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위기 우려 커지나…밀 3% 오르고 유럽증시 '흔들'(종합)
식량위기 우려에 유럽증시도 흔들
유엔 주요국 "식량위기 잔혹 행위"
[뉴욕=이데일리 김정남 특파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곡물 수출을 보장한 흑해곡물협정을 종료하면서 밀 가격이 갑자기 급등했다. 세계 최대 곡물 생산국 중 하나인 우크라이나에서 곡물 수출길이 다시 막히면서 식량 위기 공포가 불거졌기 때문이다. 이에 맞춰 세계 주요국들은 러시아의 협정 종료를 두고 맹비난 목소리를 냈다.
러 협정 탈퇴에 밀 가격 급등
미국 시카고상품거래소(CBT)에서 밀 선물 가격은 17일(현지시간) 부셸당 6.84달러로 3.4% 상승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했다. 장중에는 6.89달러까지 치솟았다.
우크라이나는 세계 최대 밀 수출국 중 하나다.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침공으로 곡물 수출을 중단했을 때 밀 가격은 부셸당 12달러 이상 사상 최고치로 치솟았고, 글로벌 식량 위기감이 가중되면서 그해 7월 튀르키예와 유엔의 중재로 흑해곡물협정을 타결한 이후 안정을 찾았다. 협정은 우크라이나 흑해 3개 항에서 곡물을 안전하게 수출할 수 있도록 보장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체결한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이를 통해 전쟁 중에도 안정적으로 농산물을 수출할 수 있었다. 지난 5월까지 이 협정을 세 차례 연장했으나, 러시아는 결국 네 번째 연장은 거부했다.
밀 외에 옥수수와 콩 가격은 이날 각각 1% 이상 상승했다. 유럽 주요국 증시 역시 흔들렸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증시의 DAX 30 지수는 전거래일과 비교해 0.23% 내렸고, 프랑스 파리 증시의 CAC 40 지수는 1.12% 하락했다. 영국 런던 증시의 FTSE 지수는 0.38% 하락했다.
특히 정치·경제 사정이 취약한 빈국을 중심으로 위기가 점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유엔 세계식량농업기구(FAO)가 소말리아, 예멘, 아프가니스탄 등 분쟁을 겪고 있는 나라들에게 보낼 곡물을 우크라이나에서 주로 구매해 왔기 때문이다. AP통신은 “글로벌 식량 위기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세계 최대 밀 수출국인 러시아가 상대적으로 싼 가격으로 세계 각국에 밀을 대량 공급하고 있는 만큼 가격 상승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관측이 적지 않지만, 이번 사태에 대한 불확실성이 있는 탓에 공포가 커지고 있는 셈이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날 “러시아 연방 없이도 흑해 회랑을 이용할 수 있도록 모든 조치를 해야 한다”며 흑해를 통한 해상 곡물 수출을 계속 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로이터통신 등은 전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선사들과 기업들로부터 연락을 받았다”며 “그들은 우크라이나가 출항하도록 해주고 튀르키예가 통과하도록 해준다면 모두가 계속해서 곡물을 수송할 준비가 됐다고 밝혔다”고 했다.
유엔 “식량 위기 잔혹 행위”
이번 사태를 두고 세계 주요국들은 러시아를 맹비난하고 나섰다. 글로벌 식량 위기를 초래하는 잔혹 행위라는 것이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이날 유엔본부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러시아의 흑해곡물협정 이행 종료 결정을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협정에 함께 할지 여부는 선택일 수 있지만, 개발도상국과 그밖에 모든 곳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주유엔 미국대사 역시 기자들과 만나 “러시아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귀중한 합의에 다시 한 방 먹였다”면서 “또 다른 잔혹 행위”라고 비난했다. 그는 그러면서 “러시아가 인류를 인질로 잡고 있다”며 “모든 회원국들이 나서 러시아에 결정을 뒤집으라고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악관까지 따로 규탄 메시지를 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브리핑에서 “러시아의 협정 중단 결정은 위험하고 무책임한 일”이라며 “식량 부족을 악화하고 전세계 수백만명의 취약계층을 한층 위험에 빠지게 할 것”이라고 했다. 이 협정은 글로벌 식량 위기 해결에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러나 중국은 러시아를 다소 두둔하고 나섰다. 장쥔 주유엔 중국대사는 “해법을 찾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면서도 “모든 당사자의 우려를 수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러시아의 우려 해소가 사태 해결의 전제조건이라는 취지로 언급한 것이다.
김정남 (jungkim@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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