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윤정의 식물 이야기 산수국] 이렇게 예쁜데 꽃이 아니라니

차윤정(산림생태학자) 2023. 7. 18.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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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길거리와 산에서 흔히 마주치는 수국 그리고 산수국
나무 그늘이 햇빛을 어루만지는 숲에서 산수국은 언젠가 완전히 변해 버릴지도 모르는 수국을 대신해서 우리에게 수국의 원래 모습을 기억나게 할 것이다.

차윤정 박사의 식물 이야기 연재를 시작한다. 서울대학교에서 산림환경학을 전공한 산림생태학자로서,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숲과 식물에 관한 다양한 책을 써 왔다. 저서로는 <숲 생태학강의>, <열려라 꽃나라>, <신갈나무 투쟁기>, <숲의 생활사>, <나무의 죽음>, <우리 숲 산책>, <다시 걷고 싶은 우리 숲>, <식물은 왜 바흐를 좋아할까> 등이 있다. -편집자 주

산山 수水 국菊. 산의 물가에 피어나는 꽃. 그 이름만으로 꽃이, 물이, 여름이, 산이 떠오르는 산수국. 산수국은 우리나라 전역의 산 계곡에서 피어난다. 산에서 피는 꽃이 어디 산수국뿐이랴 만은, 산 아래 세상이 수국으로 온통 난리인 점을 생각하면, '산에 가면 산수국'이란 말이 한가하고 다정하다.

제주도는 여름이면 수국의 섬으로 특화된다. 수국꽃의 감당하기 힘든 유혹을 뒤로하고, 호젓한 아부오름으로 들어가는 산길, 물기로 윤기 나는 잎에 푸르스름한 색으로 피어 있는 산수국. 호젓함과 청량함은 여행자의 행복이다. 수국, 별수국, 등수국, 나무수국, 별의별 수국이 다 있지만, 여름 산길에서 만나는 수국으로는 산수국이 제일이다.

산수국은 우리나라 전역에서 흔하게 자라는 수국과水菊科 수국속水菊屬의 낙엽활엽관목이다. 수국은 중국과 일본, 혹은 동아시아가 원산지라고 소개되는 반면, 산수국은 정확하게 한국과 일본을 지정해 원산지를 소개하고 있다. 오늘날의 그 관심과 쓰임에 있어도 수국이 다국적인 데 비해 산수국은 한국적이라 더 애정이 간다.

산수국의 고전미. 4장으로 이루어진 꽃잎방석이 선녀보다 곱다.

수국 종류의 꽃들은 주로 여름에 피는데, 줄기 끝에 방석 모양의 산방꽃차례나 둥근 공모양의 산형꽃차례를 이룬다. 꽃차례 바깥쪽으로는 열매가 맺지 않은 무성화가 달리는데, 주로 3~5개 간혹 6~8개의 분홍색 또는 파란색의 꽃받침조각이 마치 꽃잎처럼 달린다. 꽃송이의 중앙에는 암술과 수술이 있는 자잘한 꽃들이 모여 있는데, 꽃잎과 꽃받침의 정확한 분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채, 5장의 타원형 꽃잎으로 되어 있다. 중국 문헌자료에 의하면 꽃차례 바깥으로 8개의 꽃이 빙둘러 있어 팔선화八仙花라고 불렸다. 요즘의 수국에서는 8선녀가 앉았다는 8장의 꽃방석을 따로 찾을 수 없으나, 산수국에는 여전히 8개의 꽃방석이 흔히 보인다.

최근의 국가식물표준목록에 따르면, 산수국은 기본종Hydrangea serrata에서 수국Hydrangea macrophylla의 아종H. macrophylla subsp. serrata으로 분류계급이 바뀌었다. 그만큼 수국과 산수국의 분류학적 특징이 비슷하다는 의미다. 수국이면서 산수국이며, 산수국이면서 수국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으니, 더욱 '산에는 산수국'이면 거의 맞는 셈이다.

꽃송이가 극대화된 미국수국의 품종 애나벨H. arborescens 'Annabelle'.

