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타이완 제 3세력 ‘돌풍’ 커원저 “한국-타이완, 반도체 분업 고려해야”
타이완의 총통 선거가 반년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미중 전략 경쟁의 승부처, 타이완의 총통 선거는 중국과의 관계는 물론 역내 질서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만큼 국제적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 타이완 총통 선거 제3후보 선전...3파전 양상
내년 1월 13일 열리는 이번 선거는 지금까지 치열한 3파전 양상입니다. 집권 민진당의 라이칭더 후보가 여론조사 선두 주자입니다. 의사 출신으로 현직 부총통입니다. 직전 총통 선거 경선에서 현직 차이잉원 총통에게 도전했던 이력도 있습니다. 차이 총통은 이미 연임을 해 이번 선거에 출마하지 않습니다.
라이 후보는 '타이완 독립' 성향으로 평가받습니다. 최근 그가 타이완 독립 선언을 하지 않을 것이란 보도가 있었는데, 알고보니 원래 중국과 타이완은 서로 예속되지 않기 때문에 굳이 독립 선언을 할 필요도 없다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는 중국의 위협에 미국과 협력해 강력하게 대처하자는 입장입니다. 다만 라이 후보는 최근 복병을 만났습니다. 여권 인사들의 성추문이 잇달아 터지면서 지지율을 끌어올리는데 악재가 되고 있습니다.
또 다른 거대 정당, 제1야당 국민당의 허우유이 후보도 유력 주자입니다. 경찰청장 출신으로 현재 신베이시 시장입니다. 그의 가장 큰 자산은 국민당의 조직력입니다. 대륙에서 창당한 국민당은 1990년대까지 계속 타이완의 정치 권력을 장악했고, 지금도 지방 조직이 탄탄합니다. 지난해 지방선거에서도 승리했습니다.
허우유이 후보는 중국의 타이완 침공설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중국과의 관계 개선'이 평화를 보장한다고 주장합니다. '하나의 중국'을 존중하자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지지율이 좀처럼 오르지 않아 고민입니다. 여러 건의 여론조사에서 3위에 그치다 보니 당 안팎에서 후보 교체론이 고개를 듭니다.
이같은 상황에서 제3후보가 바람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바로 제2야당 민중당의 커원저 후보입니다. 의사 출신으로 타이베이 시장을 지냈습니다. 지난 달 중순 타이완 방송사 TVBS 여론 조사에서는 민진당의 라이칭더 후보를 제치고 1위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오차 범위 안이기 때문에 엄밀하게 말하면 공동 선두지만 파장은 컸습니다. 민진-국민당의 양당 구도를 뒤흔드는 돌풍의 주인공으로 떠올랐습니다. 선거가 아직 반년이나 남은 만큼 당선 가능성을 말하는 것은 섣부르지만 상승세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 '돌풍' 커원저 후보 단독 인터뷰…"한국-타이완 반도체 산업 분업하면 상호 이익"
지난 5일 타이베이 민중당 당사를 방문해 커원저 후보를 만나 단독 인터뷰 했습니다. 커 후보는 한류, 반도체 산업 등 한국과 관련한 견해도 밝혔습니다.
Q. 거대 정당 사이에서 본인이 선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A. 지난 30년간 타이완은 통일과 독립을 놓고 싸웠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념이 타이완을 좋게 변화시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옥신각신하면서 국가의 중요한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 '통일'이나 '독립' 주장은 소수고 절대 다수는 현상 유지를 주장합니다. 따라서 양당이 매일 싸우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민중당)는 특별하지 않습니다. 시장(여론)에 부합할 뿐입니다. 무의미한 이념 투쟁에 싫증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나는 의사 출신입니다. 의사는 이성적, 실용적, 과학적으로 문제 해결에 전념합니다. 다른 이들이 정치를 해석할 때 우리는 문제를 해결합니다. 이것은 매우 다릅니다.
Q. 당신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 외교가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A. 과거 헨리 키신저(미중 수교를 추진한 전 미국 국무장관) 시대에는 미국과 중국은 전략적 파트너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중국과 미국이 전략적으로 적이 되었습니다.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변할 때는 당연히 타이완과 미국의 관계도 형세에 따라 변해야 합니다.
민진당은 너무 미국 쪽으로 기울어 있고 국민당은 너무 중국 쪽에 기울어 있습니다. 우리는 미국이나 중국 어느 한 쪽에만 완전히 귀를 기울일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늘 가운데서 균형을 찾는 것이 맞습니다.
