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당’ 선언한 정의당, 누구와 어떻게?
정의당은 국회에서 가장 오래 자리를 지킨 제3정당이다. 국민의당, 바른미래당 등 정의당보다 더 많은 의석수를 확보한 제3정당도 있었지만 결국 거대 양당으로 흡수됐다. 선거 때면 매번 등장하던 신당도 명멸을 반복했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다시 한번 제3지대 움직임이 시작됐다. 양향자 무소속 의원이 먼저 깃발을 내걸고 6월26일 ‘한국의 희망’을 띄웠다. 금태섭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주도하는 ‘새로운 정당 준비위원회(새로운당)’도 창당 준비에 돌입했다.
정의당도 ‘신당 창당’ 대열에 섰다. 6월24일 열린 정의당 전국위원회(당대회 개최 전 정의당 최고 의결기구)에서 노동과 기후·녹색 그리고 제3세력과 합당하거나 통합해 신당을 추진하고, 이 과정에서 정의당의 기득권을 내려놓겠다고 결정했다. 지난 6개월간 정의당 지지율은 3~5% 수준이다(한국갤럽 주간 조사 기준,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현행 선거제도가 유지될 경우 내년 총선에서 비례대표 1번 후보가 당선되기 위해선 3% 이상의 정당 득표율이 필요하다. 전국위원회의 이번 결정은 지금의 정의당으로는 내년 총선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위기의식을 보여준다.
정의당은 애초 ‘재창당’을 준비했다. 지난해 치러진 대선과 지방선거 참패가 결정적 계기가 됐다. 지난해 9월17일 정의당은 재창당 결의안을 내고 방안을 모색했다. 이후 재창당 방향을 두고 정의당의 정체성을 분명히 한 뒤 세력을 확대해야 한다는 이정미 대표 측과 정의당 해체 뒤 신당을 창당해야 한다는 류호정·장혜영 의원 쪽이 강하게 부딪쳤다. 류호정·장혜영 두 의원이 이끄는 정치 그룹 ‘세 번째 권력’은 출범선언문에서 “노동 중심 정당, 사실상의 위성정당, 폐쇄적 운동권 정당을 넘어, 정의당은 진보 정치 밖에 있는 제3시민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전국위원회에서 신당 창당으로 일단락됐지만, 곧바로 ‘누구와 어떻게’ 함께할 것인지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한 정의당 원내 핵심 관계자는 “정의당이 내부적으로 그만큼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라고 말했다. 정의당이 함께할 수 있는 제3세력이 어디인지를 두고 당내 의견이 나뉜다. 6월25일 이정미 대표는 양향자 의원과 금태섭 전 의원을 언급하며 명확하게 선을 그었다. “(그분들이 추진하는) 신당에 대한 실체를 알지 못한다. 그분들이 살아왔던 궤적, 정당을 선택해왔던 과정을 놓고 볼 때 함께하는 것에 상당히 회의적이다.”
류호정 의원은 앞서 6월13일 금태섭 전 의원이 이끄는 ‘성찰과 모색(현 새로운당)’이 국회에서 연 포럼의 주최를 맡았다. 이 자리에서 류 의원은 “최대공약수를 찾아 조금씩 좁혀보자”라고 제안했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도 제3세력의 범위를 열어둬야 한다고 본다. “어디까지라고 미리 정해놓는 게 이상하다. 실질적으로 문제 해결을 위한 정당인지, 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문제의 우선순위와 해법에 동의할 수 있다면 누구라도 함께할 수 있다고 보는 게 가장 적절한 태도다.”
이정미 대표의 입장과 달리, 박원석 전 정의당 의원은 금태섭 전 의원, 정태근 전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 의원과 함께 초당적 대안신당 창당을 준비 중이다. 5월에 꾸려진 모임에 6월 초 뒤늦게 합류했다. 박원석 전 의원은 19대 국회에서 통합진보당 비례대표로 당선됐다가 분당 사태 이후 정의당 의원이 됐다. “제3지대가 정의당 없이 안 되지만 정의당만으로도 안 된다. 정의당과 앞으로 제3지대에서 벌어질 정치 지형 변화의 논의를 맞닿게 하는 가교나 촉매 역할을 하려고 한다.”
