을 기울이고, 생산자가 일으킨 문제라고 입증된 게 아니라면 생산자를 무죄로 간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소비자 역시 잘못된 인증제도의 피해자라고 했다. “미국이건 유럽이건 약간의 잔류농약이 검출돼도 그것이 생산자의 책임이 아니라면 유기농 인증마크를 떼지 않는다. 그곳 소비자 인식이 낮아서가 아니라 오히려 참과 거짓을 합리적으로 구별하는 인증제도가 있어서 가능한 일이다. 그러다 보니 유기농 생산자들도 내 농산물에서 농약이 검출되면 어떡하냐는 불안감이나 두려움 없이 자신만만하게 유기농을 할 수 있고, 그런 사람이 많아질수록 토양과 수질이 개선되고, 생태계가 건강해진다. 건강한 농산물·축산물을 구매할 기회가 많아져 소비자들도 유리하다.”
인증제도, 결과 아닌 과정 중심으로 바꿔야
친환경농어업법은 ‘친환경 농어업’을 “생물의 다양성을 증진하고, 토양에서의 생물적 순환과 활동을 촉진하며, 농어업생태계를 건강하게 보전하기 위해 합성농약, 화학비료, 항생제 및 항균제 등 화학자재를 사용하지 아니하거나 사용을 최소화한 건강한 환경에서 농산물·수산물·축산물·임산물을 생산하는 산업”이라고 정의한다. 법상 친환경농산물의 핵심은 농약 불검출이 아니라 농약 불사용에 있다. 하지만 시행규칙에서는 농약 검출 여부가 절대적인 기준이 되고 있다.
시행규칙이 법의 취지와 맞지 않다면 인증기준을 명확히 법에 담거나 시행규칙을 바꿔야 한다. 하승수 변호사(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는 “법은 합성농약 불사용 혹은 최소화인데, 시행규칙은 불검출이어서 상충한다. 법률에 맞게 시행규칙을 개정해야 한다. 법률에서 ‘환경이 전반적으로 오염돼 있는 현실을 감안해 합성농약을 사용하지 아니하는 행위에 초점을 맞춰야 하고, 합성농약 검출 여부를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내용으로 기준을 밝힐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관련 법 개정안이 신정훈 의원실(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논의 중이다.
정부도 인증제도의 문제점을 인지하고는 있지만, 시행규칙 개정으로도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이정석 농림축산식품부 친환경농업과 과장은 “2019년 7월 이전 비의도적 오염으로 농약이 나올 경우 MRL의 20분의 1까지는 인증을 유지해주는 규정이 있었다가 삭제되고 불검출로 바뀌었다. 시행규칙을 개정해 비슷한 규정을 다시 살릴 계획이다. 다만 어느 수준에서 허용할지는 생산자·소비자 단체와 계속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행규칙 개정안은 오는 7월 말 공개돼 입법예고·규제심사 단계 등을 거쳐 올해 연말쯤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최동근 친환경농산물자조금관리위원회 사무국장은 소비자 인식 개선 노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시행규칙 개정은 정부가 일정 정도 요구를 수용한 것으로 본다. 핵심은 농약을 치지 않았는데 비의도적으로 오염된 농가를 어떻게 보호하고 지지할 것이냐이다. 소비자들은 유기농산물은 농약 ‘0’이라고 인식한다. 이런 소비자들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 단체와 정부가 함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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