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에 ‘장자 상속’으로 기업 넘기는 LG…구광모 상속분쟁 첫 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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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광모 엘지(LG)그룹 회장을 상대로 그의 어머니와 두 여동생(세 모녀)이 제기한 상속회복청구 소송이 18일 서울서부지법(민사11부)에서 시작된다. 엘지그룹 내 지분 등을 놓고 가족간 법적 다툼을 벌이는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재벌이 ‘장자 승계’ 방식을 통해 최고경영자를 세우고 그룹을 유지해온 구조의 취약성이 드러났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먼저 자산총액이 171조원에 이르는 ‘대기업 집단’의 재산 및 경영권 승계가 가족 내 의사결정 방식으로 이뤄지는 데 대해 문제를 지적했다. 김우찬 경제개혁연대 소장(고려대 교수)은 “엘지그룹 등 한국 재벌이 기업을 개인 소유물처럼 가족에게 넘겨주는 세습 문제를 되짚어봐야 한다”고 했다. 구 회장은 2018년 마흔살의 나이에 회장 직에 올랐다.
이같은 의사결정 방식은 가족간 화합 또는 공통의 이해가 없으면 흔들리기 쉽다. 그동안 엘지그룹은 지주회사 체제로 일찍 전환한 뒤 잡음 없는 승계 등 ‘인화’를 강조했다. 구인회 창업주에서 구자경 전 회장(1970년), 구본무 전 회장(1995년), 구광모 회장(2018년)으로 세 차례 총수 교체가 이뤄지는 과정에서 장자 외 다른 친척들은 엘에스(LS)·엘엑스(LX)·엘에프(LF) 등으로 계열분리하거나 일부 지분을 받아 정리했다. 장남이 지주사 지분을 포함해 경영권을 물려받고 형제들은 일부 계열사를 들고 분가하는 장자승계 원칙은 형제간 경영권 분쟁을 차단하는 역할을 했다.
이른바 ‘인화’ 풍토가 총수 일가 26명이 지주회사인 ㈜엘지 지분 41.7%를 나눠 가지고도 그룹의 지배권을 단일하게 유지할 수 있는 포인트였는데, 이번 소송이 이를 뿌리부터 흔든 셈이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소송의 승패를 떠나 엘지그룹의 장자승계와 남성중심적 사고에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당장은 아니더라도 구 회장 자녀 세대의 상속 과정에서 해당 재판이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장자가 누구냐’를 따져 승계한 과정이 다음 최고경영자가 누가 될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시장에 계속 남길 수 있다는 전망이다. 구 회장의 경우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의 아들로, 딸 밖에 없었던 큰아버지인 구본무 전 회장의 양자로 입적해 회장직을 물려받았다.
재판은 세 모녀가 고 구본무 전 회장이 상속한 엘지그룹 주식 지분을 다시 분할하자는 취지로 지난 3월 소송을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앞서 2018년 엘지가 장자승계 원칙에 따라 구 전 회장의 엘지 지분 11.28%를 구광모 회장에 8.76%, 장녀 구연경 대표에게 2.01%, 차녀 구연수 씨에게 0.51%를 상속했지만, 별도 유언장이 없는 만큼 아내와 자녀 3명이 각각 1.5대 1대 1대 1의 비율로 다시 나눠야 한다는 것이다. 당시 구연경 대표 등은 지분을 적게 받는 대신 5천억원 규모의 개인자산(금융투자상품 및 부동산, 미술품)을 받기로 해 별다른 분쟁 없이 합의가 되는 듯했다.
이날 재판은 양쪽의 쟁점과 증인 채택 등을 조율하는 변론준비기일로, 당사자인 구 회장과 세 모녀는 직접 출석하지 않는다. 법조계에선 세 모녀의 상속회복 청구 소송의 승소 가능성이 낮다고 본다. 김한규 서울변호사회 전 회장은 “구 회장이 부당한 방법으로 재산을 가로챈 상속권 침해 사유가 있거나 분할 과정에서 판단을 왜곡할 중대한 사기나 기망이 존재해야만 세 모녀의 요구가 받아들여질 수 있다. 각종 전문가와 함께 진행한 대기업 재산 분할에선 불법 여지가 있을 여지가 적다”고 설명했다. 실제 구 회장과 세 모녀 쪽은 구 전 회장 별세 뒤 5개월 동안 수차례 협의를 통해 재산을 분할한 것으로 전해졌다.
재계에선 구연경 대표 남편의 행보를 주목한다. 구 대표의 남편 윤관 블루런벤처스 대표는 미국에서 벤처 기업 등에 투자한 경험이 있어 지분 구조에 밝고, 이번 재판에서 변호사 선임 등에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엘지 그룹 쪽은 이날 “구 회장과 구 대표 등 상속인들이 수차례 협의를 통해 합의했고, 상속은 2018년 11월에 적법하게 완료됐다”며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제척기간 3년도 지났다”고 밝혔다.
옥기원 기자 o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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