신당 창당 방식을 두고도 이견이 나온다. 이정미 대표는 ‘해산 후 창당’에 대해 “실현 가능성도 없고 당의 결정에도 반하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조성주 ‘세 번째 권력’ 공동운영위원장은 이렇게 반박한다. “전국위 결정은 열어놓자는 이야기다. 합당할 수도 있고, 정의당의 주도권 없이 당 밖에 기구를 꾸려서 다 같이 이동하는 방식이 될 수도 있다. (애초 자강론이던 지도부 주장과 달리) 전국위에서 신당 창당이 결정됐는데, 지도부가 그 해석을 굉장히 좁게 하고 있다.”
“결국에는 실력으로 증명할 수밖에 없다”
앞서의 정의당 원내 핵심 관계자는 ‘지도부의 리더십 문제’를 지적했다. “합의한 내용을 충실하게 밟아나가면 되는데 특정 사람을 호명하고 평가하면서 배가 또 산으로 가게 됐다. 재창당 과정에서 우리가 갈라지고, 여러 원심력에 흔들리지 않게 지도부가 중심을 잡아줘야 한다. 양당 정치의 폐해를 오롯이 느끼는 시민들이 왜 다른 선택지로 유일한 진보정당인 정의당을 선택하지 않고 무당층으로 갔는지에 대한 반성으로 우리가 지금 여기 있다는 걸 잊으면 안 된다.”
정의당은 그동안 거대 양당이 주목하지 않았던 노동권, 복지국가 등을 한국 사회의 가치로 끌어올렸다. 심상정 의원, 노회찬 전 의원 등 그 가치를 대변하는 인물들로 정의당의 색깔을 보여줬다. 2012년 정의당 창당 이후에도 총선 정당 득표율 9.67%(2020년), 대선 득표율 6.17%(2017년)을 확보하고, 제3정당으로서 존재를 인정받았다. 장혜영 의원은 당의 현재를 진단하기 위해 지난해 9월 통과된 ‘재창당 결의안’을 다시 꺼내 들었다. “새로운 진보정당을 만들기 위한 정의당의 지난 10년은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정의당은 거대 양당을 공격하면서 대안의 정치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지만 왜 정의당이 대안이어야 하는지를 입증하지 못했다.”
이정미 대표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반대 단식 농성 당시 당 지도부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이 대표의 단식 이후 신당 관련 논의는 중단됐다. 한 정의당 관계자는 “이정미 대표가 사실상 신당 관련 논의를 차단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정의당 지도부 관계자는 “당장 당이 그쪽(금태섭 전 의원)과 합당을 선언하길 바라는 사람들의 주장이다. 큰 틀은 결정됐다. 전국위에서는 ‘진보 정치의 혁신과 확장’이라는 신당의 기준을 명확히 했다. 당의 결정을 비판할 수 있지만 오독해서는 안 된다”라고 반박했다. 7월17일 정의당은 '신당 추진 사업단'을 출범하며 10·11 강서구청장 재·보궐 선거에 "노동과 기후·녹색 가치에 동의하는 개인과 세력의 힘을 모아 공동 선거를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의당은 9월 중순쯤 구체적 신당 추진안을 정하고, 9월 말에서 10월 초 당대회를 열어 최종 확정한다는 계획이다.
장혜영 의원은 필요한 의제를 서둘러 꺼내겠다고 했다. “양당 체제로는 더 이상 안 된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있기 때문에 지지부진하더라도 신당 논의가 계속 갈 수 있다. 명확하게 새로운 세력이 나타난다면, 합당이 아니더라도 정의당이 같이하는 건 정치적 영역에서 닫으려고 해도 닫을 수 없는 선택이다. 모든 것이 열려 있다. 결국에는 실력으로 증명할 수밖에 없다.” 당의 생존을 위한 정의당의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
이은기 기자 yieu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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