Q. 당신이 총통이 되어야 하는 이유, 정책 지향점을 설명해주시기 바랍니다.
A. 2024년은 타이완의 전환점입니다. 대외적으로 양안 관계가 상당히 긴장 상태입니다. 세계적 시각에서 볼 때는 타이완 해협에서 전쟁이 일어날 위험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중국과의 관계를 개선해 타이완 해협의 위험을 줄이는 일이 첫 걸음입니다.
국내적으로는 저출산 현상, 노동보험기금 파산, 보건 비용 급증 등 많은 문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모두 시급히 해결해야 합니다. 하지만 정부는 이념을 위해 싸우고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타이완은 이같은 대내외적 현안을 해결할 총통이 필요합니다.
Q. 한국과 관련해 관심 갖는 이슈가 있습니까? 한국과 타이완의 관계를 위해 어떤 정책이나 활동이 필요하다고 보시나요?
A. 타이완에 있어 한국이 가장 크게 성공한 분야는 문화 산업이고 우리는 그것을 한류라고 합니다. 강남스타일이나 원더걸스 등 한국의 대중 음악도 마찬가지죠. 타이완의 대중 음악과 영화 등 대중 예술은 중화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한국은 이미 세계로 진출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한국의 성공한 문화 산업을 타이완이 연구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ICT(정보통신기술) 산업 분야에서 타이완과 한국이 너무 경쟁적이어서 연구해봤습니다. 타이완과 일본은 ICT 산업에서 상호보완적 관계입니다. 일본은 소재를 만들고 타이완은 제조를 하는 방식으로 협력합니다. 그런데 타이완 반도체 업체 TSMC와 한국의 삼성전자는 정면으로 맞서고 있습니다. 이건 타이완과 한국의 고위층이 생각할 문제일텐데요, 산업적으로 분업을 할 수 있다면 모두에게 이득이 될 것입니다. 무리하게 부딪치면 양쪽 모두 손해입니다.
■ 제3후보 선전하지만 선거 제도 등 걸림돌
커원저 후보의 인터뷰를 보면 실용과 균형 외교를 강조합니다. 이념 대결을 벗어나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입니다. 이같은 커 후보의 입장은 2, 30대 젊은층의 지지를 이끌어내며 바람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타이완 국립정치대학교의 왕신셴 교수는 KBS와의 인터뷰에서 "커원저 후보의 솔직하고 직설적인 화법과 양대 정당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젊은층에서 호응을 얻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민중당이 SNS 등 인터넷을 잘 활용하고 있는 점도 강점으로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타이완은 사실상 부재자 투표 제도가 없습니다. 예컨대 도시 대학생이 투표를 하려면 귀향을 해야 합니다. 젊은층의 지지가 온전히 표로 연결되기 어려운 구조입니다.
이는 야권 후보 단일화 여부에도 영향을 줍니다. 정당간 정책, 이념적 차이도 분명 있지만 국민당의 조직력이 뒷심을 발휘할 것이란 기대가 있기 때문입니다. 왕신셴 교수는 "총통 선거와 같은 큰 선거는 결국 정당간 대결로 끝날 것이다. 국민당은 지방에서 힘이 강하기 때문에 (민중당) 커원저 후보에게 양보할 수는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타이완 안보 인식 변화
더불어 미국과 중국의 전략 경쟁이 치열해지고, 때로는 선택을 강요받는 상황에서 '미중간 균형'이라는 커원저 후보의 정책 방향은 현실적으로 이루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현재 타이완은 미국에 안보를 의지하는 것은 물론 반도체 산업의 협력 수준을 높이고 있습니다. 안보, 경제 모두 미국의 등에 올라타는 듯한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왕신셴 교수는 미국이 타이완에 미치는 영향이 여전히 매우 크다면서도 우크라이나 전쟁이 변수가 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타이완 사람들이 과거에는 미국의 존재 때문에 중국의 침공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봤지만, 이제는 무력 침공이 있을 수도 있다고 갑자기 깨닫게 됐다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중국이 침공한 뒤 미국이 어떻게 타이완을 지원할까 하는 식으로 논리가 바뀌었다고 설명했습니다. 타이완의 안보 불안, 그리고 미국 방위 공약의 신뢰도가 그 어느 선거 때보다 중요해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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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원 기자 (sungwonc@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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