산수국은 높고 서늘한 산야에 정착하느라 잎이나 꽃, 몸체 등을 수국에 비해 작게 조정했다. 산죽dwarf bamboo(조릿대)이 큰 키(아열대성 대나무)를 포기하면서 산으로 들어온 것과 같이. 수국꽃송이 역시 크기 면에서는 산수국보다 크지 않았을까(원종의 수국을 보기가 쉽지 않다!).

산수국의 잎은 수국 잎에 비해 좀 작고 날씬하며, 잎 가장자리에는 톱니 모양의 거치가 있다. 느티나무의 학명이 Zelkova serrata임을 상기하면 그 잎의 특성을 쉽게 알 수 있겠다. 크든 작든 수국과 산수국의 무성하고 단단한 잎은 서로 십자 형태로 어긋나게 달려, 위에서 보면 그 십자가 잎다발 속에 크고 소담스런 꽃송이가 앉아 있으니, 구조적인 안정감은 물론, 하나의 꽃송이로서 하나의 꽃다발도 충분하다.

붉고, 푸른 산수국 꽃잎색의 변주. 산수국의 꽃잎색은 안토시아닌 색소와 토양 속 알루미늄이온 농도에 의해 결정된다. 비밀을 알아낸 원예가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다채로운 꽃색을 창조해 낸다.

수국이란 이름은 중국명의 수구화繡毬花 또는 일본에서의 수국화水菊花에서 유래된 것이라 보는데, 관상용으로 들어와 사찰 경내에 많이 심어졌다. 대체로 중국명인 수구화가 흔히 사용되었으나, 수국화를 선호하는 일본사람들에 의해 수국水菊이 되었다고 한다. 그의 학명 Hydrangea이 물을 칭하는 것이니 굳이 수국이라 부르는 데 역사적 해석은 하지 않기를.

수국이든 산수국이든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에게 가장 흔한 호기심거리는 꽃잎으로 가장한 가짜 꽃잎이야기와 그 가짜 꽃잎 색의 화려한 변주다. 이미 사람들에게 그 원형을 빼앗긴 수국 꽃은 말하자면 꽃씨를 만들지 못하는 헛꽃들로 이루어진 셈이다. 산수국의 꽃차례에서 가장자리에 빙 둘러 나있는 꽃잎은 해부학적으로나 발생학적으로 진정한 꽃잎이 아니라 꽃받침이 꽃잎 모양으로 변형된 것이다. 이 꽃받침꽃잎은 가짜 꽃이라 헛꽃, 혹은 암술과 수술이 없어 무성화라 불린다. 산수국의 꽃잎(달리 무엇이라 말하겠는가!)은 3장 혹은 4장의 꽃받침꽃잎으로 구성된다.

그런데 어찌 수국만이 무성화를 피우던가. 기실 최초의 꽃이라 볼 수 있는 목련 역시 9장의 꽃잎 가운데는 3장의 꽃받침(가짜 꽃잎)이 섞여 있으며, 산딸나무의 십자 모양의 화려한 꽃잎 역시 포가 변형된 것이다.

국화꽃은 암술과 수술을 포기하고 긴 혀 모양의 꽃잎으로 변형된 무성화가 가장자리에 펼쳐지고 그 안쪽에 암술과 수술을 갖춘 자잘한 통꽃들이 모여 있다(해바라기 꽃을 상상해 보라!). 수국의 국菊이 의미하는 바가 여기 있는지도! 어찌되었건, 씨앗을 잘 만들기 위한 장치이니 포건, 꽃받침이건, 변형된 꽃잎이건 모두가 꽃잎이다.

별수국. 꽃받침이 꽃잎으로 변형된 것으로도 부족한지, 사람들은 겹겹의 꽃잎을 덧 만들어 수국의 아름다움을 더욱 끌어올리고 있다. 산수국의 재배(원예) 품종.

흙 속 알루미늄 농도에 따라 꽃색 정해져

산 길가 혹 물가에 피는 산수국의 꽃잎색은 붉은가 하면서 푸르고, 푸른가 하면서 붉은 것이 흔한데, 인가의 수국이나 산수국은 붉은색에서부터 파란색으로 화려하고 선명한 꽃색을 자랑한다. 흔히 수국의 꽃색은 흙의 산성도pH에 의해 조절된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토양의 산도가 아니라 토양 내 알루미늄의 농도에 의한 반응이다.

일반적으로 꽃잎의 붉은색을 나타내는 안토시아닌 색소는 산성화된 조건, 즉 수소이온이 많은 곳에서는 붉은색을 강하게 나타내지만, 알칼리 조건에서는 푸른색을 나타낸다. 그런데 수국은 일반 토양(약산성)에서는 붉은색을 나타내다가, 토양의 산성도가 강해지면 푸른색을 나타낸다.

수국의 꽃잎은 안토시아닌 계열 색소 중 단 하나의 색소, 정확하게 델피니딘-3-글루코사이드를 가지고 있는데, 이것이 알루미늄이온과 반응하면 붉은색 대신 푸른색을 나타낸다. 일반적으로 토양이 극산성화되면 알루미늄이온이 녹아 나오고, 대부분의 식물뿌리는 알루미늄에 독성피해를 받는다.

그런데 수국은 토양 속 알루미늄이온이 많아지면 이를 몸 전체로 이동시키는 화학적 작용을 발현시켜 알루미늄이 뿌리에 축적되는 것을 막는다. 수국 꽃잎 속 단 하나 색소는 바로 이 알루미늄을 안전한 상태의 복합체로 보관하게 되는데, 이 복합체는 독특한 푸른색을 발현하게 된다.

이 복합체는 안정적이어서 푸르게 변한 수국을 다시 붉게 만드는 데는 새로운 성장이 이루어져야 가능하다. 최근엔 수국의 꽃색소 양을 조절해 다양한 원색, 혹은 비비드 계열의 꽃색들을 자유자재로 만들어낸다.

흥미로운 사실은 흡수, 이동시킨 알루미늄은 수국의 꽃받침(일반적인 식물의 꽃받침에는 안토시아닌 색소가 없다!) 꽃잎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초록 잎들 전체에서 똑같은 농도를 보인다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보는 수국은 모든 꽃들이 화려한 무성화로 바뀐 것이다. 씨앗이 아름다운 꽃잎으로 대체되었다.

꽃을 위한 많은 물과 양분, 공기 필요해

꽃잎색이 푸르게 변하는 것과 달리, 가을이 되어도 수국의 단풍색이 푸른색이 아니라 여전히 붉은색을 띠는 이유는 바로 녹색 잎 속에는 꽃색을 나타내는 색소가 없기 때문이다. 식물에 대한 과학적 지식과 기술이 발달한다고 해도 제발 푸른 단풍색은 만들지 말아 주길.

나무수국과 같은 흰색 수국은 이런 색소조차 가지고 있지 않아 토양의 산도에 따른 색변화를 나타내지는 않지만, 화학자들 혹은 원예가들은 수국과는 다른 방식으로 흰 꽃잎을 연두색으로, 담황색으로 만들어냄으로 신성한 행사(이를테면 결혼식)의 주요 장식용 꽃으로 사용하고 있다. 미국에서 개량한 미국 수국 '애나벨'은 진정 아메리칸 스타일이다.

수국이든 산수국이든, 가까이서 기르기 위해서는 당연하지만 물을 잘 관리해야 한다. 물을 좋아한다고 고인 물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큰 잎과 큰 꽃만큼 많은 물과 양분, 토양 속 공기가 필요하기 때문에 물을 잘 품고 내보낼 수 있는 토양이 필요하다.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반그늘이라도 지어서 흙이 젖은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늘과 서늘한 기온, 이 순한 곳에 산수국이 살고 있으니 애써 가꾸기 힘들다면, 가까운 산길을 찾는 것만으로도 산수국의 여름을 즐기기에 충분하다.

수국의 화려한 변주가 거듭될수록 우리는 희미해진 수국의 원래 모습을 산수국에서나 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정원을 만든다면, 가벼운 산길에 물을 들이고, 자갈을 들이고, 산수국을 심고, 물봉선과 여뀌와 고마리도 함께 심을 것이다. 여름 산길 산수국 정원이다.

월간산 7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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